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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경전/금강경

금강경 1품 법회인유품

by 파장波長 2022. 5. 8.

제1품 법회가 열리게 된 원인

 

第1品·法會因由分 

如是我聞. 一時佛在舍衛國, 祇樹給孤獨園,  與大比丘衆, 千二百五十人俱. 
여시아문. 일시불재사위국, 기수급고독원, 여대비구중, 천이백오십인구.
爾時, 世尊, 食時, 著衣持鉢, 入舍衛大城乞食. 於其城中, 次第乞已, 還至本處.
이시, 세존, 식시, 착의지발, 입사위대성걸식. 어기성중, 차제걸이, 환지본처.
收衣鉢, 洗足已, 敷座而坐.
반사흘, 세족이, 부좌이좌


불경을 읽을 때는 목어(木魚)를 똑똑 두드려 가며 죽 내리읽습니다. 왜 목어를 두드릴까요? 물고기는 밤낮 눈을 뜨고 있습니다. 물고기는 잠잘 때는 꼼짝하지 않는데, 잠시 휴식을 취하는 듯 보이는 이것이 바로 물고기의 수면 방식입니다. 목어를 두드리는 것은 물고기의 정신, 밤 낮을 쉬지 않고 노력하는 정신을 본받아 수행에 정진하기 위함입니다.

이 경전의 제1품은 일체의 것이 각기 인연이 다름을 설명합니다. 부처가 『능엄경(楞嚴經)』을 설할 때와는 시작부터 다릅니다. 『능엄경」의 시작은 이렇습니다. 하루는 부처가 막 식사를 마쳤는데, 성안에 있던 동생 아난 (阿難)에게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러자 부처는 지체 없이 신통력을 드러냅니다. 머리에서 빛을 뿜는데 광채가 대단합니다. 빛 속에서 화신(化身)이 출현하자 주문 하나를 전수해 문수보살로 하여금 빨리 가서 아난을 구하도록 합니다. 경전의 시작은 이처럼 모두 다릅니다. 특히 『금강경』은 아주 색다릅니다. 이 경전에서 부처는 머리뿐 아니라 눈썹이나 가슴의 만() 자에서도 아무 빛을 발하지 않습니다. 『금강경(金剛經)』은 단지 밥 먹는 것에서부터 시작할 뿐입니다. 그렇지만 밥 먹는 것이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닙니다. 북평(北平) 백운관에는 명나라 때부터 내려온 유명한 대련(對聯) 한 수가 소장되어 있습니다. 거기에, “세상에 수행보다 더 좋은 것이 없고, 천하에 밥 먹기보다 더 어려운 일은 없다〔世間莫若修行好,天下無如吃飯難〕”라고 적혀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부처가 길을 갈 때는 땅에서 세 치쯤 떨어져 연꽃을 밟고 가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경전에 그려진 부처의 모습은 우리와 다르지 않습니다. 똑같이 밥을 먹고, 똑같이 걸식을 하며, 똑같이 맨발로 길을 걷고, 똑같이 발바닥에 묻은 흙을 씻어 냅니다. 그러고 나서 밥을 먹고는 선정에 듭니니다. 평범하고 일상적입니다. 평범한 것이 도()입니다. 제일 평범한 것이 제일 높습니다. 진정한 진리는 제일 평범한 것에 있습니다. 진정한 선불(仙佛)의 경계는 제일 평범한 것에 있습니다. 이 때문 에 진정한 인도(人道)의 완성이 곧바로 출세(出世)의 도나 성인의 성취와 통하는 것입니다. 『금강경』 첫머리에 보이는 부처의 이런 모습과 정신을 특히 젊은 분들은 유념하기 바랍니다.


