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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담소

언제나 나와 함께 하는 것

by 파장波長 2024. 2. 22.

우리는 부처님처럼 진아(眞我)를 찾아야 합니다. 자기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무엇보다 먼저 참된 '나'를 찾아야 합니다. 참된 '나'를 찾는 것이야말로 우리를 살리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중생에게는 ‘나’가 많습니다. 너무나 오래 잊고 살았기 때문에 참된 ‘나'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 몸을 ‘나’라고 생각하고, 어떤 사람은 마음 또는 정신을 '나'라고 생각하며, 내가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을 '나'라고 하는 이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참된 ‘나’인가? 이와 관련된 재미있는 비유담이 있습니다.

네 종류의 마누라

옛날, 어느 고을의 나이 20세 된 사내가 이웃 고을의 처녀를 아내로 맞이하였습니다. 그들은 아주 갓난아기 때 양가 부모가 혼약(婚)한 사이였으므로 혼인 전에는 서로 얼굴도 성품도 모르고 지냈습니다. 그런데 막상 결혼을 하고 보니 신부의 얼굴이 약간 곰보인데다 몸매도 좋지 않고 무뚝뚝한 것이 도통 정이 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워낙 가난한 집안인지라, 두 부부는 서로에 대한 불평없이 부지런히 일을 하며 세월을 보냈습니다.

고진감래(苦盡甘來)라고, 결혼 후 10년이 지나자 집안은 어느 정도 먹고 살 만큼 되었습니다. 그때서야 남녀간의 달콤한 관계를 그리워하게 된 남편은 인물이 좋은 규수를 얻어 둘째 부인으로 삼았습니다. 동시에 본부인에 대한 남편의 괄시도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당신은 오늘부터 뒤채를 쓰시오. 그것이 싫거든 이 집을 나가든지.”

그러나 원래 투기할 줄 모르는 본부인은 뒷방으로 물러나 온갖 구박을 받으면서도 집안 구석구석의 일을 꾸려나갔습니다. 부엌살림에 논도 매고 밭도 매고, 그야말로 본부인이 아니라 머슴처럼 살았습니다.

또 10여 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더욱 부자가 된 남편은 기방(妓房) 출입을 시작하였습니다. 특히 눈웃음을 잘 짓는 춘심이라는 기생은 옆에 찰싹 달라붙어 갖은 애교를 다 떨었고, 무엇이든 시키는 대로 다 했습니다. 그것이 마음에 든 그는 춘심이를 셋째 부인으로 맞이했습니다. 이제 남부러울 것 없게 된 그였지만, 워낙 욕심이 많았던지라 편히 지낼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욱 열심히 일하며 논밭을 사고 재산을 모았던 것입니다.

어느덧 나이 50줄을 넘어선 그는 고을 제일의 부자가 되었고, 남은 생을 편히 즐기며 살기로 작정하였습니다. 그러나 평생을 돈과 일에 매달려 살았던 탓인지, 멋있게 사는 방법에 대한 묘안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기껏 생각해낸 것이 딸같이 젊고 아리따운 아가씨를 데리고 살면 즐겁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때마침 그 고을 최고의 미인이요 애교 만점인 처녀가 불의의 사고로 부모를 잃고 동생들을 돌보며 살고 있었습니다. 역시 돈은 좋은 것이었습니다. 많은 돈을 주자, 그녀 또한 그의 것이 되었습다. 그는 사는 즐거움을 그녀에게서 찾았고, 넷째 부인 또한 늙은 그에게 미소를 잃지 않았습니다. “서방님, 보약 대령이옵니다.” “제 다리를 베고 누우세요. 귀를 후벼 드릴께.” 마음에 드는 말과 갖은 아양에 노인은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고, 마침내 돈금고와 쌀창고 열쇠까지 넷째 부인에 게 모두 넘겨주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노인은 갑자기 병이 들고 말았습니다. 용한 의원을 데려다가 진맥을 받았더니 더욱 비관적인 말을 했습니다.

“여자를 너무 가까이하여 진액(眞液)이 고갈되었으니, 보약으로 몸을 보하기는 하되 아무래도 죽을 준비도 함께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제 고을 제일의 부자가 되었고, 마음에 드는 여자도 얻어 즐겁게 살고 있는데 죽어야 하다니....... 염라대왕이 질투하지 않고서야 어찌 이와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노인은 그 무엇보다 혼자 염라대왕 앞으로 가는 것이 싫었습니다. 그래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듯한 넷째 부인에게 물었다. 

