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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입문

불자의 신행 생활

by 파장波長 2022. 4. 20.

안심입명(安心入命)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세상을 살아나가면서 부딪치는 갈등과 불안을 잠재우고 평화와 안락의 삶을 살아가 라는 뜻일 것입니다.

불자의 삶이란, 삶의 가치와 기준이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진리에 의지해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이 생에서 단 한번 뿐인 삶 을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소중하고 가치있게 보내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부처님의 가르침을 만나 이를 따른다는 것은 어떤 삶일까요?

불교에 입문하신 분 가운데 불교집안에서 어릴적부터 부처님의 가르침을 자연스럽게 접해 온 사람이 있는가 하면, 종교를 믿지 않거나 다른 종교를 믿다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처음 접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불교는 바른 사고와 실천을 기본으로 하는 종교입니다. 그러므로 불교가 추구하는 것은 올바른 삶이며 불자가 되는데 특별한 절차나 과정을 요구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동안 살아왔던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고, 앞으로의 삶은 바른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하며 살아가겠다는 다짐만 있으면 됩니다. 오래 믿은 사람과 지금 시작하는 사람 사이에는 차이가 있을 수 없습니다. 다만 앞으로 어떻게 신행생활을 하느냐에 따라서 현격한 차이가 있을 뿐이다. 

반복할 수 없는 소중한 인생에서 어느 한 순간도 소홀히 여길 수는 없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삶의 중요한 계기가 되는 시점이 있습니다. 그 시기는 이전의 삶을 종합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이 후의 삶을 규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남녀가 만나 가정을 이루는 혼례가 그렇고 이 세상의 인연이 다하여 생을 마감하는 죽음이 그렇습니다. 그 과정을 불자로서 맞이하고 통과하기 위해서는 불교적인 세계관과 인생관에 대하여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불교인의 삶을 다른 삶과 구별짓는 중요한 요소라고 하겠습니다.

불교인이 되면 불교의 고유한 의례와 의식을 만나게 됩니다. 의례와 의식은 신앙의 외적 표현이면서 동시에 그 안에 교의를 담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오랜 역사속에서 문화와 풍습으로 정립되어 온 것이기 때문에 지금의 입장에서 바라볼 때는 다소 형식적일 수도 있지만, 의식에 깃들인 참된 의미를 알고 행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불교의식에는 가장 기본적인 정기 법회가 있고, 입문의례로서 수계의식이 있습니다. 또한 개개인의 절실한 소원을 이루기 위해 행하는 다양한 기도와 발원의식이 있고, 종교적 성취와 발전을 위한 수련의례가 있습니다. 그 밖에 불교 나름의 의미가 부여된 특별안 시기에 치르는 명절의례가 있으며, 일반 삶 속에서 흔히 무례, 상·장례 등의 평생의례가 있다. 그리고 일반 신자들이 의례가 있는 반면 출가 수행자들만이 행하는 전문적인 의례도 있습니다.

우리 불자들은 불교의식에 의하여 참된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자신은 물론 가정과 사회도 더욱 맑고 밝아질 것입니다.

거룩한 생명 

한 개인의 생명은 타인의 생명과 구별되는 독립된 인격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뗄래야 뗄 수 없는 여러 관계 속에서 살아 가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나를 낳아준 부모와의 인연이 없었다면 세상에 태어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였을 것입니다. 

