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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교리

붓다의 사회 정의관

by 파장波長 2022. 5. 4.

인간이란 무엇인가? 이런 물음에 대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명쾌하게 정의내린 해답은 드뭅니다. 그러나 인도에서 탄생한 불교에서는 인간에 대한 적절한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인도어(산스크리트)로 인간은 마누샤(manusya)인데, 이는 '의심하여 사는 자' 라는 뜻입니다. 인생과 세계, 우주와 존재에 대해서, 인간과 인간 사이에 대해서, 인간과 자연에 대해서 인간과 동식물에 대해서 끊임없는 의심과 의문과 물음을 갖는 존재입니다. 이 마누샤에서 오늘날 인간이라고 칭하는 Man(人間, 남녀 인간)이라는 말이 파생되었으니, 인도 고대의 사상이나 불교사상의 깊고 오묘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인간이 사는 중생사회를 불교에서는 사바세계라 합니다. 사바세계란 인도어 사바(Sabha)에서 음역된 것으로 ‘참고 견디며 살아야만 하는 인토 (忍土)’ 라는 뜻입니다. ‘의심하며 사는 자' 는 언제나 고통과 고뇌가 뒤따르기 때문에 참고 견디며 살아야만 하는 운명에 처해 있는지도 모릅니다. 

불교는 이 '의심하며 사는 자'인 중생(衆生)을 윤회에서 해탈시키고 서로서로 상호의존하는 연기적 존재임을 깨달아 화합(Sangha)하고 신뢰(thust)하는 정토의 현실 이상을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붓다께서는 이러한 연기적 삶을 깨달음의 자각으로 해탈(解脫, Vimutti)하기를 가르치신 것입니다. 따라서 반야(般若), 공(空, sunya)이라는 명제는 이렇게 나타난 실천적 사항이지 종교나 철학적 논리 전개에만 그치는 가르침이 아닙니다.

2021년 미얀마 군부 쿠테타에 항의하는 스님 @로이터 통신

사회윤리는 중생윤리 

철학과 종교가 아무리 철학적 논리 전개가 해박하고 심성 수행이 완벽하다 하더라도 그가 몸담고 있는 가정, 사회, 국가, 자연 속에서 이상이 실현되지 않는다면 그 종교나 사상은 참된 진리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런 철학과 종교에는 본질을 망각한 철학적 논리추구나 종교적 기복행위만이 존재하고, 진정한 깨달음의 세계나 중생구제의 보살행이나 그 지상낙원인 정토의 세계는 요원한 먼 나라의 이야기가 될 뿐입니다.

사회는 인과의 법칙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 법칙을 붓다께서는 연기의 이법으로 설명하시고 만유의 법(法, Dharma)으로써 선포하신 것입니다. 인간의 심적(心的) 과정도 이러한 연기법(緣起法)으로 설명되며 영적, 행위적인 것은 물론 도덕, 윤리 사회적인 것들 역시 이러한 연기의 법칙으로 설명이 가능합니다. 

연기법이 지배하는 다섯 가지 주요 영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①물질(무생물)계 (uta-niyama)
②생물계(disa-niyama)
③정신계 (citta-niyāma)
④도덕계 (kamma-niyama)
⑤관념적 법계 (dhamma-niyama)

이러한 다섯 가지 영역은 인간의 중생사회에, 경험에서 그 어느 것도 배제하지 않는 매우 포괄적인 것이며, 삼라만상이 이러한 연기법에 적용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연기를 안다고 하는 것은 곧 진리를 아는 것 입니다. 이는 “연기(緣起=因緣法)를 보는 자는 법(法, Dharma =眞理)을 보는 것” 이라 하신 붓다의 말씀을 대변하는 것입니다. 붓다께서는 처음 설법을 시작하실 때부터 인간(삶)과 모든 개체가 고락을 어떻게 경험하는지에 대한 이성적이며 사실적인 기술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깨달음이라고 하는 여실지견(如實知見)의 깨우침 입니다. 우주의 기원에 대한 물음 같은 것은 그 자체를 형이상학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이를 순환 혹은 원(圓, Vatta)의 형태로 봤습니다. 이것은 중 생들이 모두 연기 즉 윤회의 삶이며 육도윤회의 고통과 번뇌의 연기적 삶의 반복을 하고 있음을 꿰뚫어 보신 것입니다. 무명의 되풀이를 제거하기 위하여 법계의 청정과 정토를 위하여 중생윤리인 사회윤리를 세우신 것이 삼학의 가르침인 계(戒)법을 지키고 정(定)법을 바로 세워 혜(慧) 법의 보살세계를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이로서 법계는 정법이 바로서고 법신 비로자나불의 광명이 온 누리에 빛나게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정법의 실현은 중생사회가 정토로 가는 길입니다.

