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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경전/금강경

금강경 제15품 지경공덕분

by 파장波長 2022. 5. 20.

제15품 경을 지니는 공덕

 

第15品·持經功德分 지경공덕분

須菩提! 若有善男子善女人, 初日分, 以恒河沙等身布施,
수보리 약인선남자선여인 초일분 하항사수등신보시
中日分, 復以恒河沙等身布施, 後日分, 亦以恒河沙等身布施,
중일분 부이항하사등신보시 후일분 역이항하사등신보시
如是無量百千萬億劫, 以身布施, 
여시무량백천만억겁 이신보시
若復有人, 聞此經典, 信心不逆, 其福勝彼, 何況書寫, 受持, 讀誦, 爲人解說?
약부유인 문차경전 신심불역 기복승피 하왕서사 수지 독송 위인해설
須菩提! 以要言之, 是經有不可思議, 不可稱量, 無邊功德, 
수보리 이요언지 시경유불가사의 불가칭량 무변공덕 
如來爲發大乘者說, 爲發最上乘者說, 若有人能受持讀誦廣爲人說,
여래위발대승자설 위발최상승자설 약유인증수지독송광위인설 
如來悉知是人, 悉見是人, 皆得成就不可量, 不可稱, 無有邊, 不可思議功德,
여래실지시인 실견시인 개득성취불가량 불가정 무유변 불가사의공덕
如是人等, 卽爲荷擔如來阿耨多羅三藐三菩提, 
여시인등 즉위하담여래아누다라삼먁삼보리
何以故? 須菩提! 若樂小法者, 著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 卽於此經,
하이고 수보리 약락소법자 차아견인견중생견수자견 즉어차경
不能聽受讀誦, 爲人解說,
불능정수독송 위인해설 
須菩提 !在在處處, 若有此經, 一切世間, 天人阿修羅所應供養,
수보리 재재처처 약유차경 일체세간 천인아수라소응공양
當知此處, 卽爲是塔, 皆應恭敬, 作禮圍繞, 以諸華香, 而散其處

당지처처 즉위시탑 개응공경 작래위요 이제하황 이산기처

"수보리여!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아침에 갠지스 강 모래만큼이나 많은 몸으로 보시하고, 낮에 다시 갠지스 강 모래만큼 많은 몸으로 보시하고, 저녁에도 갠지스 강 모래만큼의 몸으로 보시하며, 이렇게 무한히 백천만억 겁을 보시하더라도, 다시 어떤 사람이 있어 이 경전을 듣고 신심을 거스르지 않는다면 그 복덕은 더 클 것이다. 하물며 경전을 베끼고 수지 독송하여 다른 사람을 위해 해설하는 것이겠는가? 수보리여! 요약해서 말한다면 이 경전에는 불가사의하고 헤아릴 수 없는 무한한 공덕이 있어, 여래가 대승의 마음을 일으킨 자를 위해 말한 것이요, 최상승의 마음을 일으킨 자를 위해 말한 것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능히 수지 독송하여 널리 다른 사 람을 위해 말할 수 있다면, 여래는 이 사람을 모두 알고 모두 보니, 모두 헤아릴 수 없고 칭할 수 없으며 끝이 없는 불가사의한 공덕을 성취할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여래의 아누다라삼막삼보리를 짊어진 사람이다. 왜냐하면 수보리여! 만약 작은 법을 즐기는 자라면 아견 · 인견 · 중생견 · 수자견에 집착해, 이 경전을 듣고 독송하여 다른 사람을 위해 해설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수보리여! 어느 곳이든 이 경전이 있다면 일체 세간의 천, 인, 아수라가 응당 공양할 것이다. 마땅히 알아야 한다. 그곳은 곧 탑으로서 모두 응당 공경하며, 에워싸 절하고, 온갖 꽃과 향을 뿌릴 것이다.”


