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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공부

바뤼흐 스피노자

by 파장波長 2022. 6. 9.

바뤼흐 스피노자의 생애

스피노자만큼 시대에 따라 평가가 엇갈렸던 철학자도 없습니다, 바뤼흐 스피노자(Baruch De Spinoza 1632~1677)는 개종한 유대인의 자손으로 17세기 네덜란드에서 태어났습니다. ‘신에 취한 사람'이란 별명을 가진 인물이지만 생전에는 오히려 무신론자라는 비난과 함께 위험한 사상가 취급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칸트 이후에 재평가를 받으며 괴테를 비롯한 독일 낭만주의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세계에 실체가 출현하는 것을 보고자 했던 헤겔에게도 큰 영향을 미쳐, 철학 사색을 시작한 자는 우선 스피노자주의자여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과학자 아인슈타인도 인간에게 관여하지 않는 신, 세계의 질서라는 스피노자의 신이라면 믿겠노라고 말했습니다.

당시 암스테르담은 세계 무역의 중심지로, 다양한 말들이 오가는 자유로운 도시였습니다. 그중에서도 스피노자는 논리적 필연성으로만 본다면 기존의 신조차 부정할 만큼 자유로운 종교관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스피노자는 1656년 유대인 사회에서 파문 및 추방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철학적 토론을 하는 모임에서 존경의 대상이 된 덕분에 그의 후원자로 나서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스피노자는 그 제안을 대부분 거절하고 광학 연구를 겸해서 렌즈 가공을 하면서 자유로이 사색할 수 있는 ‘네덜란드인’ 으로 살았습니다. 유산분배를 둘러싼 소송에서 자신의 상속권을 입증했지만, 결국 침대와 커튼 외에는 상속을 포기하고 헤이그로 이주하기도 합니다. 이 또한 검소한 생활 속에서 사색을 중요하게 여긴 스피노자다운 이야기입니다.

당시 세 차례에 걸친 영국-네덜란드 전쟁과 영국의 해상 봉쇄로 네덜란드 민중은 지칠 대로 지쳐 있었습니다. 공화파 비트 정권에 불만을 가진 민중은 총독파 오라녜 공 빌렘 3세를 지지하는 쪽으로 돌아섰습니다. 비트를 지지한 스피노자는 저서 『에티카Ethica』의 집필을 중단하고 『신학 · 정치론』을 익명으로 출판합니다. 종교적 관용과 자유를 변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책은 좋은 반응을 얻었으나, 비트가 암살당한 뒤에 금서 처분을 받았습니다.

에티카(윤리학)와 범신론(자연이 곧 신)

지은이의 이름 없이 『에티카』를 출판하라는 것이 스피노자의 유언이었습니다. 가장 뛰어난 철학이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올바른 철학'이라는 자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자신감의 원천은 기하학에 충실한, 정의와 추론의 엄밀함에 있습니다. 스피노자는 '정의-공리-정리-증명' 이라는 구조로 논리를 철저히 다져, 수학처럼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철학을 완성하는 일이 목표였습니다. 스피노자에게 실체란 '자기 자신 외에는 존재하는 원인을 갖지 않는 것이라는 정의에서 출발합니다. 그렇다면 논리상으로 실체는 유일하고 무한한 것입니다. 당연히 그것은 신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확실한 것은 오직 신뿐이며, 모든 것은 신의 결정이므로 그 결정을 받아들이라고 말합니다. 인간이 감정에 휩쓸린 채 행동하면 일이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만물을 영원불멸의 관점에서 필연적(질서법칙)으로 통찰하면, 우연한 감정도 다스리기가 수월합니다. 이처럼 신의 본성에 따르는 일 이야말로 진정한 자유이자 참된 윤리라고 스피노자는 생각했습니다.

