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의 교리 및 제의
1. 신화에 대한 인식
신화에 대해서는 다양한 입장들이 존재한다. 가장 일반적인 입장은 그리스-로마 신화나 단군신화와 같이 재미있는 옛날이야기로 보거나 위대한 일이나 인물에 대한 찬사 정도로 보는 것이다. 때로는 비과학적인 것에 대한 경멸조의 언사 속에 신화라는 용어가 사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신화는 사실적인 이야기(정보)거나 허구적인 이야기(유희)의 어느 것에도 속하지 않으며, 인간 삶의 궁극적인 문제들에 대한 물음과 답변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신화(myth미쓰)는 이야기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뮈토스(mythos)에서 유래했다. 처음 ‘뮈토스’는 신들의 이야기 정도로 쓰였으나, 그리스 철학자들에 의해 경멸조로 사용되기 시작한 이래 중세 기독교에서 기독교의 이야기 이외의 다른 이야기는 다 거짓이라는 맥락에서 사용하기로 했고, 계몽주의 시대 이후 합리주의적 흐름의 시대에는 ‘과학-역사/신화’ 의 도식에서 모든 종교의 이야기는 다 거짓된 이야기로서 묶어 인식하게 되었다. 그러나 낭만주의 시대에는 신화의 가치를 인정하고 문학적 상상력의 원천으로 인식하며 신화 연구를 통해 인간을 더 깊이 이해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시작되었고, 이는 현대의 현대의 종교학자나 인류학자, 신화학자들에 으해 계승되고 있다. 또한 최근에는 대중사회의 다양한 문화적 표현들을 현대의 신화적 담론(談論)으로 규정하고, 이를 신화의 계보에서 파악하려는 시도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합리주의적 입장에서 형성된 신화 개념이 도입되어 지금까지도 일반적인 신화관으로 정착되어 있다.
한편 합리주의적 흐름에서의 입장처럼 과학이나 역사가 모두 다 사실은 아니며, 패러다임이나 해석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과학-역사와 신화는 이야기를 구성하는 방식이 서로 다르다. 특정한 진리성을 기준으로 전자를 참이고 후자를 거짓이라고 못박는 것은 근대의 과학주의를 기계적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인간 경험을 왜곡하고 제한 한다. 종교에 대한 이해는 따라서 ‘신화’ 라는 것 자체에 대한 새로운 이해에서 출발해야 한다.
신화는 참도 거깃도 아닌 ‘이야기’ 다. 신화에서는 참과 거짓의 실증성 여부가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건 그것이 전해 주는 메세지, 그것이 이야기된다는 사실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신화가 전해주는 메세지는 태초에(in illo tempore, 시간적 원초성) 있던 일(model, paradigm, 사건의 원형)을 통해 인간의 삶과 한계상황(자연재해, 출생, 질병, 죽음, 고통)을 극복하게 하는 것이다. 즉 신화는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의 존재론적 상황에 대한 물음과 수반하는 실존적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신화의 기능
① 인간과 우주의 기원을 설명(우주의 창생, 인간의 출현, 질병과 죽음의 원인)
② 인간과 우주의 미래를 설명(종말, 윤회, 가까운 미래)
③ 인간의 삶에 질서와 의미를 부여하여 우주적 질서 속에 통합(chaos cosmos)
④ 인간 삶을 근본적으로 정향짓고 변화시킴(세계관은 삶의 세계를 구성한다)
⑤ 본래적인 것에 기반하여 인간 개인과 사회의 변화를 막고 현존 체제를 유지함(이는 사회를 안정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하고, 지재 이데올로기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 지배층의 지배를 공고히 하기도 한다.)
신화의 형성 과정은 현실의 사건이나 경험 →상상력을 통한 이야기의 구성→구전과 변화 →다양한 변종의 출현→문자사회의 등장과 특정한 특정한 판본의 기록(경전의 구성)→다양한 변종의 출연→교의학을 통한 경전의 재결정→다양한 해석의 출현(정동/이단 싸움)→승리한 쪽이 정통이 됨→또 다른 해석들의 출현 등의 역사적 변천과정을 거치며 현대사회로 전승되어 온 것으로서, 신화(경전 내용, 하나의 해석) 자체에 대한 문구적 해석이나 역사적 변화에 대한 규명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도그마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은 언제나 유념해야 할 사항이다.
2. 종교 교리
대부분의 제도종교들은 문자로 된 교리를 갖고 있다. 이는 문자사회의 출현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이전의 구전이나 신화를 경전화하는 과정을 거치게 마련이다. 문자는 말보다 변화에 훨씬 둔감하기 때문에 변하더라도 보이지 않게 천천히 변한다. 따라서 짧은 세월 동안 그것은 변하지 않게 천천히 변한다. 따라서 잛은 세월 동안 드것은 거의 변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며, 당연히 이전의 구전보다 더 큰 권위를 획득한다.
