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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공부

찰스 다윈 - 진화론(進化論)

by 파장波長 2022. 6. 18.

다윈의 진화론(進化論)은 근현대를 열어젖힌 사상 중 하나이며, 발표 이래 지금까지 논란의 중심에 서 있었습니다.  신이 인간을 창조했다는 것은 수천년 동안 기독교사회에서 불변의 진리였습니다. 그런데 150여년 전 더 이상 인간은 하느님의 형상을 본따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라, 원숭이와 똑같은 조상에서 갈라져 나왔다는 놀라운 학설이 등장했습니다. 진화론의 주인공, 찰스 다윈입니다.

1831년 말, 비글호는 74명의 대가족을 싣고 영국을 떠납니다. 2년으로 예정했던 항해는 무려 5년으로 연장되었고, 피츠로이 함장은 그동안 놀라운 성실성으로 매우 정밀한 82장의 해안도와 80장의 항구지도, 그리고 40장의 항구 그림을 완성합니다. 그런데 이 배에는 선장 못지않게 부지런한 젊은이가 타고 있었습니다. 그가 5년 동안의 항해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에는 약 2천 쪽에 이르는 18권의 두툼한 공책들이 손에 들려 있었습니다. 그 자신도 이 공책들이 자신을 그토록 유명하게 만들 줄은 몰랐을 것입니다.

비글호가 남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했을 때의 일입니다. 말을 타고 가던 다윈은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눈앞에 펼쳐진 익숙한 풍경, 넓은 초원과 곳곳에 널린 풀밭과 덤불, 굴 파기에 매우 알맞은 흙, 그리고 적당히 경사진 언덕....... '어? 그런데 뭐가 하나 빠진 것 같은데, 뭐지?' 잠시 후 그는 그 이유를 알아챕니다. 그곳에는 유럽에서는 어디에나 있는 토끼가 없었던 것입니다. 왜 남아메리카에는 토끼가 살지 않았을까요? 즉 같은 환경이라고 같은 종이 사는 것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종은 왜 그곳에서 살게 되었 을까요?

갈라파고스 제도와 『종의 기원』

1809년 찰스 다윈은 영국 슈루즈버리의 알아주는 의사집안에서 태어났습 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모두 의사였고 사람들은 그가 의사가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부모의 말을 듣지 않고 박물관에 드나들며 동물학, 지질학 등을 공부합니다. 그후 케임브리지대학교의 식물학 교수인 J. 헨슬로와 친교를 맺어 박물학을 배웠으며, 1831년인 22세 때 그의 권고로 해군측당선 비글호에 박물학자로 승선합니다. 바로 이 여행에서 남아메리카 · 남태평양의 여러 섬과 오스트레일리아 등지를 두루 항해 · 탐사하고 1836년 귀국합니다.

특히 갈라파고스 제도에서의 변종에 대한 관찰은 진화사상의 심증을 굳히는 주요 요인이 되었습니다. 진화론에 대해 계속 연구하던 그는 1858년에 동남아시아 에서 연구 중이던 A. R. 월리스가 자신과 같은 견해의 논문을 보내오자, 서둘러 자신의 논문을 정리하여 그해 런던의 린네 학회에 발표하고 다음해인 1859년 『종의 기원』(On the Origin of Species by Means of Natural Selection or the Preservation of Favoured Race in the Struggle for Life)에서 진화사상을 공표합니다.

종(種)은 어떻게 발전하는가?

다윈 이전에는 종의 발전을 어떻게 설명했을까요? 말할 것도 없이 창조론이 지배적이었죠. 성경에 따라 지구의 역사는 6,000년, 사람은 신이 흙으로 빚어 만든 존재였으며, 동물과 식물은 하루 만에, 그리고 이 세상은 6일 만에 완성된 세계였습니다. 그럼, 그들은 화석을 어떻게 설명했을까요? 그것도 하루만에? 아니겠죠? 다윈 이전에도 이러한 생명의 변화, 혹은 진화를 설명하기 위한 이론이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퀴비에의 '천변지이설(天變地異設)'입니다. 지질 학자였던 그는 파리 분지의 지층들을 조사하면서 화석이 지층마다 눈에 띄게 다르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그리고 지질시대에 천변지이가 몇 차례씩 되풀이되고, 그럴 때마다 전 시대의 생물군은 거의 전멸되고 살아남은 것 이 번식하여 지구상에 널리 분포되기에 이르렀다고 주장합니다. 더 나아가 아가시와 도르비니는 천변지이가 일어날 때마다 지구상의 모든 생물이 거의 사멸되고 재창조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즉 천변지이설은 '노아의 홍수’와 같은 성경의 사건을 지구의 역사에 적용시키려고 한 것입

또 다른 잘못된 이론으로는 라마르크의 용불용설(用不用說)이 있습니다. 아직도 이 용불용설을 다윈의 진화론으로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기린의 목이 왜 길어졌나요? '더 높은 곳의 나뭇잎을 먹으려고 경쟁하다 보니니까요.’ 이게 바로 용불용설입니다. 라마르크는 『동물철학 』(1809)의 제1법칙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어떤 동물의 어떤 기관이라도 다른 기관보다 자주 쓰거나 계속해서 사용하게 되면 그 기관은 점점 강해지고 크기 또한 커진다. 따라서 그 기관이 사용된 시간에 따라 특별한 기능을 갖게 된다. 이에 반해서 어떤 기관을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고 그대로 두면 차차 약해지고 기능도 쇠퇴한다. 뿐만 아니라 크기도 작아져서 마침내는 거의 없어지고 만다.

