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고떠나기5 자연은 커다란 생명체다. 중국 송대의 시인이며 서예가인 황산곡黃山谷의 글인데, 내 거처의 주련으로 쓸까 해서 골라놓고도 아직 빈 기둥인 채로 지내고 있다. 짧은 글이지만 진솔하고 기상이 있다. 자연을 한아름 안고 있어 가끔 읊어지는 시이다. 활짝 트인 하늘과 구름과 비, 산과 사람과 물과 꽃을 거느리고 있는 자연에 기대어 살아가노라면, 이 우주 대자연이 하나의 커다란 생명체로 느껴질 때가 있다. 불교용어를 빌리자면, 산하대지 이대로가 살아 있는 청정한 법신法身이라는 것. 따라서 우리들 인간은 커다란 그 생명체에서 나누어진 한 지체인 셈이다. 만리청전(萬里靑天) 운기우래(雲起雨來) - 구만리 장천에 구름 일고 비 내린다. 공산무인(空山無人) 구류화개(九流花開) - 사람 없는 탕 빈 산에 시냇물 흐르고 꽃 피더라. 맑게 갠 여름.. 2022. 4. 17. 온화한 얼굴 상냥한 말씨 비 개이자 개울물소리가 한층 여물어졌다. 밤낮으로 쉬지 않고 흐르는 개울물소리에 귀를 모으고 있으면 내 안에 묻은 먼지와 때까지도 말끔히 씻겨지는 것 같다. 개울가에 산목련이 잔뜩 꽃망울을 부풀리고 있다. 한 가지 꺾어다 식탁 위에 놓을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갓 피어나려고 하는 꽃에게 차마 못할 일 같아서다. 철 따라 꽃이 피어나는 이 일이 얼마나 놀라운 질서인가. 그것은 생명의 신비이다. 꽃이 피어나는 것은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다. 꽃의 정기를 머금고 있는 나무가 스스로의 충만한 삶을 안으로 안으로 다스리다가 더 견딜 수 없어 마침내 밖으로 터뜨리는 것이다. 자연계에서는 보면 꽃은 향기로운 미소다. 칙칙한 수목들만 있고 꽃을 피우는 나무나 풀이 없다면, 숲은 미소를 잃은 얼굴처럼 삭막하고 딱딱할 것이다.. 2022. 4. 17. 어진 이를 가까이하라. 어떤 인연에서였건 간에 금생에 불법佛法을 만나게 된 것은 개인의 생애에 있어서 적지 않은 의미를 지닌다. 출가出家와 재가在家를 물을 것 없이 지혜와 자비의 가르침은 우리들 일상의 든든한 의지처가 될 뿐 아니라, 삶의 가치 척도가 된다. 요즘 처럼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 되어버린 어지러운 세상에서는, 우리가 기댈 수 있는 의지처와 가치 척도가 더욱 절실한 삶의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그런데 지나간 과거와 현재를 통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모처럼 바른 법은 만났으면서도 자신의 삶에 그 지혜와 자비의 교훈이 생활화되지 않고 보편화되지 않아 물에 기름 돌 듯 겉도는 수가 많다. 불법의 문전에서만 서성거리다가 시류에 휩쓸리고만 경우가 얼마나 많았던가. 투철한 구도정신과 출가정신 없이 그날그날 무위도식無位徒食 하면.. 2022. 4. 17. 자연의 소리에 귀기울이라 법정스님-버리고 떠나기 새벽 예불을 마치고 나니 문득 비 내리는 소리가 들린다. 간밤에는 처마 끝에 풍경 소리가 잠결에 들리던 걸로 미루어 바람이 불었던 모양이다. 이제는 풍경 소리도 멎은 채 소곤소곤 비 내리는 소리뿐이다. 밖에 나가 장작더미에 우장을 덮어주고 뜰가에 내놓았던 의자도 처마 밑에 들여놓았다. 그리고 요즘 막 꽃대가 부풀어오르는 수선화水선花의 분도 비를 맞으라고 밖에다 내놓았다. 비설거지를 해놓고 방에 들어와 빗소리에 귀를 모으고 있으니 참 좋다. 오랜만에 어둠을 적시는 빗소리를 들으니 내 마음이 말할 수 없이 그윽해지려고 한다. 우리가 무슨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은 삶의 중요한 한몫이다. 그 소리를 통해서 마음에 평온이 오고 마음이 맑아질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소리의 은혜가 아닐 .. 2022. 4. 17. 깨달음과 닦음 깨달음悟과 닦음修은, 독립된 체험이나 현상이 아니라 상호 보완한다. 닦음 없이는 깨달음을 얻을 수 없고, 깨달음에 의해 닦음은 더욱 심화될 수 있다. 깨달음이 개인적인 체험이라면 닦음은 사회적인 의무와 나누어 가짐廻向으로 이어진다. 종교가 어느 문화 현상보다도 값질 수 있는 것은, 개인의 체험에 그치지 않고 되돌리고 나누어 가지는 대사회적인 기능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깨달음과 닦음에 완성이 있을 수 있을까?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제품이라면 완성이 있겠지만, 정신세계에 있어서 완성이란 우리가 두고두고 추구해야 할 이상이지 현실은 아니다. 깨달음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체험이므로 그 얕고 깊음의 개인차가 있을 수밖에 없다. 닦음 또한 마찬가지다. 어린이의 인식과 체험의 세계가 성인의 그것과 같을 수 없.. 2022. 4. 17. 이전 1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