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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경전/금강경

금강경 2품 선현기청분

by 파장波長 2022. 5. 8.

제2품 수보리가 일어나 법을 청하다

 

第2品·善現啓請分

時長老須菩提, 在大衆中, 卽從座起, 偏祖右肩, 右膝著地, 合掌恭敬, 而白佛言,
시장로수보리, 재대중중, 즉종좌기, 편단우견, 우슬착지, 합장공경, 이백불언,
希有世尊! 如來善護念諸菩薩, 善付屬諸菩薩! 世尊! 善男子, 善女人,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
희유세존! 여래선호념제보살,선부촉제보살! 세존! 선남자, 선여인, 발아뇩다라삼막삼보리심,
云何應住? 云何降伏其心?
운하응주? 운하항복기심?
佛言, 善哉 善哉! 須菩提! 如汝所說, 如來善護念諸菩薩, 善付屬諸菩薩. 汝今諦聽, 當為汝說,
불언, 선재 선재! 수보리! 여래소설, 여래선호념제보살, 선부촉제보살. 여금제청, 당위여설
善男子, 善女人,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 應如是住, 如是降伏其心. 唯然, 世尊! 願樂欲聞!
선남자, 선여인, 발아뇩다라삼막삼보리심, 응여시주, 여시항복기심. 유연, 세존! 원락욕문!


선연수보리

당시 장로수보리가 대중 속에 있다가 일어서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오른쪽 무릎을 꿇고 합장 공경하며 부처께 말했다. “세상에 드문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는 여러 보살들을 잘 보호해 주시고, 여러 보살들에게 잘 일러 주십니다.”

時長老 須菩提, 在大衆中, 卽從座起, 偏祖右肩, 右膝著地, 合掌恭敬, 
시장로 수보리 재대중중 즉종좌기 편단우견 우슬착지 합장공경 
而白佛言,“希有世尊!如來善護念諸菩薩, 善付屬諸菩薩!" 
이 백불언 희유세존 여래선호념제보살 선부촉제보살

'선현(現)'은 수보리를 이르는 말로, 그의 삶의 경계가 도덕적 지성(至善)에 도달했다는 뜻으로 의역한 것입니다. 그리고 수보리는 장수(長壽)를 대표하기도 합니다. 수보리 외에 사리자도 부처보다 나이가 많았습니다. 이 때문에 어떤 경전에서는 '수보리'를 '구수(壽)' 라고도 번역하는데, 바로 장수의 뜻입니다. 수보리를 공론(空論)의 제일인자라고 말합니다. 후세 불교에서는 수보리를 존자(尊者)라 칭하는데, 그는 민간에서도 잘 알려진 인물입니다.

이 부분은 마치 당시의 현장을 생생하게 묘사한 한편의 극본과 같습니다. '시()' 란 당시입니다. 즉 부처께서 식사를 마치고 발을 씻고 앉을 자리를 정돈한 후 다리를 틀고 앉아 휴식을 취하려 하던 때입니다. 경전은 수보리가 제기하는 문제에서 시작됩니다. 그는 공론(空論)의 일인 자로서 비구들을 대표하여 문제를 제기합니다. 지금은 발언하고 싶을 때 손을 들면 되지만 당시에는 그 자리에서 일어서야 했다고 합니다. 여러 제자들이 앉아 있는 가운데 오른쪽 어깻죽지를 드러낸 수보리가 일어섰습니다. 이것 역시 당시 인도의 예법으로서, 가사를 입을 때면 한쪽 어깨를 드러냈습니다.

수보리는 가사를 가다듬어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뒤 오른쪽 무릎을 땅에다 대어 무릎을 꿇은 채 합장하고 있습니다. 합장은 당시 인도의 예법이었습니다. 물론 중국에서도 합장을 하며, 그것에 더해 읍()이라는 예법도 있습니다. 인도에서는 합장할 때 손가락을 폈는데, 손바닥 사이를 비워 두는 합장법과 양 손바닥을 밀착시키는 합장법이 있었습니다.