예로부터 우리 선조들은 한 생명을 맞이하기 위해 많은 정성을 기울여 왔습니다. 후손을 바라는 마음에서 백일 치성을 드리거 나, 정한수를 떠놓고 빌기도 하였습니다. 치성을 드릴 때에는 목욕 재계하고 깨끗한 흰 옷으로 갈아 입었으며, 오직 바라는 바를 성취하기 위하여 모든 정성을 다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룻밤 사이에 찬물에 목욕을 열두 번 하였다고도 하며, 어떤 사람은 옷을 열두 번 갈아입어 몸에 서린 부정을 없애는데 최선을 다했다고도 합니다. 귀하게 생명이 얻어지면 태 속에 있을 적부터 거룩한 한 생명으로 대접하여 바른 인성을 가질 수 있도록 태교에 정성 을 다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요즘에는 성개방 풍조로 말미암아 미혼모가 늘어나고, 그리고 남아선호 사상의 영향으로 태아 성감별 등을 통하여 인공중절을 쉽게 행하고 있습니다. 한 통계에 따르면 신생아의 두배 이상이 인공중절을 당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는 거룩한 인연의 로 만난 생명을 너무나 가볍게 여기는 일입니다. 이런 세태에 물 들지 말고 생명을 소중히 여길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즉 아이가 갓 태어났을 때에는 가정과 사찰에서 바르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축원해주고, 아이가 성장하여 유치원이나 어린이 법회에 나갈 수 있을 때에는 부처님 전에 기원한 부모의 발원을 알려주며 신행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어릴적부터 부처님의 가르침을 접하면서 성장하면 나중에도 불교적 덕성을 지닌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평소에 사찰에 자주 가서 절 분위기에 친숙해지도록 해주고, 스님을 통해 부처님의 가르침 을 잘 배우도록 인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어린아이가 부처님께 귀의하고 가르침을 배우고 스님들을 공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자란 다면 커서도 바른 인간, 바른 신행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바른 사람, 바른 불교인으로 교육한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요? 부처님은 모든 중생이 나와 똑같은 성품을 지니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교의 교육관은 인간 각자가 지극히 거룩한 가치와 덕성을 지닌 고귀한 존재임을 자각하는 것에서부터 출발 합니다. 자기 자신을 참되게 존중하는 사람은 남을 업신여기지 않고, 자신이 거룩한 부처님의 성품이 있음을 아는 사람은 자신을 함부로 대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삶을 깨닫고 그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으 로 길러내는데 불교교육의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요즘은 일정한 나이가 되면 사회적·법률적 성인으로 인정하지만, 가정에서는 결혼 여부를 성인으로 인정하는 기준으로 삼기도 합니다. 불교에 있어서는 계를 받아 지키는 것이 성인의 가름이 될 수 있습니다. 수계는 자기 삶을 경건하고 바르게 유지하겠다는 다짐입니다. 아직 판단력이 없는 어린아이에게는 부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과 스님들께 귀의하는 삼귀의례를 주는 것이 좋으며, 자라서 스스로의 의지력으로 계를 받아 지닐 수 있을 때에 오계를 받도록 해야 합니다.

불교의 혼례 

불교의 혼례 절차는 과거 구원겁 전에 선혜선인과 구리선녀가 혼인을 약속하고 각각 꽃 다섯 송이와 두 송이를 연등부처님께 바쳤다고 하는 전생담에서 유래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혼례를 올릴 때 꽃을 바치는 헌화의식과 혼인을 고하는 고불식을 반드시 하게됩니다. 그리고 요즘에는 두 사람이 혼인하기 전에 부처님 전에 기도를 올리고 스님을 청하여 법문을 듣고 미래의 행복한 삶을 서로 약속하는 풍속도 생기고 있습니다. 이는 좋은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혼인하는 두 사람이 부처님 가르침에 따라 행한 삶을 살아갈뿐만 아니라 장차 성불하겠노라는 서원이 있을 때 완벽한 혼례라 하겠습니다.

부처님은 본생담에서는 연등불로 되어 있고 불교의식 교범인 석문의범에는 ‘보광불' 로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혼례장소는 답답한 예식장보다 부처님께서 계시는 법당이나 절 마당 그리 야외에서 혼례식을 올리는 것이 좋으며, 혼례복도 실용성이 없고 사치스러운 웨딩드레스보다 우리 고유한복 또는 개량 한복으로 준비해서 하는 것이 좋을 것 입니다.

법회

선남자여, 누가 가장 높고 착한 이인가. 먼저 부처님과 법을 믿어야 하며, 믿는 것에서 그치지 말고 절에 가야 하며, 절에 가서는 예배하여야 하며, 예배하되 법을 들어야 하 며, 법을 들을 때는 지성으로 듣고 뜻을 생각하여야 하며, 배운 대로 행해야 하며, 자기만의 해탈을 구하지 말고 대 승에 회향하여 일체 중생에 이익되고 중생을 안락하게 하 여야 하느니라. 이런 이가 가장 높고 착한 이니라. <대반열반경> 범행품’