데카르트는 ‘마음과 몸’(즉, 물질)을 이 세계의 두 가지 '실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서로 다른 두 실체의 관계를 누구도 엄밀하게 설명할 수 없습니다. 심신이원론은 오히려 철학에 난제(難題)를 남겨 둔 셈입니다.

그렇다면 스피노자는 이 난제를 어떻게 극복했을까? 그는 오로지 유일한 신의 작용만 있고, 그것이 몸과 마음이라는 속성'으로 나뉘어 있다고 설명합니다. 이렇게 되면 몸과 마음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설명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 생각은 필연적으로 범신론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세계 만물은 신이 모습을 달리한 것(양태), 신은 곧 자연이라는 뜻입니다.

이처럼 하나의 원리로 세계를 설명하는 방법은 신에서 시작해 감정· 욕망에 이르기까지 철저한 추론으로 고찰한 것으로, 합리론이라 불립니다.

스피노자 철학적 사상

‘원리와 사상’에 대하여 원리(原理)라는 말은 어딘가 절대적 ‘진리’라는 뜻 같아서 왠지 거북하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착각입니다. 원리는 진리가 아니라 그냥 ‘키워드’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 원리를 다함께 갈고 닦아, 되도록 그 원리에 대해서는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그것이 철학의 기본 사고방식입니다.

이렇게 생각해 봅시다. 한번 수영을 배우면 다시는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나중에 자전거 타는 법을 배워도 수영하는 법을 잊어버리는 일은

없습니다. 원리가 몸에 밴다 함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철학의 탁월한 원리의 특징도 이와 비슷해서, 한번 몸에 배면 사고방식이 달라져 다시는 이전처럼 생각하지 않습니다. 또 어떤 생각이 단순한 억견[臆見, doxa]일 경우에는 새로운 생각 이 들어왔을 때 앞의 생각을 버리는 것과 달리, 원리는 공존이 가능합니다. 이렇듯 억측과 원리는 분명히 다름니다.

그런데 스피노자는 사실 '원리'보다는 ‘사상'의 사람이라 부르는 편이 더 어울립니다. 그는 '세계는 영원하고 무한하며 유일하다는 것을 수학적 으로(공리와 정리를 이용해) 증명한 철학자입니다. 과연 이런 사실을 증명할 수 있을까? 물론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스피노자를 찬찬히 읽어 보면 그의 사상이 훌륭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의 신학론에 이런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세상에는 흔히 예언자로 불리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이 처음부터 예언자는 아니었습니다. 평범한 사람들과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신비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 중에서 이 세상에는 인간에게 소중한 것, 좋은 것, 성스러운 것이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도 알리려는 강한 열정을 가진 사람을 사람들은 예언자라 부르며 존경하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스피노자의 사상을 잘 상징하고 있습니다.

‘세계는 영원하고 유일한 신이다’라는 스피노자의 주장은 이렇게 생각하면 어떨까요? 세계는 언젠가 소멸할 유한한 것도 아니요. 여러 개가 존재해서 어떤 것이 진짜 세계인지 알 수 없는 것도 아닙니다. 신을 기독교의 ‘아버지이신 신'이라고 여길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어떤 창조주가 존재해서 이 세계에 존재 의미를 부여했고, 따라서 개개인의 삶도 존재 이유를 가지며 또 진·선·미의 질서도 존재한다는 것을 우리가 믿으며 살아가는데에는 타당한 이유가 있습니다. 필요하다면 그 이유를 합리적으로 증명할 수 있다고 말입니다. 다시 말해, 신의 존재는 사실 증명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 '진실'을 생각하는 사고방식의 문제라고 스피노자는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Point!

1. 키워드(원리)를 다함께 갈고 닦아 이 원리에 대해서는 누구나 그리 생각할 수밖에 없는 방향으로 생각을 진척시킨다. 
2. 단순한 추측성 생각은 새로운 생각이 들면 사라진다. '억측’과 ‘원리는 분명 다르다. 
3. 신의 존재는 증명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 '진실'을 생각하는 사고방식의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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