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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

자연의 소리에 귀기울이라

by 파장波長 2022. 4. 17.

법정스님-버리고 떠나기

새벽 예불을 마치고 나니 문득 비 내리는 소리가 들린다.
간밤에는 처마 끝에 풍경 소리가 잠결에 들리던 걸로 미루어 바람이 불었던 모양이다.
이제는 풍경 소리도 멎은 채 소곤소곤 비 내리는 소리뿐이다.
밖에 나가 장작더미에 우장을 덮어주고 뜰가에 내놓았던 의자도 처마 밑에 들여놓았다.
그리고 요즘 막 꽃대가 부풀어오르는 수선화水선花의 분도 비를 맞으라고 밖에다 내놓았다.
비설거지를 해놓고 방에 들어와 빗소리에 귀를 모으고 있으니 참 좋다.

 

오랜만에 어둠을 적시는 빗소리를 들으니 내 마음이 말할 수 없이 그윽해지려고 한다.
우리가 무슨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은 삶의 중요한 한몫이다.
그 소리를 통해서 마음에 평온이 오고 마음이 맑아질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소리의 은혜가 아닐 수 없다.
특히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일은 곧 자기 내면의 통로로 이어진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이때 생각은 딴 데다 두고 건성으로 듣지 말 일이다.

 

​그저 열린 마음으로 무심히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
'무심無心'이란 말에 조차 매이지 말고 그저 열린 귀로 듣기만 하라.
소리 없이 내리는 비가 메말랐던 마음밭을 촉촉이 적셔줄 것이다.

​얼마 전 서울에 갔을 때 마침 삼불三佛 김원룡 박사의 문인화전文人畵展이 조선일보 미술관에서 열리던 참이었다.
여느 직업적인 화가의 그림보다 밝고 담박한 선과 색채에 유머가 있어 보는 마음을 한없이 즐겁게 했다.
이 또한 그날 하루의 내 조촐하고 향기로운 삶을 이루게 했다.
1백여 점 되는 그림 가운데 관음상觀音像이 두 폭 있었는데,
그중 한 폭이 그림도 뛰어나고 화제畵題도 좋아 아직까지 생생하게 내 기억에 자리하고 있다.
작년 부처님 오신 날에 그림인데 '觀音像 聽世音 施慈悲 浮世萬物 無非觀世音菩薩'이란 화제를 달고 있었다.
'세상의 소리를 살피고 세상의 소리에 귀 기울여 자비를 베푸니 이 풍진 세상의 만물이 곧 관세음보살 아닌 것이 없더라.'

 

​경전에 따르면 관세음보살은 듣는 일을 통해 깨달음을 이루었다고 했다.
이와 같이 어떤 현상이나 사물의 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우리 삶에 큰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대개의 사람들은 사는 일에 급급하여 자연의 소리를 들을 줄 모른다.
아니, 아예 들으려고 조차 하지 않는다.
바닷가에 살면서도 파도소리를 못하고, 산중에 살면서도 솔바람이 어떤 것인지조차 모른다.
시시껄렁하고 쓸데없는 소리에는 곧잘 귀를 팔며 덩달아 입방아들을 찧으면서도 마음을 맑게 하고 평온하게 그런 소리에는 귀를 닫기가 일쑤다.
빗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으니 문득 인도의 성자 까비르의 시가 떠오른다.

 

「​빛의 비가 내리네
보이지 않는 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질문과 대답이 이루어지고

 

말하는 이도 듣는 이도 없네

여기 환희의 비가 내리네
하늘 한복판에서 활짝 핀 연꽃처럼
한번 빛의 비에 젖은 이는 더는 젖지 않으리
누가 이 감정을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으리.」

 

​이 우주의 무한한 진리가 굳이 어떤 종교의 경전이나 가르침 속에만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경전이나 종교적인 교리는 이미 틀 속에 있는 것은 아니다.
경전이나 종교적인 교리는 이미 틀 속에 갇혀 팔팔한 생기를 잃어버린 지 오래다.

 

​순간순간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현장에서 내 눈으로 보고 내 귀로 듣고 내 마음으로 느껴야 한다.
일상에 매몰된 그런 눈과 귀와 마음이 아니라, 눈 속의 눈으로, 귓속의 귀로,
마음속의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티 없이 맑은 심성을 지닌 사람만이 어떤 현상에서나 살아있는 진리를 발견한다.
열린 마음을 지닌 사람은 서로 다른 종교 속에서도 하나의 진리를 발견하고 닫힌 마음을 지니게 되면 하나의 진리 대신 차별만을 무수히 찾아낸다.
우리들이 순간순간 부딪치면서 살아가는 지금 당장의 일이 삶의 알맹이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삶에 가장 절실한 가르침이, 지금 이 자리의 이런 삶과 가장 가까운 종교가 진짜 종교다.

 

​지금 당장의 삶과 아무 상관도 없는 메마르고 관념적이고 사변적인 가르침은 종교를 빙자한 공허한 헛소리다.
그 누구의 경우건 법문이란 이름 아래 이런 '헛소리'에
지금까지 우리가 얼마나 많이 속아 왔는지, 냉정하게 맑은 제정신으로 살펴볼 줄 알아야 한다.
하루하루, 한순간 한 순간이 우리를 형성하고 거듭나게 한다.
이 한 순간 한 순간이 깨어있는 영원한 삶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어떤 삶이라 할지라도 각자에게 주어진 삶의 몫을 부질없이 낭비하고 말 것이다.
미국의 사상가 '랄프 트라인'은 이렇게 읊고 있다.

 

​그대, 진정으로 원하는가?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을 잡아라.
무엇을 하든 무엇을 꿈꾸든
지금 이 순간부터 시작하라.

 

​자신의 주관을 지니고 사람답게 살려고 하는 사람은 누구나 자기 스스로 발견한 길을 가야 한다.
그래서 자기 자신의 꽃을 피워야 한다.
오늘 아침, 올봄 들어 처음으로 숲에서 찌르레기의 야무진 목청이 들린다.
이제 또 봄이 시작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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