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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

깨달음과 닦음

by 파장波長 2022. 4. 17.

깨달음悟과 닦음修은, 독립된 체험이나 현상이 아니라 상호 보완한다.
닦음 없이는 깨달음을 얻을 수 없고, 깨달음에 의해 닦음은 더욱 심화될 수 있다.
깨달음이 개인적인 체험이라면 닦음은 사회적인 의무와 나누어 가짐廻向으로 이어진다.
종교가 어느 문화 현상보다도 값질 수 있는 것은,
개인의 체험에 그치지 않고 되돌리고 나누어 가지는 대사회적인 기능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깨달음과 닦음에 완성이 있을 수 있을까?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제품이라면 완성이 있겠지만,
정신세계에 있어서 완성이란 우리가 두고두고 추구해야 할 이상이지 현실은 아니다.

 

 

깨달음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체험이므로 그 얕고 깊음의 개인차가 있을 수밖에 없다.
닦음 또한 마찬가지다.
어린이의 인식과 체험의 세계가 성인의 그것과 같을 수 없다.
한꺼번에 단박 깨닫고 단박 닦는다.
혹은 더 닦을 것이 없는 깨달음.
말은 그럴 듯 하지만 이와 같은 주장은 삶의 진실에서 벗어나 있다.

 

불교란, 더 말할 것도 없이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그리고 우리들 자신이 깨달음과 닦음으로써 혹은 지혜와 자비로써 몸소 부처를 이루는 길이다.
불교의 교조 불타 석가모니가 보리수 아래서 깨달음을 이루고 나서도 그전이나 다름없이 한결같이 닦음에 게으르지 않았다는 사실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닦음을 어떻게 일시에 마칠 수 있단 말인가.

 

닦음修行이란말 자체가 어느 한때 한꺼번에 해 마치는 것이 아니라 거듭거듭 익히고 행함으로써 무한히 형성되어가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또 무수한 세월 속에서 그 사람이 지은 업은 그만두고라도 종교의 기능인 사회적인 의무와 나누어 가짐에도 끝이 없는데 수행의 완성을 어떻게 일시에 이룰 수 있겠는가.
올바른 진리를 탐구하는 구도자들은 실상을 벗어난 말에 현혹당하지 않고,
무엇이 진리이고 바른 가르침인지 몸소 겪으면서 스스로 인식하고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수행자에게 있어서 닦음은 곧 알찬 삶이 되고 삶 그 자체가 또한 닦음이 되어야 한다.

본래부터 갖추어진 불성佛性이라 할지라도 닦지 않고는 깨달음의 씨앗을 움트게 할 수 없으며 눈을 뜨지 않고는 올바른 삶을 이루기 어렵다.
깨닫고 나서야 진정한 삶이 이루어진다는 소식이 여기에 있다.
옛 부처님과 조사들의 삶이 한결같이 이런 모습이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거듭 상기할 필요가 있다.

 

개인적으로는 종파주의적인 종교에는 관심이 없다.
또한 어느 한쪽 주장만을 가지고 전체인 것처럼 내세우는 분파주의적인 불교에도 관심을 갖고 싶지 않다.
종파주의나 분파주의에 집착할 경우,
배타적이고 독선적인 아집으로 인해 전체를 바로 보지 못하는 맹목에 사로잡힐 위험이 따르기 때문이다.

 

깨달음과 닦음에 대해서 누가 무슨 말을 하고 어떤 주장을 했느냐에 대해서,
나는 별로 관심이 없다.
그보다는 순간순간의 내 삶 안에서 그 깨달음과 닦음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체험하고 몸소 실천하느냐에 마음을 기울이고 싶다.
특수한 시대적인 배경과 문화적인 상황 아래서 그와 같은 형식으로 표현된 말의 덫에서 벗어나,
오늘의 우리들 삶 앞에 충실하고 진실해지고 싶을 뿐이다.
얼마 전 서울에서 개최된 '노벨 수상자 심포지엄' 에서 합의된 바 다음과 같은 선언은 오늘 우리에게 시사한 바가 적지 않다.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견해를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 누구나 자기 자신의 생각이나 신념 속에서 항상 옳다고 여긴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전적으로 옳은 것은 절대로 없다. 그와 같은 주장은 살아있는 삶을 벗어난 곳에서만 존재한다."

 

깨달음과 닦음을 주제로 한 이번 학술회의를 통해서 남이 해놓은 말에 팔림이 없이 오늘 우리들 자신의 깨달음과 닦음은 과연 어떤 상태에 있는지, 각자의 삶 안에서 되돌아보면서 보다 값진 삶으로 나아갈 수 있는 그런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버리고 떠나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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