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조직과 사회, 그리고 윤리
1. 종교와 윤리
이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종교는 도덕적 행위에 관해 거의 공통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다. 도둑질하지 말것, 거짓말하지 말 것, 죽이지 말 것, 허용된 범위 내에서 성관계를 가질 것 등 도덕적 금지 조항은 대부분 종교에서 나타난다. 그러나 도덕적 영역은 특정 사회의 전체적인 세계관에 의해 영향을 받기 때문에 실제 각 종교의 도덕적, 윤리적 명령들은 각각 그 의미가 매우 다르다. 특히 예배 참석, 순례, 자선 등의 종교적 의무와 달리 도덕적 의무들은 세속사회의 실질적인 이해 관계를 반영하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세속적 힘의 사용에 과놘 문제로 힘은 살생, 정복등을 위해 사용한다. 그런데 이슬람에서는 세속적인 힘을 알라의 지배의 표현 및 그것의 강화 수단으로 보아 성전을 정당시한다. 이슬람 사회의 건설을 방해하는 적에게는 전쟁을 포함하여 모든 힘을 사용하는 것이 허용되며, 심지어는 미덕으로 찬사를 받는다. 알라는 온정이 많고 자비로우며 자선의 도덕률의 권장한다. 이것은 이슬람 공동체 내의 형제에 한하는 것일 뿐이다. 기독교의 경우 초기에는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정당한 삶을 추구해서 전쟁에 가담하는 것을 바쁜 행위로 여겼다. 그러나 교회가 로마제국을 지배하게 되자 ‘정당한 전쟁’ 이라는 관념이 생겨났고, 이는 십자군 전쟁으로 이어졌다. 불교의 경우 부처가 세속적인 권력을 포기하고 수행한 결과로서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에 당연히 세속적인 힘의 사용보다는 평화와 공을 강조했다. 그러나 불멸 후 3세기 남짓한 시기 아쇼카 왕이 정복전쟁과 그 참상에 대해 괴로워하였고, 평화적인 제국의 통치를 위해 노력한 사례처럼 근본적으로는 힘의 사용을 둘러싼 갈등이 존재했다. 도덕적 규범과 연관되는 결혼, 살생, 법, 자비(자선), 음주 등 모든 영역에 걸쳐 종교의 교리는 대동소이한 규정을 두고 있으나 실제로는 다른 의미로 해석되고 실행된다.
사랑과 자비의 경우도 현실적 실행은 세속적으로 동일할 수 있으나, 근본 교리나 세계관은 많은 차이가 있다. 기독교 윤리의 핵심에는 “신과 이웃을 사랑하라” 는 아가페의 관념이 있다. 이는 예수의 십자가 처형시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라는 말에서 극적으로 표현되고 있으나, 실제 그 바탕에는 모든 인간이 신의 형상대로 만들어졌다는 인식이 있으며, 개신교의 경우에는 이웃에 대한 사랑과 선행 또한 오직 신의 은총을 통해서라는 입장(루터의 경우)이 강력히 제기된다. 불교의 경우에서도 해탈과 자비의 긴장관계 속에서 대승불교의 보살사상이 나타났다.
근련대 합리주의의 흐름에서 종교적 신념체계와 도덕적인 문제를 제기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종교적 신념과 상관없이 옳고 그른 것을 규정할 수 있는 도덕의 자율성이나 독자성을 확립하고자 하는 노력이 나타났는데, 이는 칸트의 “도덕은, 신은 물론이고 어떤 외부적 가지지 않는다.” 는 말에서 잘 드러난다. 칸트는 옳고 그른 것의 기준을 이른바 지상명령(categorical impertive)으로 생각하고, 그것은 절대적이며 무조건적으로 적용되며, 외부에서 인간에게 부과되는 것이 아니라고 단언했다. 그러나 실제 칸트는 실천적인 면에서 도덕법칙이 신을 전제로 한다고 하였고, 도덕 법칙에서 신을 추론할 수 있음을 암시하기도 했다. 이러한 칸트식의 도덕자율성 확립은 논리적 차원에서 전개되었기 때문에 그 자체에 많은 문제를 안고 있어서 현대에는 이를 수정하려는 운동도 일어났다. 그러나 이보다는 하나의 행위나 제도, 법칙의 도덕적 판단기준은 ‘최대다수의 최대행복, 최소소수의 최소불행’ 을 목적으로 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는, 이른바 결과론적인 공라주의(Utilitarianism)가 현대 도덕학이나 윤리학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현대 윤리학은 종교적인 신념과 상관없이 독자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움직임의 연장선상에서 태어났으나 실제 윤리학이 도덕, 윤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윤리체계는 그 자체 안에 세계관에 관한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최근에는 종교적 세계관과 세속적 세계관이 서로 비판적 시각에서 이해하면서 무엇인지를 배울 필요가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2. 종교조직과 사회
근대 이후 소규모 부족사회 등을 제외한 일반적인 사회는 다음과 같은 점에서 변화을 겪어왔다.
첫째, 근대이후 형성된 민족국가글은 점차 내적으로 다원화하고 있다. 즉 이들은 사회의 세밀한 분화를 겪고, 동시에 다양한 소수인종을 수용하는 등 근대 이전의 동질적이고 통합적인 삶을 더 이상 살 수 없게 되었다.
둘째, 종교와 국가가 점진적으로 분리되어 사람들은 서로 다른 다양한 종교를 선택할 수 있게 되었으며, 때로는 공식적인 신념체계나 종교를 거부할 수도 있게 되었다.