“네째야, 이제 내가 죽을 날도 멀지 않은 것 같구나. 그런데 그 무서운 염라대왕 앞에 혼자 가기가 너무 싫구나. 너는 그동안 온갖 정성으로 나를 보살피고 사랑했으니 당연히 나와 함께 가주겠지?”
"영감님, 그런 말씀 마세요. 사실 당신이 나를 사랑했지 제가 당신을 사랑한 줄 아세요? 제가 진정으로 사랑한 것은 영감님의 재산입니다. 불쌍한 제 동생들을 먹여 살리고, 영감님 돌아가신 후에 한밑천 얻기 위해 열심히 사랑하는 척 했을 뿐이에요. 어찌 저라고 하여 꽃다운 이 나이에 젊은 남정네와 사랑하고 싶지 않겠습니까? 저는 함께 죽어 저승 길을 가지 않으렵니다. 다만 영감님의 빈소 앞에서는 열심 히 명복을 빌어 드릴께요.” 

노인은 그렇게 말하는 넷째 부인이 괘씸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조금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혼자 가기는 싫어 셋째 부인을 불렀다.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던 사람은 셋째 바로 너란다. 셋째야, 나랑 같이 죽자.” 
“이제 와서 무슨 그런 말씀을! 영감은 넷째를 가장 좋아 했잖아요. 그애를 데려가세요.” 
“넷째는 안 가려고 하더구나. 그러니 너라도 따라가자꾸 나.” 
“제가 그동안 넷째 때문에 얼마나 속을 썩었는지 아십니 까? 그것을 생각하면.... 그렇지만 그동안 당신 신세를 많이 졌으니 화장막 앞까지만 따라갈께요. 그 이상이야 어떻게 따라가겠습니까? 시뻘건 불구덩이에 함께 들어가는 것은 정말 싫어요.” 

노인은 다시 둘째 부인을 불렀다. 

“둘째야, 셋째·넷째는 나와 함께 가지 않겠다는구나. 너라도 따라가자.”
“아이구, 영감. 나는 당신한테 속아서 시집온 것이나 다름 없소. 처음에는 한평생 원앙새처럼 부부정을 나누자더니, 셋째·넷째를 들이고부터는 밤낮없이 청소나 시키고....... 이 제와서 염라대왕 앞까지 나를 함께 끌고가려 해요?”
“그래 그래. 내가 잘못했다. 그러니 너만이라도 나와 함께 가자.”
“...할 수 없지요. 죽으나 사나 당신한테 매인 몸이니... 함께 가고 싶은 마음은 털끝만큼도 없지만 가자고 하니 가 겠소. 그렇지만 내가 영감을 따라가고 싶어서 가는 것은 절 대로 아니오.”

가고 싶지 않다는 둘째를 억지로 끌고가기도 그러하여 노인은 마지막으로 본부인을 찾았습니다. 몇 년만의 남편 호출에 지레 겁을 먹은 본부인은 벌벌 떨면서 방문을 열고 한 발을 들여놓았습니다. 순간 노인의 눈에는 처음 혼인할 때 쪽두리를 쓰고 얌전하게 서 있던 신부의 모습이 겹쳐 보였습니다.

“당신이 나 하나 믿고 시집을 왔는데, 평생 나 때문에 고 생만 하고 살았구려.”

노인은 감정이 복받쳐 본부인의 손을 꼭 잡았다. 그동안 궂은 일만 도맡아 했던 본부인의 손은 수세미보다 더 거칠 었고 얼굴에는 깊은 주름이, 머리에는 백발이 흩날리고 있 었다. 

“여보, 정말 미안하오. 그동안 내가 너무 심했소 용서하구려”

그리고는 자초지종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러자 본부인은 담담 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습니다.

“나는 살아도 당신집 사람이요, 죽어도 당신집 귀신, 열녀는 불사이부(不事二夫)라 하지 않았습니까?  당신이 죽으면 나는 살아 있어도 죽은 몸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당신이 가자시면 천리고 만리고 염라대왕 앞이고 무조건 따라갈 터이니 걱정마세요.” 

본부인의 끝없는 사랑에 감격한 노인은 눈물을 글썽거렸습니다.