수보리는 합장하고서 부처님께 먼저 예를 갖춥니다. “이백불언(而白佛言)”, '백()'이란 말하다' 라는 뜻으로 고문에서는 '도백(道白)'이라 고도 했습니다. 이것은 남북조 시대의 용법으로서 후에 창극에도 등장했습니다. 즉 노래를 부를 때는 창()이라 하고, 노래 부르지 않고 몇 마디 하는 것을 도백이라 했습니다. “희유세존(希有世尊)”, 불경에는 인도의 예법이 기재되어 있습니다. 즉 나이 많은 사람에게 가르침을 청하기 전에 먼저 찬탄사를 늘어놓아야 합니다. 『금강경』에서는 이 찬탄사를 네 글자로 압축시켰습니다. 다른 경전에서는 제자들이 부처께 질문할 때는 먼저 한 바탕 찬탄사를 늘어놓습니다. 그러면 부처는 참을성 있게 다 듣고 있다가 눈을 뜨고 말합니다. “어서 말해 보게!” 이 경전에서 찬탄사를 네 글자로 줄여 놓은 것은 구마라습의 솜씨입니다. “희유세존(希有世尊)”, 세상에서 참으로 드물게 만나 볼 수 있는 세존이시여! 대략 이런 뜻입니다. 현장법사의 번역이나 그 외 여러 번역에 비해 구마라집의 번역은 간결하지만 참으로 오묘합니다.

수보리는 이어서 말합니다. “여래께서는 여러 보살들을 잘 보호해 주시고, 여러 보살들에게 잘 일러 주십니다[如來善護 念諸菩薩, 善付囑諸菩薩].” 


금강의 눈과 발심

“세존이시여! 선남자 선여인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발하려면 어떻게 머물러야 할까요? 어떻게 그 마음을 항복시켜야 할까요?”

世尊! 善男子, 善女人, 發阿耨多羅三藐菩提心
세존! 선남자, 선여인, 발아뇩다라삼막보리심
云何應住? 云何降伏其心?
운하응주? 운하항복기심?

'발심(發心)'의 '발'은 동기를 말합니다. 어떤 마음을 발하게 할까요?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菩提)” 의 마음입니다. 아뇩다라는 산스크리트 어로서 구태여 번역하자면 '무상(無上)' 으로 지고무상하다는 뜻입니다. '삼'은 정()이며, '먁'은 등(), 평등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보리'는 깨달음입니다. 합쳐 보면 '무상정등정각(無上正等正覺)의 마음 입니다. 

그렇지만 이 '무상정등정각' 의 마음은 “아뇩다라삼막삼보리"의 내용을 전부 포괄하지는 못합니다. 의역하면 선종에서 말하는 '대철대오(大徹大)'라 할 수 있는데, 이것 역시 그 의미를 완전히 포괄하지는 못합니다. "아뇩다라삼막삼보리”는 심지법문(心地法門), 명심견성(明心見性), 그리고 세속을 초월하여 성불의 경계에 도달하는 것을 모두 포괄하고 있습니다. 행위의 측면에서는 대자대비한 보살심 또는 보리심(菩提心)으로서 세속에 들어가 일체 중생을 구하는 것이요, 이론의 측면에서는 대철대오로서 초월적인 형이상의 본성입니다. 이처럼 '삼막삼보리심'의 의미는 대단히 포괄적이어서 음역으로 처리하여 후세 사람들이 스스로 해석하도록 했습니다. " "아뇩다라삼막삼보리의 마음을 발한다[發阿振多羅三流三菩提心]” 라는 것은, 말하자면 보통 사람이 불법을 배우고자 마음먹는 것을 말합니다. 


어떻게 해야 마음을 머물러 있게 할 수 있을까요

부처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하도다, 훌륭해! 수보리여! 그대의 말은 여래가 여러 보살들을 잘 보호하고, 여러 보살들에게 잘 일러 준다는 것이었지. 그대는 이제 잘 듣게. 그대를 위해 말하리라.”

佛言, 善哉 善哉! 須菩提! 如汝所說, 如來善護念諸菩薩, 善付囑諸菩薩. 
불언, 선재 선재! 수보리! 여여소설, 여래선호념제보살, 선부촉제보살. 
汝今諦聽, 當爲汝說. 
여금체청, 당위여설.

부처는 수보리의 질문을 듣고서 다시 눈을 뜹니다. 문제 제기가 너무 좋아 일격에 바로 중심을 쳐 옵니다. “훌륭하도다. 훌륭해! 참으로 훌륭한 문제 제기로다!” 불경을 읽을 때는 마땅히 시나리오를 읽듯 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경전이 묘사하고 있는 실제 상황 속으로 들어가서 무언가를 마음으로 얻을 수 있습니다. 시나리오 읽듯 하라는 것이 경전을 공경하지 말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그렇지만 경전 속 실제 상황으로 뛰어들지 못하면 경전과 자신이 따로 놀아 아무 소용없습니다.

