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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경전/아함경

중본기경 전법륜품(傳法輪品)

by 파장波長 2022. 6. 4.

1. 법의 바퀴를 굴리리는 품(傳法輪品)

 

아난은 말하였다.
옛날 나는 부처님으로부터 이와 같이 들었다.

阿難曰:"吾昔從佛聞如是。"


어느때 부처님께서 마가다국의 선승 도량(善勝道場) 원길수(元吉樹) 아래에 계셨다. 덕의 힘으로 악마를 항복 받고 깨달은 지혜가 거룩하고 고요하시며, 삼달지로 걸림이 없으셨고, 상인인 트라푸사 등을 제도하여 삼자귀 (三自歸)를 수여하고 후에 다섯 가지 계율을 허락하시어 청신사(清信士)를 만드신 뒤에 생각하시기를, ‘옛날 먼저의 부처님이신 정광불(定光佛)께서 나에게 부처의 명호를 주시면서, 너는 오는 세상 구십일 겁 만에 부처가 될 것이요, 자(字)는 석가모니며 명호는 그렇게 온(如來) · 동등한 · 바르고 평등하게 깨달은 · 명(明)에의 행(行)을 완성한 · 잘 간 · 세간을 아는 더 이상 없는 사람을 길들이는 · 천신과 인간의 스승인 · 깨달은 어른이라 하리니, 사람 제도하기를 지금의 나와 같이 하리라고 하셨는데, 나는 이로부터 오면서 본래 마음을 닦아 다스리고 여섯 가지 바라밀로 공을 쌓고 행을 쌓으면서 사등(四等)에게으르지 아니하고 높은 행으로 특이하게 하며 괴로움을 참음이 한량 없었고 공의 과보에 유감이 없어서 큰 원의 결과가 이루어졌도다'라 고 하셨다.

一時佛在摩竭提界善勝道場元吉樹下德力降魔覺慧神靜三達無度二賈客提謂波利授三自歸然許五戒爲淸信士已惟昔先佛名曰定光拜吾佛名:“汝於來世九十一劫當得作佛字釋迦文號如來至眞等正覺明行成爲善逝世閒解無上士道法御天人師衆祐度人如我今也。”吾從是來修治本心六度無極積功累行四等不倦高行殊異忍苦無量功報無遺大願果成


세존은 생각하시기를, ‘내가 본래 마음을 낸 것은 맹세코 중생들을 위함이었으므로, 범왕과 제석이 법을 청하니 단 이슬〔甘露〕을 열어야겠다. 누가 먼저 듣기에 알맞을까. 옛날 내가 출가하여 길을 갈 적에 범지 아란가란(阿蘭迦蘭)이 나를 대접할 때 예절에 맞게 하였으니, 그 사람을 먼저함이 마땅하리라 하고 생각하기를 마치고 가려고 하자, 하늘이 거룩한 뜻을 받들어 공중(空中)에서 아뢰었다. '
"그 사람은 죽은 지 칠일이 되었습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안되었도다. 아란가란이여, 단이슬을 열어야 하겠는데 그대가 어찌 듣지 못한단 말이냐?” 

世尊念曰:'吾本發心誓爲群生梵釋請法甘露當開誰應先聞昔吾出家路由梵志阿蘭迦蘭待吾有禮二人應先。”念已欲行天承聖旨空中白言:“彼二人者亡來七日。”佛言:“苦哉阿蘭迦蘭甘露當開汝何不聞?”


부처님은 또 생각하시기를, ‘단이슬을 열어야 하겠는데 누가 그 다음으로 듣기에 알맞을까. 울두람불(鬱頭藍弗)이 다음에 들을 수 있으리라’ 하고 막 일어나서 가려고 하는데, 하늘이 또 아뢰었다. 
“그 사람은 어제 저녁 때에 목숨을 마쳤습니다.” 
“그 사람은 오래 떨어져 있겠구나. 단이슬을 열어야 하겠는데 받아 듣지 못하였으니, 나고 죽음에 오가면서 무엇으로 휴식을 얻으리오. 다섯 갈래〔五道〕에 헤맬 터인데 그 고통을 어떻게 할까.”

