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카르트의 철학사적 위치와 생애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말로 잘 알려진 르네 데카르트(René Descartes, 1596~1650)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철학자일 것입니다. 17세기 프랑스의 기백 넘치는 철학자 데카르트는 '근대철학의 아버지'로도 불립니다.
데카르트 당시 프랑스는 재상 리슐리외가 절대왕정 국가를 세우던 시절이었습니다. 이 격동의 시대에 데카르트는 법관귀족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형과 남동생이 있었지만 남동생이 태어나자마자 어머니를 잃었고, 아버지가 재혼한 뒤에는 할머니 밑에서 자랐습니다.
라 프레슈 학교에서 전통적 철학 교육을 받은 데카르트는 성적이 우수한 수완가이자 지적 호기심이 넘치는 비판가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수학의 명석함을 좋아했고 애매모호함을 싫어했습니다. 데카르트의 이런 기질은 훗날 그의 철학에도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그가 추구한 바는 무엇보다 확실하고 명쾌한 것이었습니다.
데카르트의 친척이었던 라 프레슈 학교장은 그에게 최대한 자유로운 시간을 주려고 애썼습니다. 기숙사에서 아침 잠을 자도록 허락한 일도 그중 하나로, 데카르트는 아침에 침대에서 생각에 잠기다 가끔 일어나 메모를 한뒤 다시 잠이 들고는 했습니다. 훗날 아침 잠은 그의 습관이 되었습니다.
데카르트는 평생 결혼을 하지 않았는데, 서른아홉에 어느 여성과의 사이에서 딸을 얻었습니다. 아이를 얻고 무척 기뻐했지만 6년 뒤 아이는 그만 병으로 죽고 말았습니다. 데카르트는 딸의 죽음을 무척 슬퍼했습니다. 훗날 그는 '나는 눈물과 슬픔은 여자의 전유물이며 남자는 늘 억지로라도 냉정한 표정을 지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니다' 라는 글을 남겼습니다.
만년에 데카르트는 크리스티나 여왕의 초청으로 추운 나라 스웨덴으로 가게 되는데, 일주일에 두 번씩 아침 5시부터 철학 강의를 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아침잠을 자는 습관이 있었던 그에게는 상당히 고된 노동이었을 것입니다. 이때 무리한 것이 화근이 되었는지 데카르트는 이듬해 폐렴으로 사망합니다.
심신이원론(心身二元論)
코기토 에르고 숨〔coogito ergo sum 〕는 라틴어로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는 말입니다, '좋은 사고방식'을 탐구하라 . 데카르트는 학창시절부터 의심스러운 것은 결코 대충 넘어가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여러 나라를 여행하거나 군대에 들어갔을 때에도 그의 관심은 학문에서 떠나지 않았다. 이윽고 데카르트는 다음과 같은 생각에 도달합니다. "나라나 문화가 달라도 사람들의 지적능력에는 차이가 없어, 미개하다는 소리를 듣는 나라의 사람들도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기술을 잘알고 있다." 이 세상에 지혜로운 사람과 지혜롭지 못한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의 의견이 제각각인 이유는 저마다 사고방식이나 목적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정신을 좋은 방향으로 쓰는 것, 즉 '좋은 사고방식'을 발견하는 일입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생각하는 것이 ‘좋다'고 할 수 있을까요? 데카르트는 다음과 같이 생각했습니다. “모든 것을 일부러 의심해 보자. 그렇게 전부 다 의심했음에도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 있다면, 그거야말로 의심할 바 없이 확실하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모든 게 다 의심스럽습니다. 하지만 그처럼 모든 것을 다 의심하는 나 자신이 존재한다는 사실만큼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데카르트는 이를 '코기토 에르고 숨(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철학적 사고는 모두 이 명제에서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그는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문제가 드러납니다. 생각하는 나는 확실해도 외재적 나인 '육체'는 의심스럽습니다. 과연 몸과 마음은 별개일까요, 아니면 동일 한 존재일까요? 이를 '심신이원론'의 문제라고 합니다.
이처럼 데카르트는 근대철학 역사에서 완전히 새로운 원리와 문제를 하나씩 던져 두었습니다. 바로 '코기토'와 '심신이원론의 문제' 입니다. 이 문제는 이후 유럽 근대철학의 끊임없는 탐구의 바탕을 이룹니다.
데카르트의 철학탁자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라는 말은 요즘에 와서 곧잘 이런 의미로 받아들여집니다. “인간은 사유하는 것에 그 존재 이유가 있다.” 하지만 당시의 데카르트의 뜻을 헤아려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내가 지금 사유하고 있다는 것이 의심할 여지 없이 내가 존재한다는 절대적 증거다.” 사실 이 말은 당시 유행하던 회의론(懷疑論)을 향한 반론입니다. 모든 존재를 의심하려 들면 의심할 수는 있지만, 어떤 회의론자라도 의심하는 자신의 존재만큼은 의심할 수 없으리라. 따라서 철학적 사고는 이 유일한 '확실'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데카르트는 이 생각으로 근대철학의 아버지라 불리게 됐는데, 이 생각을 조금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 철학적 사고의 기본 방법을 살펴보겠습니다. 아퀴나스 부분에서 독자적인 진리 게임을 만드는 종교 탁자의 이야기를 했는데, 이와 달리 ‘철학 탁자'의 원칙은 다음과 같습니다.
예를 들어 '만물의 원리는 물이다'는 철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탈레스의 말입니다. 이 말인즉 “난 신이 세계를 만든 것이 아니라, 세계의 '근원원리=아르케'이 있어 그것이 조화를 이루며 삼라만상을 만들어 낸다고 생각하네. 그 근원을 물이라고 하고 싶은데, 어떤가?”라는 제안을 뜻합니다. 그러자 여러 사람이 모여들어 이 말(원리)을 요리조리 살펴보더니, 다음 사람이 “아니, 난 무한한 것'이라고 부르고 싶네”라고 주장합니다(아낙시만드로스), 그러자 그 다음 사람이 말합니다. “아니, 그건 아닐세. 호흡(공기)'이라 부르는 게 좋지." (아낙시메네스) 이런 식으로 자유로이 의견을 주고받는 것이 철학 탁자의 원형입니다.
종교 탁자는 교조의 말을 믿는 사람들의 공동체가 형성되지만 철학 탁자는 출입이 자유롭고, 다양한 생활방식과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흥미에 따라 모여듭니다. 이 점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리고 다양한 주제를 꺼내 놓고 서로 원리(키워드)를 제시하며, 이 문제에 대해서는 누가 봐도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사고의 절차를 찾아 나갑니다. 따라서 철학은 진리 찾기 게임이 아니라, 언제나 더욱 큰 공통 이해'를 만들어 내기 위한 통찰의 게임'이라 하는 편이 어울립니다.
중세철학에서는 기독교의 큰 이야기(신화)가 절대적 전제가 되었습니다. 그 전제를 일단 버리고, 다시 한 번 누구나 수긍하는 출발점에서부터 시작하자. 이것이 데카르트의 메시지입니다. 자, 이렇게 보니 데카르트가 근대철학의 아버지라 불릴 만하지 않은가요?
Point!
철학 탁자.
1. 출입이 자유롭고 다양한 사람들이 자신의 흥미에 따라 모여든다.
2. 철학은 공통 이해를 만들어 내기 위한 통찰의 게임이다.
3.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출발점에서부터 시작할 것.
∴ 이 글은 <다케다 세이지> 참고해서 인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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