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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공부

프리드리히 니체

by 파장波長 2022. 5. 29.

커다란 코끼리가 조그마한 말뚝 하나를 뽑지 못한다고 합니다. 심지어 불이 나도 말뚝을 뽑지 못하고 타죽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왜일까요? 매우 어려서 힘이 없을 때 저 말뚝에 묶어 놓았기때문입니다. 그때 아기 코끼리는 말뚝을 뽑기 위해서 안간힘을 썼지만 뽑지 못했습니다. 그때부터 코끼리는 이렇게 인식해 버린 것입니다. "아, 이 말뚝은 영원히 뽑을 수 없는 것이구나!” 그리고 실제로 저 코끼리는 영원히  말뚝을 뽑지 못한 채로 죽게됩니다.. 우리둘의 말뚝은 무엇일까요?"

 

1. 불행했던 천재, 20세기를 관통하다

14세에 자서전을 쓰려고 한 천재, 일기장에 “나 자신의 때는 아직 오지 않았다. 몇몇 사람들은 사후에야 태어나는 법이다. 언제가니 이해하는 삶과 가르침을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기관들이 내 겨나게 될 것이다” 라며 자신이 대천재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던 사람.

10세에 무반주 악곡을 작곡하고 시를 지었으며, 어린시절 이미 성경구절과 찬송가를 기가 막히게 암송해 별명이 '어린 목사’ 였던 사람이 바로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입니다.

젊은 날의 니체 

젊은 날의 니체는 여러 학문 사이에서 갈등하고, 여러 사상과 사랑에 빠졌습니다. 목사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본대학교에서 신학공부를 했지만 자신과 맞지 않다며 한 학기 만에 때려치우고 나왔습니다. 라이프치히대학교로 옮겨 문헌학을 공부했지만 그마저도 맞지 않아 방황했습니다. 그러다가 헌 책방에서 쇼펜하우어(관념론의 입장을 취했으며 염세관을 주장함)의 책을 만난 후 철학에 흥미를 느끼고 열렬한 쇼펜하우어주의자가 되기도 했습니다. 랑게(유물론을 비판하며 칸트 철학에 의거한 윤리적 사회주의자)의 책을 탐 독하고 나서는 랑게주의자가 되고, 바그너의 음악을 들은 후에는 팬이 되어 실제로 그를 만나기도 했습니다. 1869년 바젤대학교의 고전어학 및 문학의 촉탁교수가 되어 고작 24세의 나이로 교단에 섰습니다. 여기서 그는 여러 분야의 학자들과 교류하지만 너무 이른 나이에 인생이 정해져 버린 것에 따분해 했죠. 이후 인생의 동반 자였던 우울증과 더불어 건강이 나빠져서 1879년부터는 연금생활을 하며 책을 집필하기 시작했습니다.

끊임없는 질병들 

하지만 니체는 살아 있을 때에는 그리 인정을 받지 못했 습니다. 심지어 대작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까지 인정을 받지 못하자 스스로나는 항상 끝도 안 보이는 낭떠러지에 서 있다”고 말할 정도 였습니다.

게다가 생을 괴롭힌 질병들➊ 까지 고려했을 때 결국 정신이상자가 된 것 은 어찌 보면 필연이라고 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44세부터 정신장애가 심해지다가 45세에는 갑자기 길을 가다 마부에게 학대받는 말을 끌어안고 흐느끼며 알지 못할 말을 주절대기도 했습니다. 그후 결국 10년간의 투병 끝에 세상과 등지고 말았습니다.

현대철학에 미친 영향

하지만 니체의 철학은 현대철학에 엄청난 영향을 주었습니다. 한마디로 니체 없이는 20세기의 철학 · 신학 · 심리학의 역사를 생각할 수 없을 정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에게 큰 영향을 받은 철학자로는 카를 야스퍼스, 마르틴 하이데거, 자크 데리다, 미셸 푸코 등이 대표적이고, 사조로는 실존주의와 해체주의➋, 심리학자로는 지그문트 프로이트, 칼 융, 소설가로는 헤르만 헤세, 알베르 카 뮈 등이 있습니다. 대표저서로는 바그너의 비극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듣고 매혹되어 쓴 체 녀작인 『비극의 탄생』, 1879년 대학에서 퇴직하고 알프스산과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해변을 전전하는 투병생활을 하면서 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 인』,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도덕계보』 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책이었던 『권력에의 의지』는 결국 완성하지 못하고 후에 유고(遺稿) 만이 수집되어 출판되었습니다.