부처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그때 부처께서는 사위국의 기수급고독원에서

如是我聞,一時佛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 
여시아문, 일시불 재사위국기수급고독원,

그때

“이와 같이〔如是〕”를 붙이라고 했습니다. “나는 들었다” 에서 '나' 란 아난을 가리킵니다. 즉 부처께서 이렇게 말하는 것을 내가 들었다는 것입니다. 아난의 머리는 녹음기 같아서 부처가 말한 것을 한 자도 빠뜨리지 않고 기억했습니다. 그는 책임을 분명히 하기 위해 “내가 들었다” 라고 밝혔습니다. "여시(如是)”로 시작하는 것은 고어의 표현으로, 만약 일반적인 문장이라면 응당 "여시아문〔如是我聞〕이 아니라 '아문여시〔我聞如是〕' 라고 할 겁니다. 불경을 한문으로 번역하면서 이렇게 말을 바꾸어 쓰는 용법이 생겼습니다. “여시아문〔如是我聞〕”이란 표현은 불교 문학의 새로운 양식 으로 정착되었는데, 아름답고 문학성이 돋보이는 언어 구사입니다.

“그때〔一時〕” 의 의미는 탁월합니다. 진정으로 도를 깨달으면 시간 관념이 없어집니다. 『금강경』에서는, “과거의 마음은 얻을 수 없고, 현재의 마음도 얻을 수 없으며, 미래의 마음도 얻을 수 없다〔過去心不可得, 現在心不 可得, 未來心不可得〕” 라고 했습니다. 시간은 상대적인 것으로, 진정한 시간은 만 년이 한 생각이요 한 생각이 만 년입니다. 고금도 없고, 과거와 미래도 없습니다.

과학적으로도 시간이 상대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시간은 유심적인 것으로, 절대적인 것이 아닙니다. 고통스러울 때는 일 분 일 초가 일만 년인 듯 느껴지고, 행복에 젖어 있을 때는 일만 년 일 백 년이 찰나처럼 지나가 버립니다. 이 때문에 “그때”라 표현한 것입니다.

사위국의 강당

"그때 부처께서는 사위국의 기수급고독원에서〔一時佛在舍衛國, 樹給孤獨園〕.” 부처는 서른한 살에 설법을 시작하여 여든 살까지 사십구 년간을 계속했는데, 그의 교화 사업은 대부분 사위국에서 행해졌습니다. 사위국은 중인도 지역에 자리 잡은 경제와 문화가 발달한 나라입니다. 국왕은 바로 『능엄경』에 등장하는 바사닉(波斯匿) 왕으로서 부처의 제자입니다. 이 나라에 나이 많고 덕이 높은 사람이 하나 있었는데, 이 사람은 요즘 말로 하면 사위국의 재벌이었습니다.

이 사람의 이름은 '급고독(給孤獨)'으로, 그는 배화교 교주였습니다. 하루는 그가 아이들을 보러 바사닉 성에 가다가 우연히 부처를 만나 믿고 따르게 되었습니다. 그는 부처에게 바사닉 성으로 가서 설법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리고 바사닉 성에 부처를 위해 강당 하나를 지어 주기로 했습니다. 부처는, 인연이 있으니 강당이 다 지어 지면 곧 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는 바사닉 성으로 돌아와서 가장 좋은 장소 를 하나 찾았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곳은 기타태자(祇陀太子)의 땅 이었습니다. 태자는 한 가지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만약 황금으로 만든 나뭇잎을 깔아 팔십 경() 대지를 덮을 수 있다면 그에게 땅을 팔겠다는 것 입니다.

급고독은 보시를 잘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려운 사람이 찾아오면 언제나 도와주며 좋은 일만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고독한 자에게 나누어 준다〔給孤獨〕’는 뜻의 이름이 붙게 된 것입니다. 그는 금으로 만든 잎을 팔십 경 대지 위에 깔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반쯤 깔았을 무렵 어떤 사람이 태자에게 상황을 보고했습니다. 태자는 급고독에게 왜 그렇게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급고독이 말하기를, “그분은 진짜 부처님입니다! 진정한 성인이십니다” 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태자가 말했습니다. “저는 선생의 말을 믿습니다. 황금을 깔 필요 없습니다. 우리 두 사람이 함께 강당을 건립합시다!” 이렇게 해서 강당은 두 사람의 이름을 따서 '기수급고독원〔樹給孤獨園〕' 이라 명명된 것입니다. 『능엄경』 또한 이곳에서 행해진 설법입니다. 이후 이 원림(園林)은 대강당으로 쓰여, 부처의 설법은 대부분 여기서 이루어집니다.