지금 우리가 수보리와 같이 자리하고 있다고 생각합시다. 부처가 말합니다. “훌륭하도다. 훌륭해! 수보리여! 여래는 여러 보살을 선호념(善護念)하고 선부촉(善付囑)한다는 질문이지, 그렇지 않은가?” 수보리가 대답합니다. "그렇습니다.” 부처가 다시 말합니다. “이제 주의해서 잘 듣게![汝今諦聽]” ‘체()'는 '자세히' 또는 주의해서' 라는 뜻입니다. “그대가 제기한 문제가 너무도 훌륭하니 응당 거기에 대해 답해야겠다[當爲汝說].” 이때까지 수보리는 여전히 무릎을 꿇고 앉아 있습니다.


"선남자 선여인이 아누다라삼막삼보리의 마음을 발하려면 마땅히 이렇게 머물고, 이렇게 그 마음을 항복시켜야 하느니라.”
"알겠습니다, 세존이시여! 즐거이 듣고자 합니다!”

善男子, 善女人, 發阿耨多羅三兢三菩提心, 應如是住, 如是降伏其心.
"선남자, 선여인, 발아두다라삼막삼보리심, 응여시주 여시항복기심" 
唯然, 世尊!願樂欲聞.” 
"유연, 세존 원락욕문."

부처가 말합니다. “선남자 선여인들이여! 만약 무상대도(無上大道)의 마음을 얻고자 한다면 마땅히 이렇게 마음을 머물게 해야 하며, 마땅히 이렇게 마음을 항복시켜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한마디 말하고서 부처는 다시 눈을 감아 버립니다. 수보리가 한 참을 기다렸다가 머리를 들어 부처를 쳐다보며, “알겠습니다, 세존이시여![唯然, 世尊]”하고 말합니다. 경문 중의 ‘유()'란 대답하는 말이며, '연()'은 좋다는 뜻입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준비가 다 되었습니다. 저는 아주 기꺼이 말씀을 기다리고 있습니다![願樂欲聞]” 수보리가 거기 꿇어앉아 무작정 기다리고 있지만 부처는 다음 말을 하지 않습니다. 

드디어 부처가 대답을 합니다. “훌륭하도다, 훌륭해! 수보리여! 여래는 여러 보살들을 선호념' 하고 '선부촉' 한다는 질문이었지, 그렇지 않은가?” 수보리가 대답합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그것을 물었습니 다.” 그러자 부처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 말해 주려고 하니 자세히 듣게! 그대에게 구도심이 있어 일념으로 도를 구할 때, 바로 그렇게 마음을 머물게 한다네! 그렇게 하면 망념이 사라져 버릴 것이네. 바로 그렇게 하는 것이라네!” 

한참이 지나도 수보리가 이해하지 못해 바보처럼, “부처님, 듣고 있습니다!” 라고 말합니다. 말을 바꾸면 부처가 아직 자기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실제로 이때 마음은 이미 머무르고 또 항복했습니다.

'주()' 란 머무는 것입니다. 방 안에 머무는 것이나, 어떤 곳에 정지해 있는 것과 같습니다. 어떻게 해야만 번뇌와 망상을 머물러 있게 할 수 있을까요? 부처는 바로 그렇게 머무른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불법을 공부하면서 제일 어려운 것이 마음속의 사려, 정서, 망상 을 머물게 하는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세상의 어떤 종교든 어떤 수행 방법이든 추구하는 바는 모두 마음의 안정, 즉 마음을 그쳐 머물게 하는 것 [止住]입니다. 불교의 수행 방법이 비록 많지만 총괄하면 단지 하나의 법문, 즉 지()와 관()입니다. 즉 생각을 집중시켜 한곳에 그쳐 머물게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정토종의 염불은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을 외움으로써 바로 거기에 마음이 그쳐 머물게 하는 것입니다. 나무(南無)'란 귀의요 아미타(阿彌陀)'는 이름으로, 나무아미타불은 아미타라는 부처께 귀의하 겠다는 뜻입니다. 

 

∴ 출처 : 남회근선생 '금강경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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