붓다의 정법 실현 모습 

‘의심하며 사는 존재’ 인 인간이 붓다의 가르침을 따르면 의심을 그치고 신뢰하고 화합하여 정토의 세계를 이룩할 수 있고,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세계' 인 사바세계 또한 고뇌의 윤회가 없는 살만한 세계로 구현됩니다. 그래서 붓다야말로 윤회에서 벗어나는 해탈의 길을 제시하신 인류중생의 구제자입니다.

그러나 단순하게 붓다를 믿거나 받들기만 한다고 그러한 정토와 해탈이 무조건적으로 오지는 않습니다. 진정 필요한 일은 붓다의 정법을 올바르게 실행에 옮기는 일이라 하겠습니다. 법계에 정법이 있어도 정법을 정법대로 알고 실천하지 않는다면 진리대로 살지 못하는 것이며 진리대로 살지 못한다면 그 정법은 사회중생의 고뇌를 해탈시킬 수 없습니다.

지극한 신심으로 사찰을 세우거나 보수하고 경책을 펴내며 탑을 세우고 종각을 세워 무아의 공덕행을 실행하는 일은 선법의 실현이며 정법의 진정한 탑을 세우는 것입니다. 가정을 위해 사회를 위해 국가민족이나 세계 인류를 위해 기도함도 무아의 실천이며 중생을 구제하는 길입니다. 혹은 공부나 참선만 하는 것이 진정한 공부라는 생각도 하겠지만 따뜻한 마음으로 자신과 가정과 이웃을 위한 육바라밀의 실천은 그대로 법계에 울려 퍼지는 진리입니다. 인간은 일체 만법 속에서 그 만법의 은덕으로 살아가고 있고 결국 그 만법으로 회귀합니다. 즉 진리대로 와서 진리대로 가는 정법의 세계를 말합니다. 정법의 세계는 아미타불의 세계요, 관세음의 세계요, 지장참회의 세계요, 비로자나 부처님의 세계입니다.

결국 불교의 사회정의관은 ‘더불어 같이 살아가는 사회에서의, 그 연기적 인과의 가치관을 확실히 하는 것’ 입니다. 때문에 사람으로서 인간으로서의 자기 위치를 확인하고 장단점을 추스리면서 정진하는 책임성 있는 인격자를 이루는 데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공덕의 회향입니다. 다음의 경전 등에서 우리는 그 가르침을 들을 수 있습니다.

유리하다고 교만하지 말고,
불리하다고 비굴하지 말라. 
무엇을 들었다고 쉽게 행동하지 말고
그것이 사실인지 깊이 생각하여 
이치가 명확할 때 과감히 행동하라.
벙어리처럼 침묵하고 임금처럼 말하며 
눈처럼 냉정하고 불처럼 뜨거워라. 
태산 같은 자부심을 갖고 
누운 풀처럼 자기를 낮추어라. 
역경을 참아 이겨내고 
형편이 잘 풀릴 때를 조심하라. 
재물을 오물처럼 볼 줄도 알고 
터지는 분노를 잘 다스려라.
때로는 마음껏 풍류를 즐기고 
사슴처럼 두려워할 줄 알고 호랑이처럼 무섭고 사나워라.
이것이 지혜로운 이의 삶이니라.《잡보장경》

부처인 내가 말한 것을 따르는 자는 진실한 나의 제자다. 
부처인 내가 말한 것을 따르지 않는 자는 마군의 권속이다. 
부처의 경과 율을 따르는 이는 대보살임을 알라.《대반열반경》 제7, 사정품 

믿음은 깊은 못을 건너나니 
마음을 다스리는 뱃사공이라. 
부지런한 노력으로 괴로움 없애고 
그 지혜로써 피안에 도달하리라. 
믿음과 실천이 있는 사람은 
거룩한 분의 칭찬을 받고 
해탈을 즐겨 하는 사람은 그 모든 굴레에서 벗어나느니라.《법구비유경》 제1. 〈독신품>

이상에서 살펴보아도 정법에 대한 믿음이 복과 지혜, 해탈의 금강탑을 쌓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사위성 기원정사에 계실 때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부처가 세상에 올 때는 반드시 다섯 가지 일을 한다. 첫째는 부처님의 진실을 널리 전법하고, 둘째는 부모님을 제도하고, 셋째는 믿음이 없는 사람을 믿게 하며, 넷째는 보살의 마음을 내지 않는 사람에게 보살의 마음을 내게 하며, 다섯째는 미래를 예언한다. 그러므로 수행하는 사람들은 자비로운 마음으로 우러러 공경해야 하느니라.” 《증일아함경》 제27, <사휘품>

결국 불교의 사회정의관은 홀로 살아가는 인생이 아닌 함께 살아가 는 중생들 속에서 실현시키는 가치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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