천이백오십 명

비구 천이백 오십 명과 함께 계셨다.

與大比丘衆, 千二百五十人俱. 
여대비구중, 천이백오십인구.

불교 경전마다 이 두 구절이 따라다닙니다. 부처가 설법할 때 청중은 과연 모두 출가한 승려들뿐이었을까요? 이 구절에서는 단지 승려만 말할 뿐 거사가 몇 명이고 남자가 몇 명이며 여자가 몇 명인지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불경에서는 부처가 설법할 때는 천룡팔부〔天龍八部〕가 억만이라 하여,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설법에는 언제나 이 천이백오십 명이 고정 청중으로 등장합니다. 이들은 모두 부처의 제자로서 부처가 어디로 가든 따라다닙니다. 

Note :  천룡팔부(天龍八部) 는 8부 중 1부, 2부가 각각 '천' '용' 이라서 이들을 대표로 든 것임. 이 외에 3부는 야차(夜叉), 4부는 건달바(乾婆), 5부는 아수라(阿修羅), 6부는 가루라(迦樓羅), 7부는 긴나라(緊那羅), 8부는 마 후라가(摩喉羅迦)임.

왜 단지 천이백오십 명만 언급했을까요? 이들은 부처가 법을 전하기 시작한 후 첫 번째로 초청된 학생들, 쉽게 말해 항복을 얻어 내기 제일 힘든 제자들이었습니다. 이 중 사리자(舍利子)는 이미 대스승으로서 부처가 설법을 시작하기 전 그 밑에 백명의 학생이 따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가섭(迦葉, 염화미소의 가섭이 아님) 삼형제 중 두 사람은 각각 이백오십 명의 학생이 있었고 나머지 한 사람은 오백 명의 학생이 있어서 다 합하면 천 명으로, 이들 형제는 모두 당시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치던 대학자였습니다. 이 밖에 신통력으로 유명한 목련존자(目蓮尊者)가 있었는데, 나이는 부처 보다 몇 살 더 많았으며 백 명의 학생을 거느리고 있었습니다. 또 야사장자(耶舍長子)가 있었는데 그를 따르는 무리는 오십 명이었습니다. 이 여섯 제자가 부처께 귀의하자 그들의 학생도 모두 귀의하여 천이백오십 명의 고정 청중이 된 것입니다.

① 사리자 존자 따르는 제자 100명
② 가섭존자 3형제 따르는 제자 1명 500명, 2명 500명 合 1000명
③ 목련존자 제자 따르는 100명
➃ 야사장자 따르는 50명
合 ①+②+③+➃ = 1,250명

그 중 어떤 사람의 나이는 부처보다 수십 세가 많았습니다. 부처가 서른 남짓해 설법을 시작했을 때 사리자 존자 보다 나이는 부처보다 이삼십세 많았고, 목련존자 또한 부처보다 나이가 많았습니다. ‘비구(比丘)' 란 출가인으로서, 번역하자면 '걸사(方士)'라 할 수 있습니다. '걸사' 란 참 듣기 좋은 말입니 다. 뜻은 밥을 얻어먹는다는 것인데, 어떤 밥일까요? 먹어 치울 한 끼 밥이 아니라 영원히 불생불멸하는 정신적 식량입니다. 이 때문에 위로는 부처에게 법을 구걸하고, 아래로는 일체 중생에게 밥을 구걸하는 사람을 '성불 (成佛) 비구' 라 합니다. 또 ‘비구'의 의미 속에는 일체의 번뇌를 깨뜨려 없애고, 일체의 생사를 초월하며, 능히 성취를 이루고 열매를 증득한다는 것 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세간과 대천세계