불자들의 신행생활에서 가장 기본적인 것은 법회에 참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농경사회를 지배했던 음력 위주의 생활양식은 산업화 시기를 거치며 일주일 단위로 노동과 휴식이 반복되는 태양력 위주의 생활양식으로 바뀌어 전통적으로 전해오던 법회도 현대의 생활주기와는 맞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현재 사찰에서는 음력 위주의 법회와 양력 위주의 법회가 혼합하여 열고 있습니다. 불자는 법회에 적극 동참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법회란 불교에서 가장 거룩한 만남의 장이며, 부처님이 가르치신 진리를를 배우고 전파하는 자리입니다. 즉 불보살님께 공양을 올리고 재를 마련하여 널리 베풀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널리 설 하여 부처님의 공덕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지금 절에는 매달 같은 날이나 같은 요일에 정기법회가 있습니다. 부처님 당시에는 보름마다 포살일을 정해 자신의 허물을 대중 앞에 고백하고 참회하는 의식이 있었는데, 이것이 오늘날 정기 법회의 시초라 할 수 있습니다. 매달 10재일이 있는데, 1일은 정광 (光), 8일은 약사(藥師), 14일은 현겁(賢劫), 15일은 미타 (彌陀), 18일은 지장(地藏), 23일은 대세지(大勢至), 24일은 관음(觀音), 28일은 노사나(盧舍那), 29일은 약왕(藥王), 30일 은 석가(釋迦)재일입니다.

이 중 일반 대중이 동참하여 기도하는 법회는 초하루, 보름, 그리고 지장재일, 관음재일이며 사찰에 따라 약사, 미타 등 한 두번의 법회를 더 진행하기도 합니다. 지장·관음재일이 특히 많 이 지켜지는 이유는 지옥 중생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지장보살과 중생들의 모든 소원을 이루어주는 관세음보살이 대중에게 친숙하게 받아들여졌기 때문입니다. 지장재일에는 지장예문과 돌아가신 분을 위한 발원과 정근, 즉 돌아가신 영가의 왕생극락을 기원하고, 관음재일에는 자신의 죄를 참회하고 관세음보살의 자비를 구하는 예불과 발원을 합니다.

그리고 전통적으로 3장 6재일이라고 하여 1월, 5월, 9월의 초하루와 보름에 정기법회를 개최했으나, 요즘에는 현대인의 생활에 맞게 일요법회, 수요법회 등의 요일법회와 방학이나 휴가를 이용한 수련법회가 정기적으로 행해지고 있습니다. 보통 신도법회는 평일 오전이나 오후에 주로 봉행되고 어린이, 청소년, 대학 생, 청년 법회 등은 주로 토요일이나 일요일을 정기법회일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비대면 시대에 맞게 인터넷 공간을 활용한 온라인 법회도 점차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특별한 법회들이 있습니다. 우선 불상을 새로 모시는 점안법회(點眼法會)를 들 수 있습니다. 이는 부처님상을 모시는 법회로써 불교에서 부처님상을 모시는 것은 거룩한 부처님의 가르 침을 배워 익히며 실천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부처님을 그리워 하는 마음에서 불상을 조성해서 봉안하는 것입니다. 탑이나 법당을 건립할 때는 기공식과 낙성식의 법회를 하고, 불상이나 탱화를 신앙의 대상으로 인정하는 점안식을 봉행합니다. 아무리 훌륭 한 불상이라 하더라도 점안식을 하지 않으면 작품으로는 인정 받을지 모르지만, 신앙의 대상은 될 수 없다. 또한 이 의식은 일반신도가 할 수 있는 의식이 아니라 반드시 증명법사님을 모시고 법식에 의하여 진행되어야 합니다.

또 부처님이 제정한 계법을 받는 수계법회(受戒法會)가 있습니다. 재가신도나 출가수행자는 불교교단에 입문하기 위해 오계, 십계, 보살계, 구족계 등을 받아야 합니다. 계를 받는 의식을 수계식이라 하고 수계 후에 주어지는 이름을 법명이라 합니다.

또 성지순례 법회가 있습니다. 이는 부처님의 사대성지를 불자된 사람으로서 순례하며 참배하는 의식이며, 우리 나라에서는 유서 깊은 사찰과 우리 고유의 전통 문화인 선조의 발자취를 찾아 순례하는 것도 성지순례 법회이다. 따라서 이 법회는 성지를 순례하며 신심을 북돋을 뿐만아니라 한국불교의 찬란한 전통과 문화유산을 배우고 느끼는 소중한 기회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방생의 공덕

나의 생명이 소중하다면 다른 생명도 소중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삶의 자유를 성취하기 위해서 다른 생명을 소중히 여기지 않아서야 되겠습니까? 오늘날과 같은 생명경시 풍토 속에서 방생(放生)이 주는 의미는 각별합니다. 보다 넓은 마음에서 생명계를 사랑하는 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했을 때 만생명과 함께 사는 사회가 이루어질 것이고, 방생(放生)의 공덕이 것입니다. 

