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스님9 지혜로운 삶의 선택 산에는 꽃이 피네 자연은 모든 생명의 원천이고 사람이 기댈 영원한 품이다. 또 자연 은 잘못된 현대 문명의 유일한 해독제이다. 하늘과 구름, 별과 이슬과 바람, 흙과 강물, 햇살과 바다, 나무와 짐승과 새들, 길섶에 피어 있는 하잘 것 없는 풀꽃이라도 그것은 우주적인 생명의 신비와 아름다움 을 지니고 있다. 건성으로 보지 말고 유심히 바라보라. 그러면 거기에서 자연이 지 니고 있는, 생명이 지니고 있는 신비성과 아름다움을 캐낼 수가 있다. 모든 것이 다 필요한 존재이다. 이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다 필요한 것이다. 어떤 생물이 됐든 필요하기 때문에 생겨났다. 그런데 그것이 귀찮다고 해서 농약으로, 강한 살충제로 죽여 보라. 그 생 물만 없어지는 게 아니고 그것이 연쇄반응을 일으켜서 우리에게 진 짜.. 2022. 4. 20. 자연은 커다란 생명체다. 중국 송대의 시인이며 서예가인 황산곡黃山谷의 글인데, 내 거처의 주련으로 쓸까 해서 골라놓고도 아직 빈 기둥인 채로 지내고 있다. 짧은 글이지만 진솔하고 기상이 있다. 자연을 한아름 안고 있어 가끔 읊어지는 시이다. 활짝 트인 하늘과 구름과 비, 산과 사람과 물과 꽃을 거느리고 있는 자연에 기대어 살아가노라면, 이 우주 대자연이 하나의 커다란 생명체로 느껴질 때가 있다. 불교용어를 빌리자면, 산하대지 이대로가 살아 있는 청정한 법신法身이라는 것. 따라서 우리들 인간은 커다란 그 생명체에서 나누어진 한 지체인 셈이다. 만리청전(萬里靑天) 운기우래(雲起雨來) - 구만리 장천에 구름 일고 비 내린다. 공산무인(空山無人) 구류화개(九流花開) - 사람 없는 탕 빈 산에 시냇물 흐르고 꽃 피더라. 맑게 갠 여름.. 2022. 4. 17. 온화한 얼굴 상냥한 말씨 비 개이자 개울물소리가 한층 여물어졌다. 밤낮으로 쉬지 않고 흐르는 개울물소리에 귀를 모으고 있으면 내 안에 묻은 먼지와 때까지도 말끔히 씻겨지는 것 같다. 개울가에 산목련이 잔뜩 꽃망울을 부풀리고 있다. 한 가지 꺾어다 식탁 위에 놓을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갓 피어나려고 하는 꽃에게 차마 못할 일 같아서다. 철 따라 꽃이 피어나는 이 일이 얼마나 놀라운 질서인가. 그것은 생명의 신비이다. 꽃이 피어나는 것은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다. 꽃의 정기를 머금고 있는 나무가 스스로의 충만한 삶을 안으로 안으로 다스리다가 더 견딜 수 없어 마침내 밖으로 터뜨리는 것이다. 자연계에서는 보면 꽃은 향기로운 미소다. 칙칙한 수목들만 있고 꽃을 피우는 나무나 풀이 없다면, 숲은 미소를 잃은 얼굴처럼 삭막하고 딱딱할 것이다.. 2022. 4. 17. 어진 이를 가까이하라. 어떤 인연에서였건 간에 금생에 불법佛法을 만나게 된 것은 개인의 생애에 있어서 적지 않은 의미를 지닌다. 출가出家와 재가在家를 물을 것 없이 지혜와 자비의 가르침은 우리들 일상의 든든한 의지처가 될 뿐 아니라, 삶의 가치 척도가 된다. 요즘 처럼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 되어버린 어지러운 세상에서는, 우리가 기댈 수 있는 의지처와 가치 척도가 더욱 절실한 삶의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그런데 지나간 과거와 현재를 통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모처럼 바른 법은 만났으면서도 자신의 삶에 그 지혜와 자비의 교훈이 생활화되지 않고 보편화되지 않아 물에 기름 돌 듯 겉도는 수가 많다. 불법의 문전에서만 서성거리다가 시류에 휩쓸리고만 경우가 얼마나 많았던가. 투철한 구도정신과 출가정신 없이 그날그날 무위도식無位徒食 하면.. 2022. 4. 17. 자연의 소리에 귀기울이라 법정스님-버리고 떠나기 새벽 예불을 마치고 나니 문득 비 내리는 소리가 들린다. 간밤에는 처마 끝에 풍경 소리가 잠결에 들리던 걸로 미루어 바람이 불었던 모양이다. 이제는 풍경 소리도 멎은 채 소곤소곤 비 내리는 소리뿐이다. 밖에 나가 장작더미에 우장을 덮어주고 뜰가에 내놓았던 의자도 처마 밑에 들여놓았다. 그리고 요즘 막 꽃대가 부풀어오르는 수선화水선花의 분도 비를 맞으라고 밖에다 내놓았다. 비설거지를 해놓고 방에 들어와 빗소리에 귀를 모으고 있으니 참 좋다. 오랜만에 어둠을 적시는 빗소리를 들으니 내 마음이 말할 수 없이 그윽해지려고 한다. 