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붓다교리

붓다의 세계관 ④ 미래세계 예측

by 파장波長 2022. 4. 29.

미래 세계에 대한 예측

 

우리는 앞 항목들에서 우주의 성립으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우주와 인간의 역사에 대해서 살폈다. 이에 비해 이번 항목에서는, 인간과 우주의 이 세계가 미래에는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한 불교의 예측을 살펴 보고자 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미래에 대해 미리 알고자 하는 강한 욕구를 지닌다. 그리고 종교는 예외 없이 그 물음에 대해 예언자적 기능을 수 행하고 있다.

기독교나 이슬람교에서는 종말론을 주장하면서 미래 세계에 대한 그들의 견해를 정리한다. 종말론은 원래 고대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 교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는 것인데 어느 것이나 핵심은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즉 세계란 언젠가 총체적인 최후를 맞게 되며, 그 최후의 순간에 모든 영혼이 신에 의해 심판받게 되며, 심판 이후에 새로운 정의와 평화 가 충만하는 신의 왕국이 온다고 하는 것이다.

불교에서도 이미 세계란 무상하여 성주괴공(成住壞空) 한다고 했으므로 일종의 종말이 오는 것은 예측할 수 있다. 그러나 종말이라는 것이 오더라도 어느 한 순간에 총체적으로 들이닥친다는 것은 분명 거부하고 있다. 또한 신에 의해 세계의 종말이 주도되는 것도 있을 수 없는 것으로 본다. 나아가 종말이라고 불릴 만한 사건 이후에 종말 전의 세계와 전혀 다른 어떤 세계가 펼쳐진다는 것도 역시 부정한다. 때로는 지금 현시대가 종말(壤, 空)로 나아가는 시대라고는 아예 보지 않는 면도 있다. 오히려 발전(成, 住)을 향해 간다고 보는 측면이 있을 정도다. 그러면 불교에서는 세계의 미래가 어떻게 전개될 것이며 어떻게 일종의 종말적 상황을 맞을 것이며 그 뒤에는 다시 어떻게 된다고 보고 있을까?

남전 장부 경전의《전륜성왕경》에 보면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인간 역사 중에서 최고의 시기에는 인간의 수명이 8만 세에 이른다고 한다. 그러나 빈부의 격차가 생기자 훔치는 일이 발생하고, 그것을 막기 위해 사형에 처하자 살인이라는 범죄가 저질러지고, 이어 차례로 거짓 말 험담, 사음, 거친 말, 실없는 말, 욕심, 분노, 사견, 사악한 목적에  대한 탐욕, 정신불안에 의한 범죄, 사견의 결과물에 집착함 등이 인간 사회에 만연함에 따라 인간의 나이가 250세까지 줄어든다. 

그런데 250세의 사람들 가운데서는 이러한 일들이 늘어 갔으니, 곧 어머니라는 것이 없음, 아버지라는 것이 없음, 수행자라는 것이 없음, 종교인이라는 것이 없음, 가정의 연장자를 우러러보는 일이 없음 등의 일이 늘어 갔다. 그러자 그 인간들의 목숨은 줄어들고 아름다움도 줄어들었다. 그러자 그들은 250세의 사람이었는데 그들로부터 100세의 수명을 지닌 아이가 태어났다고 설한다.

이러한 100세의 사람들에게서 10세의 수명을 지닌 아이가 태어나는 시기가 있다고 설한다. 이 10세의 시대는 세 가지 특징으로 요약된다. 첫 째 신체적으로나 생활환경이 극도로 악화되니 5세의 소녀가 결혼할 정도로 조숙하게 되고 우유, 기름, 버터, 꿀, 설탕, 소금 등의 맛있는 것들이 사라진다. 둘째 지금까지 세상에 나타난 적이 있었던 온갖 악들이 난무 한다. 셋째 그 악들 중에 특징적으로 근친상간이 만연하고 존속살해의 가능성이 번득이게 된다.

이러한 10세의 사람들에게 종말이라고 불릴 만한 상황이 나타난다. 즉 "10세의 사람에게는 7일간의 칼의 겁이 있다. 그들은 서로를 사슴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들의 손에는 날카로운 칼이 나타난다. 그들은 날카로운 칼로 '이것은 사슴이다. 이것은 사슴이다.' 라고 하며 서로의 목숨을 빼앗는다.” 이와 같이 온 세상에는 끝없는 살육이 벌어지고 이와 더불어 질병과 기근이 세상을 뒤덮으니 살아 있는 사람을 찾을 수 없을 지경이 된다고 한다.

