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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공부

임마누엘 칸트

by 파장波長 2024. 2. 23.

Immanuel Kant 1724~1804 

1724 동프로이센 쾨니히스베르크(오늘날 러시아의 칼리닌그라드)에서 출생. 아버지는 가난한 마구(馬具) 장인
1740 쾨니히스베르크 대학에 입학
1746 『활력의 참된 측정술에 관한 사상』을 쓰고 대학 졸업
1755 쾨니히스베르크 대학의 사강사(오늘날의 대학 시간강사와 비슷하나, 대학이 아닌 수강생들에게 강의료를 받는다)가 됨
1770 쾨니히스베르크 대학의 논리학, 형이상학 정교수가 됨
1781 『순수이성비판』 출판
1788 『실천이성비판』 출판
1790 판단력 비판』 출판
1804 사망

칸트가 영향을 받은 사람
루소-인간을 존경하는 자세를 배움. 도덕론에 영향을 받음

흄-인과성 비판이 『순수이성비판』을 집필하는 계기가 됨
칸트가 영향을 준 사람
헤겔-모든 의미에서 칸트를 뛰어넘고자 철학함

후설-현상학에 영향을 받음. ‘초월론적transzendental’이라는 용어는 칸트가 시초

칸트의 철학사적 위치와 생애

임마누엘 칸트는 대륙 합리론과 영국 경험론을 통일한 철학자로 불린다. 합리론은 수학이나 기하학처럼 합리적으로 추론하면 인간은 세계를 객관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여겼다. 스피노자가 그 예로, ‘세계는신이다!’ 라고 주장했다. 반면 경험론의 대표주자는 흡으로, ‘세계는 ○○’라고 말하는 것은 자신의 주관이 만들어 설명일 뿐이라고 비판한다.

합리론(合理論)은 세계가 진정 무엇인지 그 의미와 목적을 알 수 있다면 인간이 살아가는 의미도 분명해지리라 생각했다. 반면 흄은 ‘참된 세계는 인간이 파악할 수 없다. 어떠한 세계 설명도, 자연과학조차도 모두 주관적 인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이 대립은 인간이 세계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가, 주관은 객관과 일치할 수 있는가 하는 난제를 낳았다. 칸트는 이 난제에 ‘물자체(物自體, ding ansich)’라는 개념으로 답하려고 했다

인간은 무엇을 알 수 있는가

칸트는 프로이센의 쾨니히스베르크에서 태어나 평생 그곳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 항구도시로 흘러들어 오는 최신 학문 정보를 적극적으로 흡수해, 영국과 프랑스 등 당시 선진국의 철학자들을 뛰어넘는 탐구를 했다. 고향에서 단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않은 채 이러한 업적을 남겼으니 그 노력은 상당했을 것이다.

칸트는 원래 자연과학과 합리론에 관심이 있었다. 그것이 세계를 객관적으로 설명해 주리라 기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흄의 철학과 만난 뒤, 합리론은 독선적인 추론을 세계 그 자체에 대한 설명처럼 독단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의문이 생겼다. 객관적 인식이란 가능한 걸까? 인간은 무엇을 알 수 있을까? 이러한 물음이 칸트에게 중요해진 것이다. 『순수이성비판』을 출판하면서 이 물음에 자기 나름의 답을 냈을 때, 칸트는 쉰일곱 살이었다.


칸트의 핵심 사상- 순수이성의 안티노미

세계란 진정 무엇인지를 알기란 불가능하다

인간은 무엇을 알 수 있을까? 칸트는 이 물음에 ‘안티노미(antinomy 이율배반)’ 라는 중요한 키워드로 대답한다.

안티노미는 한쪽이 성립하면 다른 한쪽이 성립하지 않는 상황을 가리킨다. 칸트에 따르면, 이성은 추론을 거듭하며 철저하게 근거를 파헤쳐 세계를 완전하게 설명하려 든다. 가령 세계의 기원을 말할 때, 우주는 빅뱅으로 태어났다고 하면 설명은 완전해진 듯이 보인다. 하지만 이성은 근거를 더 찾고 싶어 한다. 빅뱅 이전에는 뭐였을까? 그 전에는? 하지만 이러다가는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세계에 관한 설명은 결론이 나지 않는다. 

즉, 세계를 완전하게 설명하고자 기원을 설정하면 철저하게 근거를 밟아 가는 추론을 충족시킬 수 없다. 반면 근거를 파헤치다 보면 세계의 설명이 완결되지 않는다. 저쪽이 성립하면 이쪽이 성립하지 않는다. 이것이 안티노미이다.

