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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담소

구차제정 九次第定

by 파장波長 2022. 5. 30.

구차제정(九次第定)은 사선정(四禪定)과 사무색정(四無色定), 멸진정(滅盡定)을 합한 아홉 단계의 선정을 말하며 진리를 인식하는 단계적 성찰을 의미합니다. 구차제정은 선의 방법론이자 동시에 그 결과로 얻어지는 선정(禪定)의 단계이기도 합니다.

구차제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불교의 세계관인 삼계(三界)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삼계는 욕계(欲界)와 색계(色界), 그리고 무색계(無色界)로 구성되어 있으며 중생이 윤회하는 세계입니다.


욕계(欲界)

욕계는 욕구를 본질로 하는 존재의 세계로서 가장 밑으로는 지옥(地獄), 아귀(餓鬼), 축생(畜生), 아수라(阿修羅), 인간(人間), 천상(天上)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색계(色界)

색계는 욕계 위에 있으며 색계사선(色界四禪)의 선정의 심리상태에 있는 중생들이 머무는 곳으로, 여기에는 물질적인 것(色)은 있어도 감관의 욕망을 떠난 청정(淸淨)의 세계입니다.

사선정(四禪定)은 색계의 선정의 단계로 색계의 18천상에 해당되는 선정의 경지에 따라 네 단계로 분류한 것으로 사정려(四靜慮)라고도 합니다

① 초선(初禪)은 욕계의 본질이 욕탐(欲貪)임을 자각하여 욕탐에서 벗어남으로써 생긴 희락(喜樂)에 의식이 머물고 있지만, 일상적인 사유 활동은 계속되는 상태입니다.

② 이선(二禪)은 오관에 의한 지각과 사유를 멈추고 자신의 마음을 관조함으로써 새로운 희락을 느끼게 되며 그 희락에 의식이 머물게 되고, 이때는 소유욕이 사라지고 마음이 한곳에 머무르는 경계(心一境性)의 상태가 됩니다. 그러나 초선과는 다르게 일상적인 사유 활동은 중지됩니다.

③ 삼선(三禪)은 자신의 의식이 희락에 머무는 이유가 자신이 희락을 바라기 때문이라는 것을 자각하여 희락에 대한 욕구를 버림으로써 우리의 의식이 욕탐에서 완전히 벗어나 희락에 대해 차별상을 일으키지 않게 되며 평정한 마음으로 행복감에 머물며 지혜가 발현됩니다.

④ 사선(四禪)은 행복과 괴로움의 행(行)이 없어지고 이전에 있었던 기쁨과 근심도 제거되어 괴로움도 그치고 행복감도 그친 평정심에 의해 염(念)이 청정해지는 단계를 말합니다.

사선에서는 모든 행(行)이 점차적으로 그치게 되는데, 초선에서는 언어〔口行〕가 멈추게 되고 이선에서는 일상적인 사유활동, 심사(尋伺), 각관(覺觀)이 멈추게 되며, 삼선에서는 즐거운 마음(喜心)이 멈추게 되며, 사선에서는 호흡마저 멈추게 된다고 합니다.

무색계(無色界)

무색계는 물질적인 것도 없어진 순수한 정신만의 세계로 사무색정(四無色定)을 닦아 무색계 4선의 심리상태를 가진 중생들이 머무는 곳으로, 욕계와 색계는 물질로 이루어진 세계이므로 공간(空間)에 의지하지만 무색계는 물질을 떠난 세계이므로 공간에 의지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① 공무변처(空無邊處)는 허공이 끝이 없음을 관찰하며,
② 제2의 식무변처(識無邊處)는 마음의 작용이 허공과 마찬가지로 끝이 없다고 관찰한다.
③ 제3의 무소유처(無所有處)는 아무것도 대상이 없다고 관찰하며,
④ 상념(想念)도 없고 무상념(無想念)도 없다고 관찰하는 수행이다.

'9차제정'은 처음에 서로 관계없이 설해졌던 4선 · 4무색정〔八等至〕 에 멸진정(滅盡定)을 더한 것입니다. 멸진정이란 마음의 작용도 완전히 없게 된 삼매를 말합니다.


중아함경  〔분별 관법경〕

내가 분류하여 설명하리니, 그것을 마음에 깊이 새겨 기억하라. ....비구들이여, 비구는 이와 같은 것을 탐구해야 한다. 밖으로 식이 산란하지 않고 흩어지지 않게 하며, 안으로 불안한 집착이 없고, 걱정을 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밖으로 식이 산란하지 않고 안정될 때, 내부에 불안에 대한 집착과 두려움이 없으며, 미래에 생 노사의 괴로움이 모이거나 생기지 않는다."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고서, 자리에서 일어나 거처로 들어가셨다.

이에 비구들이 존자 대가전연의 처소에 가서 대가전연에게 말했다.  "원컨대 존자 대가전연 께서는 자비로 어여삐 여겨 그 뜻을 자세하게 일러주소서" 이에 대 가전연께서 설법하셨다.

 "벗들이여, 어떤 것을 밖으로 식이 산란해지고, 흩어진다고 하는 것일까?