2.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신은 죽었다. 허무주의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➌ 에서 조로아스터교의 창시자 조로아스터❹(독일어 발음: 차라투스트라)를 통해 '신은 죽었다’고 하며 초인사상을 설파했고, 이 말은 20세기 지식인의 중요한 구호가 되었습니다. 계몽주의와 세속주의(19세기 유럽에서 유행한 사상태도로, 인간 활동이나 정치적 의사결정 등이 종교에 간섭 받기보다는 객관적 증거와 사실에 기반해야 한다는 주장)는 인간의 이성을 믿으며 신이 정한 중세의 운명으로부터 자유를 선언했고, 발전된 자본주의 사회와 휴머니즘 철학을 성취해 냈습니다. 그러나 그는 모두가 축배를 들고 있던 바로 그때, '신은 죽었다’며 허무주의에 대해 말한 것입니다. 어쩌면 그의 책이 무시당한 것은 지나치게 앞서나간 선구자의 필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음은 그가 자신의 분신인 차라투스트라의 입을 빌려 한 말입니다.

"나는 너희에게 3가지 정신의 변형을 말하려 한다. 즉 정신이 어떻게 낙타가 되고, 낙타는 어떻게 사자가 되고, 마지막으로 사자가 어떻게 어린아기가 되는지를 말하겠다."

굉장한 비유와 상징을 가진 형이상학적 언어입니다. 자, 이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하나하나 살펴보겠습니다. 니체에 따르면 인간 정신의 발달은 3단계를 거칩니다.

1단계 : 낙타의 단계

내리쬐는 햇볕, 광활한 모래사막을 뚜벅뚜벅 걷고 있는 낙타를 떠올려 보십시오. 낙타는 덩치는 커도 겁이 많고 소심해서 그냥 주인에게 복종합니다. 낙타는 이상에 대한 경외와 믿음의 단계, 즉 자기가 이상으로 여기고 숭배했던 것에 대해 인내하는 자세의 단계 를 말합니다. 그냥 주어진 것을 따르는 것입니죠. 그의 표현에 따르면 낙타는 이러한 존재입니다.

첫 번째 과정. 그 과정은 누구보다 더 숭배한다. 그리고 따르고 배운다. 모든 숭배할 만한 것들을 모아 서로 싸우게 하고 거기서 나오는 모든 고난을 짊어진다. 하지만 이 1단계는 그 문화에 대한 믿음이 파괴됨으로써 끝나버립니다.

2단계 : 사자의 단계 

초원을 달리며 먹이를 사냥하고 포효하는 사자를 생각해 보십시요. 사자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려 하며, 굴레를 벗어던지려 하며, 그러니 다른 존재와 끊임없이 마찰합니다.

두 번째 과정, 사람들이 가장 단단하게 얽매어 있는 숭배하는 마음을 깨뜨린다. 자유로운 정신, 독립, 폐허의 시대, 모든 숭배의 비판’

즉 니체는 그 시대의 내적인 붕괴를 가차 없이 폭로하여 현재가 얼마나 허무주의적인 것인가를 보여줍니다. 이것은 그가 자신의 목표로 삼았던 '인류에게 최고의 자기성찰의 순간을 마련해 주는 것이 나의 사명'이라는 말의 의미를 보여줍니다. 고독 속에서 낙타는 사자가 되었습니다. 여기서 사자는 자유로운 정신과 의지를 의미합니다. 자유로운 정신이란 무엇보다도 이제는 관습처럼 굳어 져 버린 선입견(계몽주의)을 뒤집어엎을 과제를 지닌 정신을 말합니다. 즉 이러한 정신의 임무는 바로 진리에 대한 믿음의 파괴입니다.

진리, 도덕, 종교와의 결별

한 시대의 지식은 항상 당대의 학문적 인식의 진보를 자랑하지만, 니체가 보기에는 인간은 절대적 진리를 파악할 수 있을 가능성이 없기에 모든 믿음, 모든 의견이 필연적으로 거짓이라는 통찰만 이 남게 됩니다. 따라서 허무주의는 이 세상의 모든 것과의 결별을 의미합니다. 그럼, 어떤 것과의 결별일까요? 바로 진리, 도덕, 그리고 종교와의 결별입 니다. 사자는 절대적 진리에 대한 믿음을 파괴하고 우리가 당연시했던 인위적 거짓인 도덕에 대항합니다. 삶과 자연은 진실을 위하여 도덕에 대항 하고 거짓된 가면을 벗겨버리지요. 삶과 자연의 최후의 요구는 바로 도덕의 자살로 나타납니다.

마지막으로 종교가 붕괴되면서 그것이 언제나 인간의 생산물이었음을 증명하게 됩니다. 사자를 통해 차라투스트라는 종교가 '인간의 작품이며 광기'라는 것을 폭로하고, 너희들과 내가 신을 죽인 살인자들이다'라고 인정 합니다. 이렇게 차라투스트라는 인간들에게 씌워져 있던 인위의 굴레들을 벗겨낸 것입니다.

3단계 : 어린아이의 단계 

어머니의 자궁을 뚫고 나온 순수하고 해맑은 아이를 생각해 보십시오. 니체는 간혹 허무주의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삶도 드라마틱한 점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의 허무주의는 모든 것을 부정하고 끝나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의 허무주의는 삶과 죽음이 맞닿아 있는 것처럼 그 자체가 하나 의 통과점이 됩니다. 이 3단계는 새로운 세계를 제시하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는 바로 새로운 출발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니체는 또한 긍정의 철학자이기도 합니다.