佛復惟曰:“甘露當開誰應次聞鬱頭藍弗次應得聞。”方起欲行天復白言:“此人者昨暮命終。”佛言:“彼人長衰甘露當開不得受聞生死往來何緣得息五道輪轉痛矣奈何!”


부처님은 또 생각하시기를, ‘단 이슬의 법북은 삼천 대천 세계에 들릴 터인데, 누가 듣기에 알맞을까. 부왕께서 옛날 다섯 사람을 보내셨으니, 첫째의 이름이 구련(拘憐)이요, 둘째의 이름이 알폐(頞陛)요, 셋째의 이름이 발제(拔提)요, 넷째의 이름이 십력가섭(十力迦葉)이요, 다섯째의 이름이 마남구리(摩南拘利)이다. 깨와 쌀을 공급하며 시중들기에 수고를 하였다. 공의 과보〔功報〕를 갚아야 하겠구나' 라고 하셨다. 

佛復惟曰:“甘露法鼓聞于三千大千世界誰應得聞父王昔遣五人一名拘憐二名頞陛三名拔提四名十力迦葉五名摩南拘利供給麻米執侍勞苦功報應敍。”


이때에 다섯 사람들은 모두 바라나국(波羅奈國)에 있었으므로, 여래는 비로소 나무 아래에서 일어나시니, 상호와 엄정한 거동이 세상을 밝게 빛내고 거룩함이 진동하는지라 보는 이마다 기뻐하였는데, 바라나시에 나아 가시다 아직 도착하지 못하고 중간에서 우우(優吁)라는 범지를 만났다. 
쳐다볼수록 높으시고 아름다운지라 놀람과 기쁨에 엇섞여서 소리 높여 찬탄하였다.
“거룩하고 영묘하여 사람을 감동시키며, 위의가 맑으시고 뛰어나셨습니다. 본래 어떠한 스승을 섬기셨기에 그런 모습을 얻으셨습니까.” 

時五人者皆在波羅奈國於時如來始起樹下相好嚴儀明耀於世威神震動見者喜悅徑詣波羅奈國未至中閒道逢梵志名曰優瞻睹尊妙驚喜交集下在道側擧聲歎曰:“威靈感人儀雅挺特本事何師乃得斯容?”


부처님은 우우를 위하여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佛爲優而作頌曰

 

八正覺自得 여덟 가지 바름(八正)을 스스로 깨달아서 
無離無所染 여워도 없고 물드는 바도 없으며 
愛盡破欲網 애욕이 다하고 욕심 그물 부셨나니 
自然無師受 저절로 스승 없이 받았습니다., 

我行無師保 나의 행은 스승 없이 보존되었기에 
志獨無伴侶 뜻은 홀로 짝할 이가 없으며 
積一行作佛 하나의 행을 쌓아 부처가 되었나니 
從是通聖道 이로부터 성인의 도를 통했습니다.


우우는 부처님께 물었다. 
“고오타마께서는 어디로 가십니까.” 
부처님은 범지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바라나시로 나아가서 단 이슬의 법북을 쳐서 위없는 바퀴를 굴리려 합니다. 삼계의 뭇 성인들께서 전에 없던 법 바퀴를 굴리시어 사람을 교화하고 열반에 들게 하셨으니, 지금 나도 그럴 것입니다.”
우우는 크게 기뻐하면서 말씀하셨다.
“거룩하고 거룩하십니다. 고오타마의 말씀이시여. 원컨대 단 이슬을 열으시어 알맞게 법을 말씀하소서.” 

吁問佛:“瞿曇如行?”佛告梵志:“吾欲詣波羅奈國擊甘露法鼓轉無上輪三界衆聖未曾有轉法輪遷人入泥洹如我今也!”吁大喜曰:“善哉善哉如瞿曇言者願開甘露如應說法。”


