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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

자연은 커다란 생명체다.

by 파장波長 2022. 4. 17.

중국 송대의 시인이며 서예가인 황산곡黃山谷의 글인데,
내 거처의 주련으로 쓸까 해서 골라놓고도 아직 빈 기둥인 채로 지내고 있다.
짧은 글이지만 진솔하고 기상이 있다.
자연을 한아름 안고 있어 가끔 읊어지는 시이다.
활짝 트인 하늘과 구름과 비, 산과 사람과 물과 꽃을 거느리고 있는 자연에 기대어 살아가노라면,
이 우주 대자연이 하나의 커다란 생명체로 느껴질 때가 있다.
불교용어를 빌리자면, 산하대지 이대로가 살아 있는 청정한 법신法身이라는 것.
따라서 우리들 인간은 커다란 그 생명체에서 나누어진 한 지체인 셈이다.

 

만리청전(萬里靑天) 운기우래(雲起雨來) - 구만리 장천에  구름 일고 비 내린다.
공산무인(空山無人) 구류화개(九流花開) - 사람 없는 탕 빈 산에  시냇물 흐르고 꽃 피더라.

맑게 갠 여름날,
오랜만에 돋아난 밤하늘의 별들을돗자리 위에 누어서 쳐다보면 있으면 광대무변한 우주와 내 자신과의 상관관계를 새삼스레 헤아리게 된다.
전체와 개체의 이 상관관계에 대한 투철한 인식을 통해 우주와 인간의 조화에 곁들여 개인의 존재 의미도 새로워질 수 있다.
있어도 그만이고없어도 그만인 시들한 존재가 아니라,
이 세상에 없어서는 안 될 그때 그 자리에 반드시 있어야 할 뚜렷한 존재로 떠오른다.
일찍이 지혜로운 우리 선인들은 우주 대자연의 현상을 남성적인 요소와 여성적인 요소, 즉 음양의 조화로 파악했었다.
두 기본적인 기능인 '받아들임'과 '스며듬'이 양극성을 이룬다고 생각했었다.
대지와 비, 강과 바다, 어둠과 빛, 해와 달, 육체와 영혼, 물질과 정신의 양극성이 그것이다.

 

 

낮과 밤은 겉으로는 맞서 있는 것 같지만 같은 목적에 이바지하고 있다.
서로의 일을 수행하기 위해 밤과 낮은 서로 도우면서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음양의 조화와 대자연의 질서를 우리 인간이 배우고 익혀 겸허하게 받아들인다면 인간의 삶은 보다 향상될 것이다.
그러나 그러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인간의 어리석음이 있다.
지난번 경기도 용인 일대에서 귀중한 인명과 막대한 재산의 피해를 입으면서 겪은 수해는,
재난을 당한 당사자들이나 보도기관에서 한결같이 그것은 천재天災가 아니라 인재人災라고 했다.
말하자면 그 조화와 질서를 무시하고 돈벌이에만 눈이 어두워 무분별하게 허물고 파헤치면서 골프장을 만들고자 했던 그 어리석음이 엄청난 재해를 가져온 것이다.

 

좋은 일이건 궂은 일이건 우연히 이루어지는 것은 하나도 없다.
어떤 현상이든지 우리가 부르기 때문에 찾아온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그것이 눈에 보이는 세계에 모습을 드러내기 이전에 이미 보이지 않는 상태로 존재한다.
피해 주민들은 그 지역의 골프장 공사 때문에 작년 9월 수해 때도 유출된 토사가 농경지를 뒤덮어 수차에 걸쳐 당국에 진정해 보았지만 아무런 대책도 세워주지 않았다고 한다.
골프의 재미가 어떤 것인지 우리로서는 알 수 없지만 국민의 대다수가 아닌 몇몇 특정한 사람들만이 즐기기 위해 국토를 허물고 파헤쳐 마침내는 무고한 인명을 희생시키고 농경지를 못쓰게 만들며 없는 살림의 가재도구까지 흙더미에 묻히게 한 것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이래서 이 땅의 정치와 행정은 가진 자들의 편에 서 있다고 항변하기에 이른 것이다.
한쪽에서는 타산에 맞지 않는 농사지만그 논밭에서 피땀을 흘려 가며 일을 하는데 바로 그 곁에서 골프채를 꼬나쥐고 여가를 즐기고 있다니,
이러고도 윤리와 도덕과 양심이 이 땅에 제대로 뿌리내릴 수 있을까?
바로 이런 현상이 우리 사회에 위화감을 조성하고 계층의식을 불러일으킨다.
우주의 대생명체인 그 자연을 한낱 투기의 수단이나 개발의 대상으로 여기고 있는 발상 또한 반자연적이고 반윤리적이라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땅이 생겨난 이래 수천 년을 두고 땅에 의지해 살아온 조상들의 피와 살과 얼이 스며 있는 이 신성한 인간의 대지를, 생산을 위해서가 아니라 한낱 놀이를 위해 허물고 파헤치는 것은 돌이킬 수 없는 악이다.

 

바람직한 삶은 더 말할 것도 없이 우주의 대생명체와 우리 자신이 하나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 있다.
그리고 그 성스러운 흐름을 향해 우리들 자신을 활짝 열어놓아야 한다.
이 열린 마음으로 써만 받아들임과 스며듬의 우주의 질서를 알아차릴 수 있고 생명체의 호흡이나 다름없는 자연의 조화를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산다는 것은 이 우주가 벌이고 있는 생명의 잔치에 함께하는 일이다.
사람이 착하고 어진 마음을 쓰면 이 우주에 있는 착하고 어진 기운들이 딸려온다.
반대로 어둡거나 어리석은 생각을 지닐 때는 이 우주 안에 있는 음울하고 파괴적인 독소들이 몰려온다.
이런 도리가 또한 커다란 생명체인 자연의 질서요 신비다.
이 여름의 재난 앞에서 다 같이 생각해볼 일이다. <법정스님-버리고 떠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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