가장 먼저 새롭게 창출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가면 이 벗겨진 '도덕입니다. 이제 모든 것은 새로운 도표 위에 새로운 가치로 서술되어야 하고, 그것은 '모든 가치들의 전복'으로 나타납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초월자에 대한 믿음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인간으로부 터 생겨난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인간으로서 인간을 초극하는 존재, 새로운 삶을 창조해내는 존재, 그가 바 로 초인이 됩니다. 이제 인간들은 자신이 익숙해져 왔던 과거의 모습과 신 의 그림자를 떠나 초인을 지향하며 그에 다가가는 것이죠. 그것이 바로 모 든 생명의 근본 특징인 '권력에 대한, 혹은 힘에 대한 의지에 의해서 이루 어지는 것이고요.

창조와 파괴의 반복

차라투스트라는 사람들에게 그의 사상을 전달하고 그 또한 인간이 되고 싶어서 산을 내려갑니다. 그러나 그가 만난 사람들은 아무런 창조적 활동도 하지 않고 의지도 지니지 않은 채 살아갑니다.

차라투스트라는 자신들의 신이 죽었음에도 그것을 모르는 사람들을 지나, 자신과 함께할 창조자들을 찾고 또다시 고독 속으로 들어갑니다. 마치 불사조와 같은 차라투스트라의 삶에서 창조와 파괴의 반복이 이루어 졌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창조와 파괴의 삶은 어떤 목적도 목표도 없다는 것 입니다. 그러기에 그것의 가장 깊은 본질은 '허무주의' 이고, 삶의 긍정은 결국 '삶의 허무주의적 성격에 대한 긍정'이 되는 것입니다. 차라투스트라는 허무와 그에 대한 극복을 통해 결국 '영원회귀'(영원한 회귀)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영원히 회전하는 존재의 쳇바퀴 속에서 모든 것은 사멸하고 동시에 꽃을 피웁니다. 끊임없는 자기 극복 끝에 그는 결국 끊임없이 존재의 영원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니체에게 모든 것은 허무주의를 통해서만 구제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허무주의는 의미 없는 현존재를 긍정해야 하고, 또 무의미에서 의미를 찾 아나가는 영원한 과정이지요. 모든 새로운 탄생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 니다. 대철학자 니체의 멋진 구절을 소개하면서 마칠까 합니다. 

어느 시대에도 그러했듯이 오늘날에도 모든 인간은 노예와 자유인으로 분할 된다. 왜냐하면 하루의 3분의 2를 자신을 위해 쓰지 못하는 자는 노예이기 때문이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중에서


Note :

➊ 니체는 12세에 머리와 눈의 통증을 호소하며 김나지움을 휴학했고, 군 복무중이던 24세에는 말에서 떨어져 가슴을 크게 다쳤고, 26세에는 이질과 디프테리아를 앓았으며 우울증은 한평생의 동반자였다.
➋ 해채주의는 신이나 이성 등 질서의 기초에 있는 것을 비판하고, 중심과 부변 따위의 이원론을 부정하는 것으로 대표적인 철학자로는 데리다가 있습니다. 파과 또는 해체, 풀어헤짐의 행위적 관점에서의 부정적 영향이 강한 예술사조를 가리키키도도 합니다.
니체의 유명한 저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철학적 산문시로 총 4부작으로 되어 있습니다. 서설과 1부에서는 10년간 산속에서 고독한 생활을 보내던 주인공이 '신은 죽었다'는 깨달음을 얻고, 인간세계에 내려와 초인의 이상을 논합니다.
2부에서는 영원회귀의 사상을세계에 전하기에는 역량이 부족함을 느끼고 더욱 성숙한 인식을 위해 산으로 되돌아가는 과정을 그립니다.
3부에서는 영원회귀 사상의 성숙을 기다리며 삶의 절대적 긍정을 찬양하는 모습을 나옵니다. 마지막으로 4부에서는 성숙한 영원회귀 사상을 알리기 위해 홀로 다시 산을 떠납니다.
➌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여느 철학책과 달리 서사시의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는 기존의 관습을 부수고 새로운 가치와 인간을 창출해 내기를 원했던 니체가 자신만의 문학적인 스타일을 통해 사유를 담아내었기 때문입니다. 니체의 책은 문학작품처럼 잃히고 때로는 오독되기도 했지만, 그의 스타일은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❹ 조로아스터교의 창시자인 조로아스터, 독일어 발음은 차라투스트라입니다. 기원전 1500~1300년경에 살았으며 30세 즈음에 아후라 마즈다 신의 계시를 받고 조로아스터교를 창시했다고 합니다. 조로아스터교는 '낙타를 잘 다루는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 이 글은 최진기 선생 '인문의 바다에 빠져라' 에서 참고하고 인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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