“여보, 고맙소 역시 당신뿐이구려.” 본부인은 감정에 휩싸인 남편을 찬찬히 바라보다가 자신 있게 말했습니다
“그런데 영감, 내가 보기에는 당신이 죽을 것 같지 않은데 무얼 그렇게 걱정하십니까? 여기 누워 보세요.”

그리고는 꿀물을 한 사발 타다가 남편에게 먹이고 팔다리를 물껑물껑 주물러주었다. 노인은 온몸이 시원해지는 것을 느끼면서 깊은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렇게 한숨 푹 자고 일어 나니 몸이 거뜬한 게 죽을 것 같지가 않았습니다. 노인은 네 명 의 부인을 불러들였습니다.

“내 일찍이 《반야심경을 보았더니 그속에 ‘원리전도몽상(遠離顚到夢想) 하라.’는 법문이 있었소, ‘전도된 몽상을 멀리 떠나라.’, ‘몽상 때문에 거꾸로 된 것을 멀리 떠나라. 는 말씀이었지. 이때까지는 그 말의 의미를 깨닫지 못했는데, 오늘의 일을 당하고 보니 사랑할 것을 사랑하지 않고 사랑하지 않을 것을 사랑한 것이 바로 전도몽상임을 깨달았소.”

숙연해진 네 명의 부인을 차례로 돌아보던 노인은 넷째 부인에게 시선을 주고 말했습니다. 

“넷째야. 젊디젊은 너를 꼼짝도 못하게 아랫목에 앉혀놓고 '이게 뉘 궁둥인고, 뉘 궁둥인고 하였으니 얼마나 답답 했겠느냐? 그동안 하찮은 늙은이 옆에서 욕 많이 봤다. 내일부터는 나가서 부엌일을 맡아라. 밥도 하고 국도 끓이고 찌개도 만들고 설거지도 해라. 앞치마 입고 소매 걷어붙이 고 신바람나게 일해라.”
“셋째야. 너는 아직 젊으니까 일꾼들과 함께 논도 매고 밭도 매고 풀도 매도록 해라.”
“둘째, 당신은 오십줄을 바라보고 있으니 너무 힘든 일은 하지 말고 집안 청소나 하며 사시오.” “부인! 그동안 참으로 고생 많이 했소 오늘부터는 넷째가 앉았던 이 아랫목을 차지하고 금고 관리나 하시오. 그리고 비단옷 입고 화장도 하고 건강이나 잘 보살피시오.” 

그날부터 집안은 완전히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젊은 부인들이 나가 일하니 음식도 좋아지고 농사도 잘 되었으며 집안은 구석구석까지 깨끗해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늙은 할머니가 아랫 목에 앉아 돈금고를 잘 관리하니 재산은 늘어만 갔다. 금고에 돈이 들어가면 살살 빠져나가기만 했던 넷째 부인의 시절과는 달리 본부인이 관리하자 한번 금고로 들어간 돈은 좀처럼 나올 줄을 몰랐습니다. 금고는 하나씩 하나씩 늘어만 갔고 마침내 이 집안은 백만장자가 되었으며, 노인 내외는 백 년해로 하였다고 합니다.

아끼고 가꾸어야 할 보배

이상의 이야기는 사람들의 세상사는 모습을 일부다처제 시대의 경황에 비유한 것으로, 이야기 속의 넷째 부인은 세상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돈을 가리킵니다.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 잠을 줄여가면서까지 몰두를 합니다. 사탕이나 꿀 물처럼 당장 우리 자신을 달콤하게 만드는 것이 돈이요, 없으면 당장 비참함과 무력함을 느끼게 하는 것이 돈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한평생 돈의 노예가 되어 살아 가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돈이 필요불가결한 것이기는 하지만, 돈은 결코 나의 진정한 반려자가 될 수는 없습니다. 넷째 부인이 “당신이 나를 사랑했지 내가 당신을 사랑한 줄 아세요?”라고 하였듯이, 사람이 돈을 좋아했지 돈이 사람을 좋아한 것이 아니다. 돈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정신없이 달려들었지, 돈이 사람 좋다고 달려드는 경우는 없는 것입니다.