셋째, 대부분의 현대 산업사회는 세속화의 과정을 거치고 있다. 이로써 대분분의 사회에서는 특정한 신념체계를 신봉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는 사람의 구분이 가능하게 되었다. 과거에는 사람들이 보통 단일한 가치관과 신념체계를 수용하였으나 이제는 더 이상 가능하지 않게 되었다.
이러한 사회적 변화는 사회학자들, 특히 종교사회학자들의 주요 관심거리가 되었고, 이들은 ‘종교가 사회에 영향을 주는 방식, 과 ‘사회가 종교에 영향을 주는 방식’ 의 두 방향으로 연구의 가닥을 잡았다. 종교가 사회에 영향을 주는 방식의 대표적인 연구는 막스 베버(Max Weber)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들 수 있다. 교회와 미사와 자선으로 대표되는 가톨릭 공동체 신앙을 거부하고 말씀(Word)을 통한 개인적인 믿음을 강조한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 개인적인 검소한 생활과 근면을 통해 부를 축적한 도시중산층에게서 베버는 자본주의의 맹아를 보았던 것이다. 또한 베버는 고전에 집착하는 선비들의 중국이나 카스트제도를 지닌 인도에는 자본주의의 발생을 가능하게 해주는 힘이 없다고 보고, 그런 사회제도가 방해물이 되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논의는 일본의 경제발전에 미친 유교, 불교, 신도의 영향에 대한 천착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사회가 종교에 영향을 준 대표적인 사례로는 세속화를 꼽을 수 있다. 일반적인 세속적인 삶이란 전통적인 가치가 실천으로부터 더 이상 영향을 받지 않는 삶을 말한다. 농경과 확대가족의 구조는 유동적인 산업사회에서 약화될 수밖에 없었고, 사람들은 근대 사회가 주는 또 다른 문화적 대안들이 더 선호하게 되었다. 당연히 사람들은 전통적인 축제 대신 축구경기, 순례 대신 관광, 성당 대신 극장, 종교 공동체 대신에 국가, 경전 대신에 신문, 성전(聖傳) 대신에 전쟁, 구원 대신에 행복, 예수의 재림 대신에 진보에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하게 되었다. 또한 세속화는 정교분리와 종교자유의 인정으로 특정 종교를 공적인 영역, 국가적인 교육체계에서 가르치는 것을 금지했다. 종교는 어디까지나 사적인 영역인 것이다. 이는 곧 세속국가가 모든 종교의 의에 서서 종교를 중립적으로 취급하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종교는 전체적인 삶의 구조 속에서 사소한 부분으로 전략해 버렸다.
이러한 과정에서 다양한 종교운동이 일어나는 것은어쩌면 당연했다. 종교사회학자들은 이들 새로운 운동과 기존의 종교사를 포괄하여 전체적인 종교상황을 개관하는 도식을 개발했는데, 이는 크게 보아 교회와 섹트, 그리고 교파와 컬트의 네 유형으로 분류된다. 독일 신학자 에른스트 틀뢀치(Ernst Troeltsch)에 의하면 교회(church)는 사회에 대해 본질적으로 보수적이며, 구성원의 자격에 배타적이지 않기 때문에 일반 대중을 회원으로 받아들이는 반면, 종파(sect)는 배타적이며, 개인의 완전성과 구성원간의 직접적인 동료의식을 요구한다. 교회는 사회질서의 통합된 한 부분이며, 지배계급의 이해에 영합하며, 제도를 통해서만 구성원이 신과 소통할 수 있는 성격을 갖고 있다. 종파는 기존 사회와 다르거나 그에 적대적이기도 하며, 종속(소외)계급에 연계되어 있고, 우애와 봉사의 자발적인 공동체로서 동료 구성원들과 신의 관계가 저 직접적이다. 섹트의 대표적인 종교단체로는 여호와의 증인(Jehovah’s witness)이나 몰몬교, 크리스챤 사이언스(Christian Science) 같은 신종교를 들 수 있다.
교파(Denomination)는 종파와 교회의 중간에 위치하는 유형으로 교회에서 갈라져나온 분파를 말한다. 이들은 기존 교회만큼 사회를 지배하려는 능력이나 의도는 없고, 초기 한 세대의 열광이 지나고 나면 기존 교회나 사회와 타협하게 된다. 이들은 결국 사회에 순응해 조직화한 종교, 즉 교파로 옮겨간다. 개신교의 수많은 교파들이나 다양한 불교 교파를 예로 들 수 있다. 컬트(cult)는 일종의 비의적(秘義的) 종교행위를 수행하는 종교 집단을 일컫는데, 이들은 대부분 카리스마적 지도자를 가지고 있으며, 다른 집단의 주장들을 용인하여 그를 혼합시키며, 사회와 부정적인 관계에 놓여 있는 경우가 많다. 컬트는 점차 종파로 나아가는 과정에 있다는 특성도 갖고 있다. 그러나 이들 네 유형은 기본적으로 서구에서의 신종교 운동 및 종교 조직의 상황에 관한 관심이 낳은 분류틀로서 동양문화나 이슬람 등에서 잘 맞지 않는 한계를 안고 있다.
이상에서 서술한 종교 이해를 위한 여러 분석적 차원들은 대부분 서구 종교학자들에 의해 분류되고 내용이 다듬어진 것이기 때문에 특히 동양의 고전문명과 우리나라의 상황에 꼭 들어맞지는 않는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어쩔 수 없이 이러한 이론들의 바탕에는 기독교문화가 깔려 있으며, 그 분석 사례도 기독교 중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 이론이 보여주는 포괄적이고 객관적인 종교 이해에의 노력은 그 자체로 값진 것이기에 잘 헤아려 살펴본다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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