제일 어려운 보시

“수보리여!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아침에 갠지스 강 모래만큼이나 많은 몸으로 보시하고, 낮에 다시 갠지스 강 모래만큼 많은 몸으로 보시하고, 저녁에도 갠지스 강 모래만큼의 몸으로 보시하며, 이렇게 무한히 백천만억 겁을 보시 하더라도,”

須菩提! 若有善男子善女人, 初日分, 以恒河沙等身布施, 
수보리 약유선남자선여인 초일분 이항하사등신보시 
中日分, 復以恒河沙等身布施, 後日分, 亦以恒河沙等身布施, 
중일분 부이항하사등신보시 후일분 역이항하사등신보시 
如是無量百千萬億劫, 以身布施.” 
여시무량백천만억겁 이신보시

초일분(初日分), 중일분(中日分), 후일분(後日分)이란 인도의 시간의 관습입니다. 인도인들은 이미 지난 것들은 이미 지나가 버렸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고 생각해서 역사를 그다지 중시하지 않습니다. 숫자에 대해서도 하나 둘, 만 이만, 이런 식으로 대충 헤아립니다. '팔만 사천'라 하는데, 이건 아주 많다는 뜻입니다. 인도는 일 년이 세 계절로 나누어집니다. 그러니 4개월이 한 계절이 됩니다.불경에서 시간을 말할 때, 하루는 세 시(時)로 나누어집니다. 말하자면 세 개의 단계입니다. 초일분(初日分)이란 상오(上午)를 뜻하며, 중일 분(中日分)은 중오(中午), 후일분(後日分)은 하오(下午)를 뜻합니다. 

몸으로 보시하기란 얼마나 어렵습니까! 예를 들면 다른 사람에게 수혈해 주거나, 눈의 각막을 제공하거나, 다른 사람이 필요하다면 자신의 몸에서 일부를 떼어 주는 것, 이런 것들이 모두 몸으로 하는 보시입니다. 이 밖에도 어머니가 아이를 낳고, 부모가 아이를 보살피는 것 역시 몸으로 하는 보시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여기서 한 가지 간과하기 쉬운 것은 보시를 하면서도 스스로 원해서 하기에 아주 즐겁다는 사실입니다! 한평생 고생만 하다가 늘그막에는 자식들에게 시대에 뒤떨어진 노인네란 소리를 들어도, 이런 핀잔을 들을수록 더욱 즐겁습니다. 이것이 바로 부모의 보시 입니다. 사실 엄격히 말하자면 이것은 보시라 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자신의 사사로운 정에 뿌리를 둔 것이기 때문 입니다.

왜 여기서 몸으로 하는 보시를 끄집어내고 있을까요? 무릇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가장 행하기 어려운 보시가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돈이나, 재물로 하는 보시입니다. 사천(四川) 친구들이 잘 하는 우스갯소리가 있습 니다. “돈, 돈, 돈, 목숨 같은 돈!〔錢, , 錢, 命相〕” 돈이란 정말이지 생명 만큼 요긴합니다. 이 때문에 돈이나 재물로 하는 보시가 제일 어렵다고 하는 겁니다. 그렇지만 목숨이 위급한 상황이라면 돈이든 재물이든 아무 미련 없이 내놓을 겁니다. 오직 목숨만 구할 수 있다면요.

다른 하나는 몸으로 하는 보시입니다. 제일 행하기 어려운 보시가 바로 '나'를 희생하는 것입니다. 이제 부처는 말합니다. 가령 어떤 사람이 있어 갠지스 강의 모래 수만큼이나 많은 몸으로 보시한다는 겁니다. 갠지스 강 의 모래 수만큼 많은 몸으로 보시한다는 것이 무슨 말일까요? 우리의 한 몸을 희생하는 것이 한 몸으로 보시하는 것이라면, 자신이 죽은 후 다시 태어나 보시하고, 이렇게 계속 생을 거듭하면서 사회와 중생을 위해 보시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갠지스 강의 모래 수만큼 많은 몸으로 보시한 다는 것입니다. 곧 수없이 많다는 뜻입니다. 단지 한 차례의 희생에 그치지 않고 갠지스 강의 모래 수처럼 그렇게 수없이 희생하는 것, 이것이 바로 생명의 보시입니다.


신심을 거스르지 않는 복보 

“다시 어떤 사람이 있어 이 경전을 듣고 신심을 거스르지 않는다면 그 복덕으 더 클 것이다. 하물며 경전을 베끼고 수지 독송하여 다른 사람을 위해 해설하 는 것이겠는가?”