이때 세존께서는 식사 시간이 되어, 옷 입고 바리때 들고서

爾時, 世尊, 食時, 著衣持鉢, 
이시, 세존, 식시, 착의지발,

'세존(世尊)'이란 부처의 또 다른 명칭입니다. 불교경전에서 말하는 '세존' 은 세상에서 가장 존경할 만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주의할 것은, 여기서 말하는 세상이 단지 인간 세상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점입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세간(世間)에는 3세간과 4세간 두 종류가 있습니다. 소위 3세간이란 기()세간, 국토(國土)세간, 유정(有情) 세간입니다. 

기세간이란 곧 국토세간을 말합니다. 현대적 관점에서 보자면 물질세계라 할 수 있는데, 이 지구처럼 인류와 생물이 존재하는 세계입니다. 그리고 국토세간은 지구상에서 각기 나누어진 국토입니다. 즉 미국이니 중국 이니 유럽이니 하는 것으로, 이것 역시 세간 개념의 하나입니다. 마지막으로 유정세간의 유정이란 일체의 중생으로서 생명과 지각을 지닌 존재입니 다. 이것 역시 세간 개념의 하나인데,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사회니 인류니 하는 개념과 별 차이 없습니다. 4세간이란 앞의 3세간 외에 성현세간을 포함시킨 것입니다. 성현세간은 도를 성취한 성현들로 구성된 또 다른 세간입니다. 예를 들면 아미타불의 서방 극락세계가 바로 성현세간입니다. 다른 종교에서 천당이라 말하는 것도 성현 또는 착한 사람들이 거주하는 또 다른 세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불교에서는 또 정토(淨土)와 예토(機士) 개념이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사바 세계로 예토이고, 아미타불의 서방 극락세계가 곧 정토입니다. 이처럼 '토()'에는 두 가지 상이한 개념이 있는데, 하나는 항시 고요하고 빛나는 토로서 이 토는 더 이상 토지나 물질이 아닙니다. 이 경계에서는 영원히 즐겁고 청정하며 적멸(寂滅)합니다. 다른 하나는 우리 이 세간으로서 범인과 성인이 동거하는 곳입니다. 불경에서 말하는 세계란 우리 이 세계 뿐 아니라 지구를 초월한 모든 범위의 세간을 포함한 것입니다. 또 하나 알아야 할 것은 석가모니불이 삼천대천세계의 부처라는 사실입니다. 

어떤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허풍 센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모른다고 하니까, 그 사람은 바로 석가모니불이라고 했습니다. 석가모니불이 말하는 삼천대천세계는 너무도 엄청나고 황당해 아무도 그의 허풍을 당할 자가 없다는 겁니다. 삼천대천세계는 정말로 엄청난 세계입니다. 부처는 태양계를 하나의 보통 세계라 생각했는데, 하나의 세계에는 태양과 달, 그리고 아홉 개의 행성이 있습니다. 

과거에 물리학이나 천문학에서는 태양을 항성이라 생각했지만 지금은 달라졌습니다. 아직 과학적으로 정론은 없는 상태이나 적어도 더 이상 태양을 항성이라 단정 짓지는 않습니다. 태양계에서 지구는 크기도 아주 작고 수명 역시 매우 짧은 편입니다. 이 부처는 지구상에 사는 사람의 수명은 육십 세에서 백 세 정도라 말합니다. 이 세계에서는 한 번의 밤낮이 하루이지만 달의 표면에서는 반 달이 낮이고 반 달이 밤이라 합니다. 현대에 이르러 사람들이 우주 공간에 직접 발을 디뎌 보고 나서야 부처가 이천여 년 전에 말한 내용이 사실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부처는 제자들에게 말했습니다. 이 허공 중에 태양계와 같이 많은 행성을 거느린 세계가 마치 갠지스 강의 모래만큼이나 무수히 많다고요.