언뜻 그럴싸해 보입니다. 하지만 기린의 목은 높은 곳에 있는 나뭇잎을 따 먹기 위해 자주 쓰다 보니 길어진 것이 아닙니다. 기린의 목이 길어진 것은 목이 짧은 기린은 도태되고 목이 긴 기린만 살아남았기 때문입니다. 어릴 적 사고로 손가락을 하나 잃었다고 해도, 그것이 그가 나중에 낳은 아이의 손가락에 영향을 주진 않습니다. 즉 현개체 단계에서 획득한 성질은 후대의 유전자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다윈은 천변지이설과 용불용설을 하나하나 반박합니다.

사실 『종의 기원』의 초반부는 다윈이 오랫동안 기르고 교배하고 관찰한 비둘기에 대한 이야기만 지루하게 나옵니다. 그런데 이 지루한 이야기에 핵심이 있습니다. 즉 사람의 선택에 따라 기르는 동물들이 다양한 변이를 보인다는 것입니다.

갈라파고스 제도에서 종들의 서로 다른 변이를 보았던 그는 자신의 생각을 검증하고자, 직접 여러 비둘기들을 수집하고 키우며 연구한 끝에, 그것들이 원래는 모두 같은 종이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나의 종이 어떻게 서로 다른 모습으로 분화되는가', 바로 여기서 '변이와 선택'이라는 핵심적인 두 단어가 등장합니다.

① 변이 : 다윈이 기른 비둘기들에 대한 이야기 는 그 자체가 ‘자연선택'에 대한 하나의 은유 입니다. 비둘기는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물을, '인간'은 자연을 의미하며, 자연선택에 따라 비둘기들은 각기 다른 종으로 분화 된 것입니다. 물론 사람들은 다윈 이전에도 변이를 선택함으로써 다른 종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다양한 색깔의 장미, 그리고 치와와와 도베르만을 비롯한 개들은 인위선택의 결과물입니다. 그러나 다윈은 자연이 이러한 ‘선택자'로서 기능하며 수많은 변이들을 만들어냈다는 것을 발견해낸 것입니다.

② 자연선택 : 자연선택이란 어떤 종(種)의 개체 간에 변이가 생겼을 경우, 그 생물이 생활하고 있는 환경에 가장 적합한 것만이 살아남고 부적합한 것은 멸망해 버린다는 것입니다. 이때의 환경은 천적과 먹이를 포함한 모든 생존조건을 말합니다. 진화란 생존을 극대화하려는 개체의 전략과 자연의 선택이 반복되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이루어집니다. 이것이 다윈의 위대한 발견입니다.

선택에 대한 다윈의 또 다른 발견은 '성 선택’ 입니다. 수컷 공작은 크고 화려하지만 날기에는 너무 큰 꼬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생존에는 불리하지만 '번식'에는 유리한 것입니다. 암컷의 선택을 받으려면 주위 수컷들과 자신을 구별해 주는 화려한 꼬리가 필요하거든요. 화려한 꼬리의 컷들은 번식에 더 성공하게 되고, 자식을 남기지 못한 수수한 수컷들은 사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생명체들은 환경조건이 허락하는 것보다 더 많은 자손을 번식시키기 위해 과잉생산을 하게 됩니다. 변이, 선택, 그리고 과잉생산은 결국 다윈의 핵심사상을 만들어냅니다.

· 생물은 돌연변이를 만들어내며 그것은 자손에게 유전된다. 
· 생물은 살아남을 수 있는 개체보다 더 많은 개체를 만들어낸다. 
· 환경에 잘 적응하는 생물들이 선택되어 자손을 남긴다.

진화론을 둘러싼 논란들 

다원의 진화론은 거센 반발을 받았습니다. 원숭이와 인간 사이의 '잃어버린 고리가 뭐냐?', '증거가 될 화석이 부족하다' 등. 그러나 20세기에 이르러 ❶멘델의 유전법칙이 등장하고, 그 유전법칙을 설명할 수 있는 '생물의 설계도, 즉 DNA가 발견됨으로써 진화론은 점차 확고히 확립되어 갑니다. 다윈의 진화론 중 핵심인 ‘적자생존', 그리고 종의 분화를 통하여 새로운 종이 탄생하고 다채로운 생태계를 이루어 나간다는 '자연선택에 의한 종의 기원’의 원칙은 여전히 현대 인류와 종을 설명하는 가장 과학적 이론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세계의 거의 모든 과학 교과서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진화론은 오늘날까지 끊임없이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비단 서구에서뿐 만이 아닙니다. 2012년 우리나라에서도 한 창조론 옹호단체가 교과서에서 '허구적 진화론의 예들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출판사가 그 요구를 받아들인 사건이 있었습니다. 당장 과학계가 뒤집어지고 전 세계가 놀랐습니다. 아니, DNA 유전자 검사는 믿으면서 진화론은 믿지 않는다니요!! 그래서 우리가 앞에서 만난 리처드 도킨스와 같은 학자들은 끊임없이 창조론자들과 맞서게 됩었습니다. 그러나 종교를 종교로서, 과학을 과학으로서 존중하지 못한다면 이러한 사건은 앞으로도 끊임없이 발생할 것입니다.