若復有人, 聞此經典, 信心不逆, 其福勝彼, 何況書寫, 受持, 讀誦, 爲人解說?
약부유인 문차경전 신심불역 기복승피 하황서사 수지 독송 위인해설

부처는 말합니다. 가령 어떤 사람이 있어 자신의 생명을 바쳐 보시하기를 수없이 오랜 시간 동안 계속했다고 한다면, 오직 보시만 행할 뿐 다른 아무 것도 바라지 않았다면, 이 사람의 복보(福報)는 무척이나 크다는 겁니다. 그렇지만 만약 어떤 사람이 있어 『금강경』의 법문을 공부하여 “신심을 거스르지 않는 경지〔信心不道〕”에 이른다면, 즉 금강반야바라밀의 대지혜, 자성(自性)으로 스스로를 구제하는 이치를 철저히 믿는다면, 이 사람의 복덕은 앞서 말한 몸으로 보시 하는 사람의 복덕을 넘어선다는 겁니다. 

신심을 거스르지 않는다는 것은 아주 어렵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불법을 배워 그 이치를 잘 알고 있으면서도 행위나 처세, 일 처리에 있어 모두 불법과 상반되며 불법을 거스르곤 합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충고의 말을 할 때 그 소리가 노래보다 더 아름답습니다.


여래는 누구에게 말해 주는가

“수보리여! 요약해서 말한다면 이 경전에는 불가사의하고 헤아릴 수 없는 무 한한 공덕이 있어, 여래가 대승의 마음을 일으킨 자를 위해 말한 것이요, 최상 승의 마음을 일으킨 자를 위해 말한 것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능히 수지 독 송하여 널리 다른 사람을 위해 말할 수 있다면, 여래는 이 사람을 모두 알고 모두 보니, 모두 헤아릴 수 없고 칭할 수 없으며 끝이 없는 불가사의한 공덕 을 성취할 것이다.”

須菩提! 以要言之, 是經有不可思議, 不可稱量, 無邊功德.
수보리 이요언지 시경유불가사의 불가칭량 무변공덕 
如來爲發大乘者說, 爲發最上乘者說, 若有人能受持讀誦廣爲人說, 如來悉 
여래위발대승자설 위발최상승자설 약유인능수지독송광위인설 여래실 
知是人, 恐見是人, 皆得成就不可量, 不可稱, 無有邊, 不可思議功德. 
지시인 실견시인 개득성취불가량  불가칭 무유변 불가사의공덕

여기서 가장 중요한 구절은, 『금강경』 이라는 경전 자체가 본래 “불가사의〔不可思議〕” 하며 “헤아릴 수 없다〔不可思量〕” 라는 것입니다. 상상할 수도 없고, 얼마나 무거운지 또는 얼마나 긴지 헤아릴 수조차 없습니다. 한마디로 『금강경』의 공덕은 무량무변(無量無邊) 합니다. 그렇지만 주의할 것으 바로 아래에 이어지는 두 구절입니다. 공덕이 이처럼 크다면, 이 경전을 공부하는 사람마다 모두 그 공덕 중의 하나를 취해 돌아갈 수 있을까요? 아무도 가지고 돌아갈 수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 경전은 대승의 마음을 지닌 사람을 위한 것이요, 최상승의 경지에 이른 사람을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경전의 함의는 진정으로 대승의 마음을 지닌, 대보살의 길에 오른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상승(上乘) 중에서도 최상승에 이른 사람 을 위한 것이지, 보통의 지혜를 가진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부처는 말합니다. 가령 어떤 사람이 있어 능히 수지(受時) 독송(讀誦)할 수 있다면, 사람들을 위해 널리 알릴 수 있다면, 부처는 이 사람을 모두 알 수 있고 볼 수 있다는 겁니다. 부처는 이 사람이, “헤아릴 수 없이 많고, 헤아릴 수 없이 무거우며, 한정이 없고, 불가사의한 공덕을 성취할 수 있다〔皆得成就不可量, 不可稱, 無有邊, 不可思議功德〕”는 것을 다 파악하고 이해하며 또 증명해 줄 수 있다는 겁니다. 부처는, 이런 사람이라면 멀지 않은 장래에 무량무변의 공덕을 능히 얻을 수 있다고 말 합니다. 무슨 이유 때문일까요?

"이런 사람들은 여래의 아누다라삼막삼보리를 짊어진 사람이다.”