천 개의 태양계를 합쳐 하나의 소천세계라 하고, 천 개의 소천세계를 중천세계라 하며, 다시 천 개의 중천세계를 합쳐 대천세계라 합니다. 부처는 이 허공 중에 삼천 개의 대천세계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삼천 개에 그치지 않으며, 알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이 무한하다고 했습니다. 이런 설법을 예전에는 그대로 믿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① 소천세계 : 1,000개의 태양계의 合
② 중천세계 : 1,000개의 소천세계 合
③ 대천세계 : 1,000개의 중천세계 合
➃ 삼천대천세계 : 3,000개의 대천세계 合, 실제로는 셀 수 없는 무수히 많은 세계를 지칭.


걸사(乞士) 생활의  몸가짐

사위성 안으로 들어가 걸식하셨다. 성안에서 한 집 한 집 걸식을 하시고는 원래의 곳으로 돌아오셨다. 식사를 끝내고 의발을 수습하신 뒤 발 씻고 자리 깔고 앉으셨다. 

入舍衛大城乞食. 於其城中, 次第乞已, 還至本處, 飯食訖, 收衣鉢 
입사위대성결식. 어기성중, 차체걸이, 환지본처, 반사흘 ,수의발,
洗足已, 敷座而坐
세족이, 부좌이좌

이 단락은 화연〔化緣〕을 해서 점심을 먹는 장면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불경을 공부해 보면 부처는 밤부터 낮까지 줄곧 선정(禪定)에 들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단지 점심 때 식사를 하고서야 한 차례 휴식을 취합니다. 대개는 오후 한두 시부터 대여섯 시까지 설법을 하고, 날이 어두워지면 모두 눈을 감고 입정에 들어갑니다.

사위국 수도의 큰 성[大城]에서 그들은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화연을 합니다. 화연이 끝나면 다시 돌아옵니다〔還至本處〕. 이는 우리가 길거리에서 바나나를 먹고 다니는 것과는 다릅니다. 길거리 아무 데서나 밥을 먹는 것이 아니라 밥그릇을 들고 그들의 강당으로 돌아와 정해진 장소에서 식사를 합니다. 식사가 끝나면〔飯食〕 의복과 밥그릇을 수습한 뒤〔收衣鉢〕 발을 씻습니다〔洗足已〕.

이 경전이 경전 중에서 제일 소박하다고 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부처는 보통의 인도 사람들처럼 맨발로 다니고, 흙이 묻은 발을 씻습니다. 지극히 평범하고 진솔한 한 인간의 모습입니다.

발을 씻고는 자기가 앉을 자리를 털어 내고 다듬어서 단정하게 합니다. 제자에게 시키거나 사람을 시켜 청소하지 않고 모두 스스로 행합니다. 생활이 이처럼 빈틈없고 평범하며 또 절도가 있습니다. 이 단락을 보면, 불법을 배우기 위해서는 부처의 이런 생활 방식을 그대로 행하는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고 『금강경』이 말하는 것 같습니다. 다른 경전에서처럼 부처를 감히 접근할 수 없는 그런 모습으로 묘사하지 않습니다. 『금강경』을 보면 부처는 보통 사람처럼 평범합니다. 비록 출가 전에는 태자 신분이었으나 그의 생활은 평민과 다름없습니다. 당시와 같이 삼엄한 계급 제도하에서, 그는 최하층 빈민 출신 제자인 우파리존자〔優波離尊者〕에게 기율을 맡겨 누가 어기더라도 공평하게 처리하도록 했습니다. 부처는 이처럼 가장 평범한 생활 속에서 비범한 신성(神聖)의 경계를 세웠습 니다. 이것이 바로 부처의 경계입니다.

 

∴ 출처 : 남희근 선생 '금강경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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