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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교리

붓다의 평화관

by 파장波長 2022. 5. 4.

세간에 사는 중생들은 누구나 전쟁과 갈등으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평화를 갈망하지만 평화는 쉽게 실현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중생들은 평화를 가져다 줄 누군가를 기다립니다. 그것이 서양에서는 ‘메시아’ 신앙으로, 인도에서는 ‘전륜성왕(轉輪聖王)’에 대한 갈망으로 형상화했습니다.

그러나 붓다께서는 평화를 누군가가 가져다 주는 ‘절대적인 어떤 상태’로 보지 않았습니다. 붓다께서는 평화는 중생들이 지혜와 실천을 통해 실현 해야 하는 과제로 보고 실현시키는 방법에 대해 가르치셨습니다. 경전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는 본보기가 될 것입니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초기 피난가는 엄마와 딸 버스 창문 밖을 보고있다. 사진 AP

부처님께서 코살라 국의 케사푸탄 지방에서 제자들과 함께 계실 때였다. 어느 날 카라마 족 사람들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곳 케사푸탄을 방문하는 바라문이나 다른 수행자들은 오직 자기들만의 가르침을 설명하고 가르치면서 다른 사람들의 가르침에 대해 서는 헐뜯고 비방합니다. 더구나 또 다른 바라문이나 수행자들도 자기들만의 가르침만을 자랑스럽게 가르치고 다른 이들의 가르침은 헐뜯고 있어 저희들은 도대체 누구의 말이 진실인지 알 수가 없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카라마 사람들이여, 당신들이 의심하고 동요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의심은 의심스러운 것에서 일어납니다. 카라마 사람들이여, 잘 들으시오. 남들의 견해나 전통이나 소문에 잘못 이끌리지 마시오. 전해 오는 종교적 성전의 권위나 단순한 논리나 추론이나 외형적 관심이나 반성 그리고 남들이 떠드는 이론에 잘못 이끌리지 마시오. 당신들 스스로가 살펴서 부적당하거나 비난 받을 만하거나 지혜로운 사람들에게 책망받을 만한 것들이거든 그것을 진실로 버려야 할 것이오. 그러한 것들을 행하면 손실과 슬픔에 빠지지 않을 것이오. 그러나 스스로 생각해 보아 옳고 바르며 유익한 것들이면 그것을 받아 들이시오. 그러면 행복에 이를 것이오.” 《중아함경》 제3, <가람경〉

이 경에서 부처님이 가르치는 바는 다른 이의 견해나 혹은 과거부터 전해온 전통, 혹은 특정인의 권위 등에 현혹되지 말고 자신의 바른 지혜를 바탕으로 참과 거짓을 판별하라는 것입니다.

또 남녀의 차별도 인정하지 않으셨습니다.

부처님께서 사위성 기원정사에 계실 때, 어느 날 소마 비구니가 성안에서 걸식을 마치고 조용한 숲으로 향했다. 그때 마왕 파순(魔王 波旬)이 말했다.
“성인의 경지는 높고 아득해 오르기 어렵거늘 그대의 어리석은 지혜로 어찌 얻으랴!”
소마 비구니는 마왕의 장난임을 알고 게송으로 대답했다.
"여자라는 생각 마음에 두지 않고 오직 수행에만 뜻을 두어 위없는 가르침을 살필 뿐이다. 진리에 남녀의 차별이 있다면 여자는 얻을 수 없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진리에는 남녀의 차별이 없으니 어찌 어렵다고 말하리오. 모든 애착을 끊고 무명의 어둠을 없애려면 번뇌 없는 법에 머물러 열반을 증득하리니 파순아, 그대는 나에게 졌음을 알라.” 《별역잡아함경》 제12, 215경

붓다께서는 이와 같은 가르침을 바탕으로 참된 평화와 행복에 이르는 길을 제시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사위성 기원정사에 계실 때였다.
어느 날 어떤 제자가 부처님 께 예배한 뒤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가르침의 요점을 말씀해 주시면 게으르지 않고 살아가겠나이다.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만일 너에게 정당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도 정당하지 않거든 그 법은 빨리 끊어 버려야 한다. 그러한 법을 끊어 버리면 법도가 세워져 길이 평안 할 수 있느니라.” 《잡아함경 제1, 18경

부처님께서 사위성 승림급고독원에 계실 때 아난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아난아, 나는 이제 내 스스로 이익되고, 남에게 이익되며, 많은 사람들을 이익되게 하고, 세상을 가엽게 여기며, 하늘을 위하고 사람을 위하여, 정의와 이익을 추구하고 평온과 즐거움을 찾는다. 나는 이제 법을 설하여 궁극적인 것을 이루었고, 청정함을 이루었으며, 범행(梵行)을 완성하였느니라. 나는 이제 태어남과 늙음과 병과 죽음과 근심, 걱정, 슬픔을 벗어나게 되었고, 이제 일체의 고통으로 부터 해탈하게 되었느니라.” 《중아함경》 제11, <사주경>

부처님께서 카필라 성의 니그로다 숲에서 여름 안거를 하셨다. 안거를 마치시고 다른 지방으로 가신다는 말을 듣고 마하남이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저의 믿음이 아직 깊지 못하온데, 어느 때 다시 부처님과 스님들을 만나 뵐 수 있으리이까?”
“나와 비구들이 비록 딴 곳으로 간다 하나 네가 나와 비구들을 보고 싶다면 항상 다섯 가지 수행을 닦도록 하면 될 것이니라. 믿음을 가져야 하고 깨끗한 계행을 가져야 하며 법을 자주 들어야 할 것이며 인색함을 버리고 지혜로써 법의 깊은 뜻을 살피는 일이니라. 만약 이러한 다섯 가지를 잘 실천한 다면 나와 비구들은 항상 네 앞에 있을 것이니라.”《잡아함경》 제33, 932경

위의 가르침에서 보듯이 법 앞에 평등하고, 삼보를 믿고 받들고 계법을 준수하며 지혜를 간직할 때 평화의 길이 언제 어느 때나 열릴 것임을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보다 구체적인 실천 방법에 대한 가르침은 다음과 같습니다.