예날부터 음력 정월 대보름, 3월 3일, 8월 보름에 방생법회 열어왔었습니다. 그러나 요즈음은 특별한 시기를 정하지 않고 수시로 하고 있습니다. 방생은 죽게 된 생명을 살리는 운동입니다. 비록 미물 일지라도 그 생명을 소중히 여겨서 죽이지 않고 보호하는 의식 입니다. 작게는 사람의 손에 걸려 죽게 된 고기나 새 등을 사서 자기 살던 곳으로 다시 놓아주는 것이지만, 본래 의미는 불살생 계를 적극적으로 실천해서 만생명을 살리는 일을 말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살생을 하는 것은 전생의 부모형제를 죽이는 것이고 미래의 부처님을 죽이는 행위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살생의 반대인 방생의 공덕을 짓는 일은 결국 내 부모 형제를 살 리는 일이며 나 자신의 거룩한 생명을 더욱 살리는 일이 된다고 하겠습니다. 방생의 공덕은 다음과 같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첫째 자식을 원하는 사람은 방생하라. 남을 살게 해 주는 것이 나를 살리는 것이니 자식의 경사가 있게 된다. 
둘째 임신을 하면 방생하라. 방생은 만물을 보호하는 것이니 산 모도 반드시 보호받게 된다. 셋째 기도할 때 방생하라. 기도함에 방생의 공덕이 크기 때문이다. 
넷째 예수재를 지낼 때에도 방생부터 행하라. 방생으로 불보살님의 감동을 받으면 큰 복을 받기 때문이다. 
다섯째 재계를 할 때, 
여섯째 출세를 구하려 할 때, 
일곱째 염불할 때도 방생을 하라고 하였다.’

방생은 선근공덕을 짓고자 하는 여러 사람이 모여 행할 때도있고, 재난을 만났거나 병 때문에 원을 세워 방생할 때도 있고, 아에 경사스러운 일이 있을 때 그 전후로도 방생을 합니다.

요즘은 방생이 단순히 물고기나 새를 놓아주는 일 말고도고 고아원이나 양로원을 방문하는 등 어렵고 소외된 이웃에게 부처 님의 자비를 베푸는 사회봉사적인 행사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불 공

불공은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는 것을 말한다. 불공은 단순히 물질을 공급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귀의, 참회, 공양, 발원, 회향이 여법하게 갖추어지는 의식을 통틀어서 말하는 것입니다.

불공은 우리의 삶이 뜻대로 되지 않아 괴로움과 어려움에 닥쳤을 때 이를 소멸하고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에서 올리기도 하고, 혹은 원하는 일들이 뜻대로 되었을 때 부처님께 감사의 뜻으로 올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일의 성패나 행운, 일상적 일에 관계없이 항상 진리 속에 살면서 삶의 눈을 뜨게 해준 고마움과 부처님의 크신 위신력을 믿고 존경하며 본 받기 위한 수행의 일환으로 불공을 올려야 합니다.

불공의 핵심은 베품입니다. 공양은 음식이나 의복, 혹은 그 밖 의 물건을 삼보님과 부모님, 스승과 망자에게 공급하는 것으로서, 특히 삼보님께 공양하는 것은 선업을 쌓는 일로 크게 장려 하고 있습니다.

공양하는 물건이나 공양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세간의 재물이나 향, 꽃 혹은 생활용구를 공양할 수도 있고, 보리심을 일으켜 자리이타(自利利他)의 행을 닦는 공양도 있다. 

몸(身)으로 하는 예배 공양과 입(口)으로 하는 찬탄과 뜻(意)으로 부처님을 생각하고 존중하는 삼업(三業)공양, 음식, 의복, 탕약, 방사(房舍) 등을 올리는 것을 사사(四事)공양이라고도 합니다. 그리고 공양은 중생들만 하는 것이 아니다. 부처님께서 중생들의 깨달음을 위해 늘 법(法)공양을 베푸십니다. 부처님께서는, 공양 중에서도 법공양이 으뜸이라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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