벗들이여. 비구가 눈으로 색을 볼 때, 색의 겉모습을 쫓는 식이 있으면 , 색의 겉모습의 즐거움에 집착하고, 색의 겉모습의 즐거움에 묶이고, 속박된다. 이것을 밖으로 식이 산란해지고 흩어진다고 말한다. 귀로 소리를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을 보고, 몸으로 감촉을 느끼고, 마음으로 법을 분별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벗들이여, 어떤 것을 밖으로 식이 산란해지지 않고, 흩어지지 않는다고 하는 것일까?

벗들이여, 비구가 눈으로 색을 볼 때 색의 겉모습을 쫓는 식이 없으면, 색의 겉모습의 즐거움에 집착하지 않고, 색의 겉모습의 즐거움에 묶이지 않고, 속박되지 않는다. 이것을 밖으로 식이 산란해지지 않고 흩어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귀로 소리를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을 보고, 몸으로 감촉을 느끼고, 마음으로 법을 분별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벗들이여, 어떤 것을 안으로 마음이 안정되었다고 하는 것일까?

벗들이여, 욕탐을 멀리하고 불선법을 멀리하면, 추론이 있고 사찰이 있는, 욕탐과 불선법에서 분리됨으로써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첫 번째 선정에 도달하여 머물게된다. 거기에 욕탐에서 분리됨으로써 생긴 기쁨과 즐거움을 쫓는 식이 있으면, 분리됨으로써 생긴 기쁨과 즐거움에 집착하고, 그 기쁨과 즐거움에 묶이고, 기쁨과 즐거움의 속박에 속박된다. 이것을 안으로 마음이 안정되었다고 말한다.

벗들이여, 나아가서 비구가 충분히 탐구하여 마음이 적정해지면, 안으로 조용히 가라앉아 마음이 하나로 집중된 ,추론이 없고 사찰이 없는, 삼매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두 번째 선정에 도달하여 머물게 된다. 거기에서 삼매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을 쫓는 식이 있으면, 삼매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을 집착하고, 그 기쁨과 즐거움에 묶이고, 속박된다.

이것을 안으로 마음이 안정되었다고 말한다. 벗들이여, 나아가서 비구는 기쁨과 탐욕에서 벗어난 무관심에 머물면서, 즐거움을 마음 모아 사려 깊게 주의함으로써, 그것이 "펑온한 무관심에 주의 깊은 사람은 즐겁게 지낸다."라고 성자가 이야기한 바로 그 즐거움이라는 것을 스스로 체험한다.

그는 세 번째 선정에 도달하여 머물게 된다.

거기에서 무관심을 쫓는 식이 있으면, 무관심의 즐거움에 집착하고, 무관심의 즐거움에 묶이고, 무관심의 즐거움의 속박에 속박된다. 이것을 마음이 안으로 안정되었다고 말한다.

벗들이여, 나아가서 비구가 즐거움을 버리고, 괴로움을 버리고, 전에 있던 정신적인 안정과 근심을 소멸하면 괴로움도 없고 즐거움도 없는 평정한 무관심에 집중된 청정한 마음인 네 번째 선정에 도달하여 머물게된다.

거기에서 괴로움도 없고 즐거움도 없는 마음을 쫓는 식이 있으면, 괴로움도 없고 즐거움도 없는 마음에 집착하고, 묶이고 속박된다. 이것을 안으로 마음이 안정되었다고 말한다."

나아가서, 벗들이여, 비구가 일체의 물질에 대한 생각을 초월하면, 감관의 대상에 대한 생각이 소멸하여. 서로 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끝없는 공간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이것을 무량공처를 성취하여 노닌다고 말한다.

나아가서 벗들이여, 비구가 일체의 무량공처를 초월하면, 무량한 식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것을 무량식처를 성취하여 노닌다고 말한다. 나아가서 벗들이여, 비구가 일체의 무량식처를 초월하면, 존재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것을 무소유처를 성취하여 노닌다고 말한다.

나아가서 벗들이여 비구가 일체의 무소유처를 초월하면, 상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라는 생각을 하게된다. 이것을 비유상비무상처를 성취하여 노닌다고 말한다, 벗들이여 어떤 것이 집착이 없고, 걱정이 없는 것일까?

벗들이여. 많이 배운 거룩한 제자들은 육체를 '자아' 라고 생각하지 않고, '자아'가 육체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자아' 속에 육체가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육체 속에 '자아'가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때 육체는 다른 모습으로 변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때 육체가 다른 모습으로 변하기 때문에, 다른 모습으로 변하는 육체를 쫓는 식이 존재하지 않게 된다. 그때 다른 모습으로 변하는 육체를 쫓는 걱정이 생기지 않고, 법의 集이 없으므로, 마음이 [그 법을] 붙잡아 머물지 않는다.

마음이 붙잡지 않으므로 두려움도 없고, 고뇌도 없으며, 무관심(사)에 집착하지도 않고, 걱정하지도 않는다. 수 · 상 · 행 · 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벗들이여, 이것을 집착이 없고 걱정이 없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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