진화론의 잘못 쓰인 그림자, 사회진화론

때로는 과학이 정치와 잘못 만나 무기가 되기도 합니다. 비단 원자폭탄의 예 만이 아닙니다. 진화론은 제국주의 열강의 무기가 되어 수많은 나라들을 식민지로 만들고 제국주의를 정당화하는 데 일조하기도 했습니다. 서구의 주류는 기독교 문명이었고 창조론을 믿었습니다. 그런데 이 서구의 주류가 기독교와 함께 진화론을 받아들입니다. 진화론의 어떠한 면이 그들의 눈길을 끌었을까요?

· 생명체는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발전한다. 
· 진화는 일정한 방향으로 발전한다.

허버트 스펜서(Herbert Spencer, 1820~1903)가 주장한 '사회진화론'은 사회유기체설에 근거해서 인간의 사회 또한 생명체처럼 진화한다. 고 본 이론입니다. 그는 사회의 진화에는 일정한 방향이 있으며, 유목사회에서 농경사회, 산업사회 순으로 점차 복잡한 단계로 진화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앞에서도 살펴보았듯이, 진화란 해당 환경에서 가장 적합한 것 (the fittest)을 만들어내는 것이지 우열의 문제가 아닙니다. 진화에는 어떠한 방향도 없는 것 입니다. 예를 들어 상어는 매우 단순한 지능을 가지고 있으며 진화 단계가 짧은 편이지만, 바다에서는 가히 최강의 포식자입니다. 그런 상어가 앞으로 더욱 복잡하게 발전할 필요가 있을까요? 마찬가지로 아프리카의 원주민 사회가 채집과 사냥으로 충분히 생존을 해결할 수 있다면 굳이 철도를 깔아야 했을까요?  그냥 순리대로 각 사회는 그들의 환경에 맞게 살아가고 있었을 뿐입니다. 

그러나 사회진화론은 1860, 70년대 서구의 제국주의적 세계관과 맞아 떨어지면서 이론적 배경을 제공합니다. 세상은 미개한 야만과 문명화된 개화의 세계로 나눌 수 있으며, 적자생존이란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가장 우월한 자가 살아남는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논리는 서구 사회에서 두 가지 형태로 이용됩니다. 첫째, 생존경쟁의 세계에서 우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부르주아 계급의 이익을 정당화하고, 둘째, 제국주의 열강의 약소국 침략을 합리화하는 데 이용되었습니다.

제국주의 열강들은 인류가 흑인 → 아시아인 → 백인 순으로 발전했고, 따라서 문명화된 백인들이 식민지를 통해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후진국들에게 문명을 전파해야 하며, 이것은 단순한 침략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윈의 진화론을 반대한 기독교 선교사들이 사회진화론의 논리에 수긍하며 전 세계로 선교하러 나선 것은 아이러니합니다. 또한 사회진화론은 식민지 지식인들에게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힘을 길러야 한다는 인식을 심어줌과 동시에, 식민지화를 선진 문명국의 보호로 여겨 받아들이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사회진화론은 이후 '생명체와 사회의 진화를 동일시했다는 점에서 '논리의 비과학성'에 대해 비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문화인류학자들이 사회와 역사의 다양성을 입증하고, 단계적 발전설에 의문을 던지면서 점차 사회학에서 밀려났습니다. 그러나 사회진화론이 세계에 던진 여파는 컸으며 진화론은 그에 따른 비난도 들어야 했습니다. 진화론이 하나의 과학으로 인정받기 위한 과정은 이처럼 험난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화론은 여전히 많은 학자들에 의해 꾸준히 연구되고 있습니다.

∴ 이 글은 최진기 선생의 인문학 강의를  참고하고 인용했습니다.


Note :

멘델의 유전법칙 : 19세기 수도사인 멘델은  2천m² 의 실험농장에 완두 약 3만 포기를 키워 유전이 일정한 법칙을 따른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우성과 열성의 대립 유전자 중 우성이 형질로 발연된다는 '우열의 법칙' 단성 접종끼리 교배했을 때 우성과 열성의 대립 유전자가 일정한 비율로 분리된다는 '분리의 법칙' 그리고 다른 상동 염색체에 있는 각 유전자는 독립적인 행동을 한다는 '독립의 법칙'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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