우리가 무슨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은 삶의 중요한 한몫이다. 그 소리를 통해서 마음에 평온이 오고 마음이 맑아질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소리의 은혜가 아닐 .. 2022. 4. 17. 시작할때 그 마음으로 이 글은 1998년 2월 24일, 법정스님의 명동 성당에서 강론했던 말씀으로, 김수환 추기경이 길상사 개원 법회에 참석해 축사 한 것의 답례 성격으로 이루어진 일이 있었다. 이해인 수녀님이 당시 강론을 녹음해서 세상에 알려졌다. 스님께서는 강론에 앞서 이렇게 인사했다. “명동성당 축성 100주년을 맞이하는 올해 이 자리에서 강론을 하게 해 주신 천주님의 뜻에 거듭 감사드립니다” 가난을 배우라 경제가 어려울 때일수록 우리가 각성해야 할 것은 경제 때문에 관심 밖으로 밀려난 인간 존재입니다. 너무 경제, 경제 하면서 인간의 문제가 뒷전으로 밀리고 있습니다. 인간의 윤리적인 규범이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양심이 마비되고 전통적인 가치가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돈 몇 푼 때문에 사람이 사람을 죽입니다. 대량생산.. 2022. 4. 17. 무엇을 깨닫고 무엇을 닦을 것인가 타이베이台北에서 겪은 일이다. 타고온 택시에서 내려 차비를 치르려는데 그 자리에서 차를 타게 된 청년이 차비는 자기가 공양할테니 스님들은 그냥 내리시라고 했다. 어느날 고궁박물관을 관람하고 나와 점심을 먹기 위해 채식 식당을 찾아 두리번 거리고 있을 때, 지나가는 아주머니 한 분에게 이곳에서 가까운 채씩 식당이 어디쯤에 있는지를 물었었다. 아주머니는 가던 길을 돌아서 우리 일행을 데리고 한참을가더니 깨끗한 식당을 알선해주고 갔다. 점심을 맛있게 먹고 식비를 내려고 카운터에 서니 아까 그 아주머니가 이미 점심값을 냈다는 것이다. 생면 부지의 외국 스님에게 베푼 두 불자의 선의善意를 보고 대만 불교의 한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종교란 도대체 무엇인가? 신앙생활이란 어떤 것인가를 곰곰이 생각하지 않을 수 .. 2022. 4. 17. 깨달음과 닦음 깨달음悟과 닦음修은, 독립된 체험이나 현상이 아니라 상호 보완한다. 닦음 없이는 깨달음을 얻을 수 없고, 깨달음에 의해 닦음은 더욱 심화될 수 있다. 깨달음이 개인적인 체험이라면 닦음은 사회적인 의무와 나누어 가짐廻向으로 이어진다. 종교가 어느 문화 현상보다도 값질 수 있는 것은, 개인의 체험에 그치지 않고 되돌리고 나누어 가지는 대사회적인 기능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깨달음과 닦음에 완성이 있을 수 있을까?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제품이라면 완성이 있겠지만, 정신세계에 있어서 완성이란 우리가 두고두고 추구해야 할 이상이지 현실은 아니다. 깨달음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체험이므로 그 얕고 깊음의 개인차가 있을 수밖에 없다. 닦음 또한 마찬가지다. 어린이의 인식과 체험의 세계가 성인의 그것과 같을 수 없.. 2022. 4. 17. 버리고 떠나기 뜰가에 서 있는 후박나무가 마지막 한잎마저 떨쳐버리고 빈 가지만 남았다. 바라보기에도 얼마나 홀가분하고 시원하지 모르겠다. 이따금 그 빈 가지에 박새와 산까치가 날아와 쉬어간다. 부도 앞에 있는 벚나무도 붉게 물들었던 잎을 죄다 떨구고 묵묵히 서 있다. 우물가 은행나무도 어느 새 미끈한 알몸이다. 잎을 떨쳐버리고 빈 가지로 묵묵히 서 있는 나무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내 자신도 떨쳐버릴 것이 없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나무들에 견주어볼 때 우리 인간들은 단순하지 못하고 순수하지 못하며, 건강하지도 지혜롭지도 못한 것 같다. 그저 많은 것을 차지하려고만 하고, 걸핏하면 서로 미워하고 시기하면서 폭력을 휘두르려 하며 때로는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한 채 콕 막혀 어리석기 짝이 없다. 오늘 오후, 옷깃을 여미게 할.. 2022. 4. 17. 이전 1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