인간의 돈에 대한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가지면 가질수록 더 갖고 싶은 것이 돈입니다. 물론 돈만이 그러한 것은 아닙니다. 이성교제 · 음식 · 명예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남녀관계도 밝히기 시작하면 끝이 없습니다. 잘 먹고 잘 입는 것도 끝이 없고 명예나 권력 또한 누려도 누려도 한이 없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우리 자신을 점검해봅시다.

‘나는 지금 참된 자기를 팽개치고 돈의 노예, 쾌락의 노예, 명예나 권력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고 있지나 않은지?’

셋째 부인은 아들·딸, 집안 식구, 친척 등을 가리킵니다. 부모들은 자식들 때문에 평생을 가슴 조이고 온갖 노력을 기울인다. 하지만 대신 아파주거나 대신 울어주거나 대신 죽어줄 수는 없습니다. 내가 죽은 다음 화장막의 불 속이나 무덤 속까지 함께 들어갈 가족은 결코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가족·친척이란 모두가 보이지 않는 업(業)으로 맺어진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가족에 대한 도리는 다하되, 지나친 기대나 집착을 가져서는 안됩니다. 오직 내가 베풀 수 있는 사랑, 서로를 살리는 사랑을 나누면서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둘째 부인은 무엇인가? 바로 나의 몸, 이 몸뚱이 입니다. 이 몸뚱이는 아무리 잘 먹이고 잘 돌보아도 나이 60이 되기 전에 고물자동차가 되어버립니다. 단 10년이라도 더 끌고 다니고 싶다면 곱게 곱게 몰아야지, 험한 길 비포장도로로 끌고 다니면 금방 고장이 나버립니다.

그런데 이 몸뚱이가 죽고 싶어 죽는 경우는 세상 천지에 없습니다. 수명이 다하고 세상 인연이 다하였으니 할 수 없이 죽어갈 뿐입니다. 이렇게 할 수 없이 죽는 것이지, 죽음이 좋아서 사라져가는 몸뚱이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래서 둘째 부인이 “함께 가고 싶은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지만, 당신이 가자고 하니 할 수 없이 따라간다.”고 한 것입니다. 

이제 본부인에 대해 알아봅시다. 본부인은 곧 도(道)를 가리킵니다. 돈과 정반대의 입장에 있는 도가 본부인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도가 무엇인가? 마음 닦는 것이 도입니다. 나의 참된 마음자리를 살펴보고 자성불(自性佛)을 잘 돌보는 것이 도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1년 365일 중 단 하루라도 마음자리를 가꾸며 살아가고 있는가? 아닐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음자리를 괄시하고 살아갑니다. 매일 같이 돈과 가족과 몸뚱이를 돌보기에 급급하여 마음자리 따위는 아예 무시해버립니다. 곧 눈에 보이는 각종 번뇌를 좇아 밖으로 밖으로 헤맬 뿐입니다.

집에서 키우던 강아지도 잠시 보이지 않으면 온동네를 돌아다니며 찾기 마련인데, 참된 주인공인 마음부처가 희노애락(喜怒哀樂)·우비고뇌(優悲苦惱) 속에서 수없이 상처받고 시달려도 찾아보기는커녕 한차례 다독거려주는 일조차 마다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왜 우리들의 삶이 이렇게 되어버린 것일까요? 왜 중생들은 끊임없는 행복, 더 큰 자유를 추구하면서도 고통의 삶을 거부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피하고만 싶은 고난이 닥쳐와도 무조건 당하고 무조건 받으며 사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시작없는 옛적부터 금생에 이르기까지 나의 참 된 마음자리를 등지고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둘째·셋째·넷 째 부인에게 차례로 빠져서 조강지처인 본부인을 아예 돌아 보지도 않는 삶, 몽상 속에 빠져 거꾸로 사는 삶을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의 청정한 자리, 나의 자성불(自性佛), 내 스스로 갖추고 있는 부처님 자리를 등져버린 채 결코 주인이 될 수 없는 객진번뇌(客塵煩惱)를 좇아 흘러다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참된 주인공인 마음자리를 돌아보지 않고 돈·가 족·몸뚱이를 주인으로 삼아 노예처럼 살아왔으니, 어찌 자유가 있겠으며 괴롭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참된 ‘나’를 버리고 부산히 먼지를 일으키는 어리석은 짓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나'는 고통과 비애와 불행이 가득한 세상의 한복판에 서 있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일타 큰스님 법문 글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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