이러한 종말의 상황 속에서 과연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 부처님은 계속하여 이렇게 설하신다. “그 중생들 가운데 일부가 '우리는 누구도 죽이지 말고 누구도 우리를 죽이지 못하게 하자. 우리는 아무도 접근할 수 없는 울창한 숲이나 깊은 산속에 들어가 단 7일간 만이라도 나무뿌리와 열매를 먹고 살자.' 라고 결의한 뒤 실제 그대로 실천한다.” 7일을 견딘 뒤에 그들은 숨어 있던 곳에서 나와 서로를 껴안고 서로를 위로하며 안심 한다. 그리고 야! 사람들이 보인다! 당신은 살아 있다!' 라고 외친다고 한다. 그들은 종말적 상황을 극복한 최초의 사람들인 것이다. 그들에 의해 종말 이후의 새로운 시대가 전개된다. 우선 그들은 모여서 '우리가 온갖 악한 짓을 하여 급격히 친족들이 멸진하는 데에 이르렀다. 그러므로 우리는 선을 행하자. 그리하여 먼저 살생을 멀리하자.'라고 결의한 뒤 그대로 실천한다. 그러자 그들의 목숨과 아름다움이 늘어나 그들로부터 는 20세의 수명을 지닌 아이가 태어났다고 한다.

이어 20세의 사람들은 살생을 멀리할 뿐만 아니라 온갖 나쁜 짓을 멀리하기에 노력하였다. 그들로부터는 40세의 아이가 태어나고 그 노력을 더욱더 기울이자 이윽고 80세의 수명을 지닌 아이가 태어난다고 한다. 그런 식으로 다시 수명이 늘어가 이윽고 팔만세의 수명을 지닌 인간 사 회가 이루어지는 데 이른다고 한다. 

이러한 팔만 세의 사람들에게는 5천 세의 소녀가 결혼할 만큼 성숙하게 되며, 지나친 소망, 금식(禁食), 늙음의 세 가지가 좋지 않은 것으로 여겨 질 뿐이다. 그리고 이때에 모든 인류를 법으로 다스리는 '상카' 라는 이름의 전륜성왕이 출현하여 통치하고 인간 사회는 그 부유함과 안정이 극치에 이르러 그 수명이 8만 4천 세에 이르게 된다. 바로 이러한 시대가 되면 흔히 미륵 부처님이라고 일컫는 멧테야(Metteya)가 출현하여 인간을 포함한 모든 중생을 깨달음의 세계로 이끈다고 한다.

이상이 남전 장부 경전 《전륜성왕경》의 내용으로 종말적 상황의 전 후 과정에 대한 묘사가 다른 종교와 사뭇 다름을 알 수 있다. 인간의 수명이 줄고 종말적 상황을 맞아 새로운 세계를 전개시키는 것 등이 모두 인간들의 의지적 행위가 지닌 윤리적 선악에 의해 결정됨이 것이 특히 다른 점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상의 과정을 보면 우리가 심각히 고려해야 할 것이 하나 있다. 지금 우리의 시대가 과연 종말을 향하여 가는 100세 인간의 경우인지, 아니면 종말 이후 수명이 늘어가는 과정 속의 80세 인간의 경우인지 를 결택해야 한다. 이 물음을 부처님께 여쭙는다면 부처님은 이렇게 답 변하지 않을까. 즉 “선업(善業)을 실천하는 자가 압도적으로 많으면 후 자일 것이고 악업을 저지르는 자가 압도적으로 많으면 전자일 것이다.” 라고, 

결국 현재의 우리 인류가 어떤 자질의 의지적 행위를 일으키느냐에 따라 인류 사회를 포함한 세계의 미래는 결정된다고 하는 입장이다. 따라서 우리가 수명이 늘고 안정된 발전적 사회와 세계를 바란다면 지금이라도 인류가 선업을 함께 실천하며 애쓰는 길밖에 없다. 그렇지 않고 이기주의에 바탕한 악업이 난무하는 한 비참한 종말 외에 기다리는 것이 없음도 또한 예측할 수 있다. 그리하여 부처님은 “선업을 실천하는 자가 많으면 천신의 세계가 늘어나고 번창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그 세계는 비고 위축될 것이다.” (남전 상응부 경전)라고 설하신다. 어떤 세계이든 그 구성원의 의지적 결정과 행위(共業)에 의해 그 세계의 미래는 결정된다. 이것이 미래 세계에 대한 불교의 예측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