경전의 첫 출발은 다양한 이야기를 중에 몇 가지가 다양한 기록자에 의해 문자로 기록되는 것이다. 이것이 시간이 흐르면서 종교의 특정 집단(종교전문인, 사제)에 의해 다양한 판본 중에서 좀더 원형에 가깝고 현재 그 종교를 잘 설명해 줄 수 있는 것만 채택되고 나머지는 자기 종교의 이야기에서 배제되어 버린다. 그리하여 그 종교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고 여기는 경전(canon)이 탄생한 것이다. 한편 경전이 확정되면 다음에는 경전에 대한 해석을 둘러싸고 정통과 이단의 싸움이 벌어진다. 이단은 종교적 권위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기 위한 싸움이며 승리를 결정하는건 진리성의 기준이다. 그러나 그 진리의 결정에는 당대의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맥락이 매우 중요하게 작용한다. 여기서 승리한 집단은 정통이 되고 반대 집단은 이단으로 낙인찍혀 추방되거나 화형당한다.(중세 기독교의 수많은 이단사냥, 마녀사냥), 단 어떤 해석들은, 비록 다르더라도 궁극적으로 다르지는 않다고 용인되어 같은 울타리 안의 약간 다른 종자들(교단, 교파)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이 모든 권위를 비판하며 전혀 새로운 해석을 들고 나오고 심지어 경전 자체를 재구성하는 흐름이 출현한다. 이는 당장 이단으로 낙인찍혀 쫓겨나지만 그 자체로 새로운 종교 집단을 형성하게 된다(신흥종교 출현). 이러한 과정에서 교리는 기본적으로 여러 조각들이 비체계적으로 어우러진 모자이크의 외형을 띠게 된다. 예를 들면 대중적 교리와 엘리트적 교리가 서로 근본 바탕을 달리하면서 해당 종교의 교리 내에 혼합되어 있는데, 제도종교는 모두 이러한 혼합교리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단지 다른 종교와의 차별성을 확고히 하는 한에서 교리혼합은 용인되고 또 신학자나 교학자들에 의해 끊임없이 정당화되는 과정을 거친다. 이러한 교리의 기능은 크게 네 가지로 살펴볼 수 있다.
첫째, 교리는 전승이나 경전 또는 계시의 내용에 일관성을 부여해 준다.
둘째, 교리는 우주를 초월한 것에 대해 신화가 언급하고 있는 내용을 확증해 준다.
세째, 교리는 종교의 주장과 당대에 통용되고 있는 지식 사이의 간격을 메꾸어 준다.네째, 교리는 세계에 대한 신선하고 새로운 견해를 제시 해 준다.
이외에도 기독교 단일문화권이었던 서구 사회에서만 통용되는 것이지만, 교리는 사회를 규정짓는 기능을 하기도 한다. 이는 진정한 교리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사회와 구원의 확신에 위협적인 존재라 여겨 박해함으로써 정당성을 찾는 기능을 한다.
교리는 세속사회의 지식, 특히 철학과 심각한 논쟁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특히 근대 이후 철학에서 여러 학문이 분화해 나갔듯이 종교도 철학과 일정한 거리를 두게 된 이후 이러한 갈등은 첨예한 문제가 되었다. 이는 근대 철학이 특히 인간의 경험이나 지식에 대해 합리적으로 생각하고자 노력해 왔기 때문에 더욱 심화되었다. 근대 이후 철학과 종교의 교리는 ①세계관(철학)들이 모두 종교적인 것은 아니다. ②철학이 항상 운동이나 제도를 발생시키는 신념체계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③최근 들어 철학은 논리학이나 현대과학에서 발생하는 문제점에 치중하는 등 오히려 특수한 역활을 수행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에서 서로 현격히 구분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서구의 신학자들은 ‘종교철학’ 을 방전시켜 왔는데, 이는 이성에 의한 종교(기독교)적 진리의 이해가 얼마나 가능한가라는 문제를 다룬다. 이 과정에서 ‘신의 존재 증명’ 이나 ‘변신론(辯神論)’ 또는 종교 언어 등이 주요 과제로 대두되었으나, 이는 대부분 기독교 문화권에서의 문제일 뿐 다른 종교 문화전통에서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3. 종교의 제의
인간의 행위에는 일상적 몸짓과 비일상적 몸짓의 두 가지 유형이 있다. 대개 종교에서 말하는 의례는 후자에 해당된다. 그러나 이는 반드시 종교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인간의 모든 행위는 양자를 넘나든다. 종교도 마찬가지로 몸짓의 두 층위를 넘나든다. 따라서 몸짓에 대한 이해는 종교에 대한 이해를 넘어서 인간 문화의 실천적 측면에 대한 이해로서 중요하다.