부처님께서 코살라 국의 사위성 기원정사에 계실 때 어느 날 우갈제사리 라는 바라문의 방문을 받으셨다. 그는 배화교를 섬기는 사람으로 바라문을 공양하기 위해서 700여 마리의 짐승들을 잡으려 하였다. 그리고 혹시 부족 한 것이 없는지를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700여 마리의 가축을 들여 공양하고자 준비했고, 바라문들도 구름처럼 모였사온데 혹시 부족하지는 않겠나이까?”
"바라문이여, 그대는 큰 제사를 지내 복을 받고자 하나 오히려 큰 죄를 짓고 있노라. 첫째는, 마음에 살생의 뜻을 두니, 마음의 칼(意)이요, 둘째는, 제사지내기 위해 짐승을 죽일 것이라고 말하니, 입의 칼(口)이요, 셋째는, 짐승을 죽이고자 끌고 가니, 몸의 칼(身刀)이다. 너는 이런 칼을 버리고 다른 세 가지의 불(火)을 알아야 하리라.
너의 부모가 아들을 낳기 위해 제사를 지내고 신명에 빌었으니 마땅히 부모를 공경해야 하리라. 그것을 공경의 불(恭敬火)이라 한다. 너의 재산으로 처자권속과 종들까지도 돕고 베풀어야 할 것이니, 고락을 함께 한 불(苦樂 俱火)이라 한다. 욕심을 버리고 청정하게 수행하는 사문이나 바라문에게 보시하여 어리석음을 벗어나면 복전의 불(福田火)이라 한다. 칼을 버리고 이 세 가지의 불을 섬겨야 삿되지 않느니라.”《잡아함경》 제30, 837경

왕사성 근처에 출가한 외도가 살고 있었다. 그는 제자들에게 말했다.
“내가 하나의 게송을 읊을 때 누구라도 대답하는 사람이 있으면 나는 그의 제자가 되리라.”
걸식 나갔던 제자들로부터 이 말씀을 전해들으신 부처님께서 저녁때 외도를 찾아가 “네가 게송을 읊으면 내가 대답하리라.”고 하셨다. 외도는 정색을 하고 큰 소리로 게송을 읊었다.
“비구는 법답게 살아가면서
중생들을 두려워하지 말지니,
마음을 고요히 하고
나쁜 행동을 멀리 버리고
계율을 지켜 고요히 쉬라.”
부처님께서는 그의 속마음을 아시고 게송으로 답하셨다.
“만일 네가 말한 것처럼 네가 스스로 실천한다면
나는 너를 훌륭한 사내라고 인정하리라.
그러나 내가 너의 말을 들으니
말과 행동이 걸맞지 않는구나.
네 마음을 길들이고 고요히 쉬어
중생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자기의 마음을 거두어 잡아
함부로 날뛰지 못하게 하는 것을
법을 따르는 것이라 하나니,
마음을 길들이고 고요히 쉬라.”
외도는 부처님께서 자기의 마음을 이미 알고 있는 사실에 놀라, 자리에서 내려와 합장하고 여쭈었다.
“이제 저도 바른 법과 율안에서 사문이 되어 비구법을 얻을 수 있겠나이까?” 부처님께서는 외도에게 출가하여 사문이 될 것을 허락하셨다.《잡아함경》 제35, 971경

이것은 바로 언행일치를 몸소 가르쳐 주신 내용이다.

부처님께서 부미성의 심사파 숲에 계실 때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이제 사대교법(四大敎法)을 설명하리라.
만약 어떤 비구가 ‘나는 언제 어디서 직접 부처님의 이런 말씀을 들었으니 반드시 믿어야 한다.’ 고 말하거든 마땅히 모든 경전에서 허실을 참고하여 법과 율에 의하여 본말을 연구해 보라. 만약 경과 율에 의한 것이면 스스로 지키고 또한 널리 펴라. 그러나 경과 율에 의한 것이 아니면 받아들이지도 말고 남에게 전하지도 말라.
만약 어떤 비구가 ‘나는 언제 어디서 대중과 장로들에게서 이런 가르침을 받았으니 그것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고 말하거든 경과 율을 대조하여 맞는 것이면 받들어 섬기고 맞지 않거든 섬기지도 말고 전하지도 말라.
만약 어떤 비구들이 ‘나는 언제 어디서 많은 비구들로부터 이런 가르침을 받았으니 반드시 지켜야 한다.’ 고 하거든 역시 경과 율에 대조하여 맞으면 섬기고 맞지 않거든 섬기지도 말고 남에게 전하지도 말라. 또한 한 비구에게서 들은 경우도 마찬가지니라.《장아함경》 제3, <유행경>

결국 참된 진리를 판별하여 해탈의 길로 나아가는 것은 오직 자신의 지혜와 실천일 뿐이라는 가르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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