형이상학 비판

안티노미가 보여 준 것은 ‘이성은 세계의 극한을 물을 수 없다, 추론으로 객관적 세계를 인식할 수 없다’ 는 사실이다. 이는 매우 심각한 문제였다. 결국 인간은 세계가 진정 무엇인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을 증명한 셈이니 말이다. 그래서 칸트는 세계 그 자체를 ‘물자체(物自體)’라는, 인간이 결코 인식할 수 없는 대상으로 간주했다. 합리론처럼 세계의 기원과 세계가 무엇으로 이루어졌는지를 추론한 뒤, 그 추론을 바탕으로 영혼과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철학을 당시 ‘형이상학’이라 불렀다. 하지만 칸트에게 그것은 물자체를 알고자 하는 무의미한 시도였다.

이 생각에는 흄과 같은 비판과 음미의 정신이 담겨 있다. 하지만 칸트는 영혼이나 신의 존재 의미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그에게 영혼과 신은 앎의 대상이 아니라 인간의 의지와 행위, 선한 삶과 깊은 관련이 있는 대상이었다. 이러한 자세에서 칸트의 도덕론과 칸트 나름의 형이상학을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다.


칸트 활용-절망이 희망을 만든다

칸트를 말하면 보통은 도덕철학을 들지만, 여기서는 안티노미라는 이상한 퍼즐의 의미를 생각해 보자. “세계의 출발점과 끝은 있는가?”라는 물음의 대답은 ‘있다’와 ‘없다’로 나뉘어 누구도 옳은 답을 낼 수 없다. 인간이 이 물음에 답을 낼 수 없는 것은 ‘원리’이므로 확실히 ‘증명’할 수 있다. 이 안티노미의 사고방식도 철학의 원리를 아주 잘 보여 주고 있다. 이원리를 정확히 이해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상당히 총명한 사람이 될 수 있다. 근대 이전의 유럽철학은 스콜라 철학이라는 기독교 철학만 있었다. 스콜라 철학의 중심 테마는 ‘신이란 어떤 존재인가?’였다. 이를 철학에서는 형이상학(metaphysics)이라 한다. 형이상학은 한마디로 말하면, 세계의 ‘근본 원리’나 ‘궁극 원인’을 탐구하는 철학이다. 기독교에서 보면 신이야말로 세계의 궁극 원인이므로 당연한 일이다.

자, 이번에는 칸트의 안티노미를 살펴보자. 안티노미가 증명한 내용을 대강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세계가 무엇인지 끝까지 파헤치다 보면 그것은 극한의 물음이 되기 때문에 반드시 더 이상 답을 낼 수 없는 한 계에 부딪힌다. 예를 들어 애초에 왜 존재가 있는 걸까? 왜 나는 나인가? 같은 물음은 극한의 물음으로, 답은 원리적으로 나오지 않는다.

칸트는 이렇게 안티노미를 통해 모든 형이상학은 불가능하다는 ‘원리’를 보여 주었다. 당시 사람들은 몹시 분개하며 반발했지만, 본질적 원인는 반드시 시간(역사) 속에서 승리하는 법이다. 칸트 이후의 철학자 중에서 형이상학을 다루려는 권위자는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하이데거가 조금 수상하지만).

이렇게 칸트의 안티노미 원리는 종교와 신앙의 진리를 믿었던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절망’을 안겨 주었다. 하지만 오늘날에 와서 보면 이 유럽인은 그야말로 새로운 ‘희망’을 찾아낸 셈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당시 사람들은 신앙의 진리를 발견하면 세상의 모순을 잘 해결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런데 이 믿음이 완전히 무너지자 비로소 사람들은 인간과 사회의 구조를 새롭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생각하면서 이를 변혁하려는 길로 나아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연금술이라는 기술이 있어, 사람들은 오랫동안 금을 만들어 내겠다는 꿈에 사로잡혀 있었다. 하지만 어느날 금은 순수 원소라는 사실이 밝혀졌고, 그제야 사람들의 욕망은 다른 방향으로 향했다. 아무래도 깊은 절망만이 참된 희망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 같다.


칸트 철학 정리

1. 안티노미라는 원리를 이해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상당히 총명한 사람이 될 수 있다.

2. 세계는 무엇인가? 왜 애초에 존재가 있는 걸까? 왜 나는 나인가? 같은 물음은 극한의 물음으로, 답은 원리적으로 나오지 않는다.

3. 절망 속에서 새로운 희망을 찾았기에, 인간과 사회의 구조를 변혁하려는 길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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