의례의 어원은 ‘성스러운 관습’ 을 의미하는 라틴어 ritus로서 이로부터 의례(rite)나 제의(ritual) 등의 용어가 파생하였다. 그러나 이는 너무 좁은 정의다. 의례는 종교적 행위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고, 일정한 규칙 속에서 반복적으로 이루어진 놀이와 축제, 전쟁, 경기 등과 함께 융합되어 있었다. 이러한 복합적인 의례문화가 근대 이후 예술적인 기능, 의식적(ceremony)인 기능, 놀이적인 기능으로 분화해 나간 것이다.
의례의 유형은 매우 다양하고 삶의 모든 문제와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종교 정의에서와 마찬가지로 어떤 정의나 분류 방식도 나름대로의 의미와 한계를 동시에 안고 있다. 그러나 일반적인 희생의례(犧牲儀禮), 갱신(更新)의례, 수련(修練)의례, 금기(禁忌) 등으로 분류한다.
희생제의(犧牲祭儀, sacrifice 새크러파이스, 희생시키다.)는 주로 유일신론적인(예루살렘형) 종교에서 특징적으로 보이는 종교의례로서 신과 인간간의 소통이 중심주제가 되는 의례다. 희생제의는 고대 사회에서 동물이나 심지어는 인간을 희생물로 공희(供犧 이바지할 공, 희생 희)했기 때문에 종교들이 제도화되는 과정에서 약화되거나 아니면 상징화, 개인화, 합리화 과정을 거쳐 예배나 기도로 대체되었다. 예배나 기도는 신의 은총과 인간의 정성이라는 거래체계를 갖고 있기 때문에 희생제의와 그 원리를 공유하는 종교 행위다.
갱신의례(更新儀禮, renewal 리누얼, 갱신하다.)는 사회와 집단, 개인, 사건이나 사물의 갱신을 목적으로 하는 의례다. 여기서 갱신이란 사회의 위기극복, 개인과 집단의 위기극복과 재생, 사물의 기원으로의 회귀와 부활을 의미한다. 이에는 반드시 종교의례라고 할 수 없는 의례들이 많이 포함한다. 갱신의례는 개인이나 사회의 생존주기(life cycle) 및 공간적, 사회적 이동과 관련될 때는 평생의례(life cycle ceremony)를 포함하는 통과제의(rite of passage)로, 자연의 주기와 연관될 때는 계절제로, 역사적인 삶에 관련될 때는 기념제로 나타난다.
수련의례는 내면의 개발을 목적으로 하는 종교(네나레스형)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종교 의례로서 수행과 고행의 신천적 금욕주의의 외혀을 띤다. 이는 심신을 단련하는 과정에서의 종교 체험을 통해 종교적인 이상을 실현하려는 정형화된 행위체계라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 금기는 드라마적이고 체계적인 종교의례라고는 할 수 없으나 어떤 행위를 금하거나, 혹은 신과의 소극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정형화된 신성한 의례로 볼 수 있다. 금기는 종교에서 체계적으로 발전하면 계율이나 계명으로 정착되어 종교적 행위를 규정하는 중요한 기제가 된다.
종교의례는 매우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나, 이를 개인 종교 집단, 사회 문화적 차원으로 나누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의례는 개인의 삶의 위기와 충격에 대한 유화적 기능을 담당한다. 즉 개인과 우주(신)를 연결함으로써 개인존재를 무화시켜 개인의 고통을 무의미하게 한다. 이를 통해 개인은 죄를 용서받거나 내세의 복락을 약속받는 한편 사회행위의 모델을 제공받고, 사회행위의 범주를 설정한다. 다음으로는 종교의례는 종교단체의 정당화의 기능과 구성원의 결속 기능을 수행한다. 종교 단체는 이로써 그 존립근거를 마련하는 한편 구성원에게 세계관을 제공하여 그 감정적 동질성을 확보하게 한다. 종교의례는 종교적 세계관이 현실 속에서 역동적으로 살아 기능하는 곳이며, 세속문화와 만나는 장이기도 하다. 종교의례는 사회 가치를 성화(聖火)하기도 하고 파괴하기도 한다. 종교의례는 개인과 사회의 모순, 갈등을 해결하는 동적인 기능을 하기도 하고 어떤 사회적 목적을 위하여 사회구성원들의 관심을 환기시키는 역활을 하기도 한다.
실제 좁은 의미의 종교의례는 종교 경험과 사상을 현실에서 행위로 표현함으로써 경험과 사상을 현재화하는 기능을 수행하며, 원형적(arechtype) 사건을 재현시켜 참여자들로 하여금 과거에 대한 시간여행을 가능하게 한다. 그러나 이러한 좁은 의미의 종교의례는 종교 행위에서 핵심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근현대의 세속화 사회에서 광의의 종교의례에 비하면 기능과 의미가 많이 퇴색한 것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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