如是人等, 卽爲擔如來阿耨多羅三藐三菩提.
여시인등 즉위하담여래아두다라삼막삼보리

부처는 말합니다. 이런 사람은 부처와도 같아서 스스로 책임감을 느껴 불법의 짐을 짊어지려 한다는 겁니다. 그렇기에 그는 이토록 큰 지혜와 복덕을 갖습니다. 큰 마음을 지니고 큰 짐을 짊어지려고 한다면 큰 공덕과 지혜를 갖게 됩니다. 어떤 짐일까요? 바로 아누다라삼먁삼보리의 짐 입니다. 이것은 무상의 정등정각(正等正覺)으로서, 보통 대철대오(大行大悟)라 말하는 것입니다. 부처는 말합니다. 이 짐을 짊어진다면 어느날 자연 대철대오할 수 있다고요.


여러분은 작은 법을 좋아하십니까

왜냐하면 수보리여! 만약 작은 법을 즐기는 자라면 아견 · 인견 · 중생견 · 수자견에 집착해, 이 경전을 듣고 독송하여 다른 사람을 위해 해설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何以故? 須菩提! 若樂小法者, 著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 卽於此經,
하이고 수보리 약락소법자 착아견인견중생견수자견 즉어차경 
不能聽受讀誦, 爲人解說.
불능청수독송 위인해설

『능가경』에서는 사람의 근성(根性)을 다섯 종류로 분류합니다. 어떤 사람은 나면서부터 소승의 길을 걸으며 소승의 법을 닦기를 좋아합니다. 그에게 대승보살도, 즉 최상승의 법을 가르쳐 봐야 받아들이지 않으며, 받아 들일 방법도 없습니다. 학교에서 공부하는 학생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학생들은 공부를 해도 어느 정도 선에서 그칩니다. 지능에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가르치는 것 중에서도 제일 낮은 정도밖에는 수용할 수 없습니다. 

불법 또한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비록 지능의 문제는 아닐지라도, 그의 근기(根器)와 발심(發心)이 사소한 것만 좋습니다. 재주 배우기를 좋아해 서 타좌를 할 때면 눈에서 빛이 보인다느니, 소리가 들린다느니, 어느 곳에 기가 집중되어 팔딱거린다느니, 오늘 얼굴에서 또 빛이 발했다느니 다음 날 다리에서 다시 열이 났다느니, 손톱이 밝아졌다느니 합니다. 작은 법(法)을 좋아한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들을 말합니다. 이런 사람들의 관념이나 사고는 이미 아견(我見), 인견(人見), 중생견(衆生見), 수자견(壽 者見)에 빠져 있습니다. 이들에게는 일체가 모두 '자기' 를 위한 것입니다. 사람 중에서도 빼어난 사람이 되기를 희망하며, 건강하게 장수하기를 바라며, 영원히 죽지 않기를 바라기도 합니다. 그러니 대승의 법문인 견성성불(見性成佛)이나,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朝聞道夕死可也〕” 등의 말에 대해서는 근본적으로 이해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부처는 말합니다. 작은 법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금강경의 진정한 의미를 받아들일 방법이 없고, 독송(讀誦)할 방법도 없으며, 더군다나 이것을 널리 펼쳐서 다른 사람을 위해 해설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 입니다.


“수보리여! 어느 곳이든 이 경전이 있다면 일체 세간의 천, 인, 아수라가 응당 공양할 것이다. 마땅히 알아야 한다. 그곳은 곧 탑으로서 모두 응당 공경하며, 에워싸 절하고, 온갖 꽃과 향을 뿌릴 것이다.”

須菩提! 在在處處, 若有此經, 一切世間, 天人阿修羅所應供養.
수보리 재재처처 약유차경 일체세간 천인아수라소응공양 
當知此處, 卽爲是塔, 皆應恭敬, 作禮圍繞, 以諸華香, 而散其處. 
당지차처 즉위시탑 개응공경 작례위요 이제화향 이산기처

부처는 『금강경』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제 수보리에게 말합니다. "어떤 곳이든 단지 금강경이 놓여 있기만 하다면, 세상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천상의 신(神)이든 아수라는 마왕이든 마귀 든 할 것 없이 마땅히 이 경전을 공양해야 한다. 이 경전이 놓인 곳은 곧 불탑이 있는 곳과 같으므로, 마땅히 공양하고 예배하며 향기로운 꽃으로 모셔야 한다.”

 

 글은 남회근 선생의 '금강경 강의'에서 참조하고, 인용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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