이때에 여래는 곧 바라나국의 옛 신선의 처소인 녹원〔鹿園:녹야원〕의 나무 아래로 나가시면서 저 다섯 사람에게 향하시자, 다섯 사람들은 멀리서, 부처님이 오시는 것을 보고 함께 의논하였다.
“우리들은 애써가며 고생을 하였다. 집안 사람들과 이별하여 산을 오르고 영역을 넘으며 고생을 극심하게 하였다. 바로 이 사람을 앉혀 놓고 깨와 쌀을 공급하느라고 견뎌 낼 수 없다고 생각하던 차에 악마가 와서 싸움을 걸었으므로 버리고 숨어 버렸는데, 이제 일부러 다시 오는구나.
한 알의 깨나 한 톨의 쌀이라도 우리는 주지 말자. 이제 일어나서 음식을 구한들 어떻게 마련할 수 있겠는가. 다만 자리만은 베풀어 주고 저마다 무릎 꿇거나 일어나거나 말을 하거나 문안을 하거나 하지는 말자. 여기서 언짢아하게 되면 반드시 스스로 떠나가리라.” 

於時如來便詣波羅奈國古仙人處鹿園樹下趣彼五人五人遙見佛來便共議曰:“我等勤苦室家離別登山越嶺困苦疲極正坐此人供給麻米謂其叵堪因魔來戰是以委藏今故復來一麻一米我等不堪今起求食奈何能辦但爲施坐各莫跪起言語問訊也得此不樂必自去矣。”


이때에 세존은 그 다섯 사람들을 위하여, 도와 신족을 나타내어 다섯 사람의 몸이 솟구치며 모르는 결에 예배하면서 시중들기를 전과 같이 하게 하고는, 부처님은 다섯 사람들에게 말씀하셨다.
“함께 의논하면서 일어나지 말자 하더니, 이제 예배까지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
다섯 사람들은 모두 대답하였다. 
“우리는 실달(悉達 :싯다르타) 때문에 대단한 고생을 겪었소. 열두단왕(悅頭檀王:정반왕)은 사납고도 모질며 도에 어긋났는데 모두가 당신 때문이었습니다.” 

是時世尊爲其五人現道神足五人身踊不覺作禮執侍如前佛告五人:“共議勿起今作禮何謂?”五人悉對曰:“吾坐悉達更歷勤苦悅頭檀王暴逆違道皆由於卿。”


부처님은 다섯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당신이라 하지 말라. 위없고 바르고 참된 여래며 평등각(平等覺)이니라. 더할 나위 없이 바르게 깨달았으므로, 나고 죽음의 뜻으로써 상대할 수 없느니라. 어찌 나의 얼굴을 대하면서 아버지의 이름을 일컬을 수 있겠느냐.” 
또 다섯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나의 몸을 자세히 살펴보라. 왜 나무 아래서와 같느냐.” 
다섯 사람은 부처님께 대답하였다. 
“그때는 지쳐서 파리하더니, 이제는 다시 광택이 납니다. 그때 나무에 계시면서 눈을 감고 단정히 앉아 하루에 한번 깨와 쌀을 먹으면서도 오히려 도가 아니라고 여겼는데, 하물며 사람들 사이에 들어 가서 몸과 입을 제멋대로 하면서 어찌 도를 닦는다고 하겠습니까.” 

佛告五人:“汝莫卿無上正眞如來平等覺也無上正覺不可以生死意待也何得對吾面稱父字?”又告五人:“汝觀吾身何如樹下?”五人答佛:“爾時憔悴今更光澤爾時處樹閉目端坐日食麻米猶謂非道況入人閒身口自恣何謂爲道?”


부처님은 다섯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세상에는 두 가지 일을 지니면서 스스로 침범하여 속이고 있다. 무엇이 두 가지 일이냐 하면, 살생과 음욕이다. 세력을 뽐내고 음욕을 탐내어 몸이 다하도록 괴롭히는 것은 안으로 도의 자취가 없어서이니, 이 두 가지 일이 없으면 바로 참된 도인이 아니겠느냐. 
아흔여섯 가지 술법을 역시 버리거나 멀리할 것도 없는 이것이 중도(中道)를 지님이니 양쪽에 치우침이 없어야 한다. 무엇이 중도에 나아감이냐 하면, 지혜의 행을 깨닫게 되어 뭇 지혜를 통달하고 여섯 가지 신통을 모두 깨달으며 여덟 가지 바른 행을 갖추어야 이것을 중도에 나아가서 열반에 머무르는 것이라 하느니라.” 

佛告五人:“世有二事以自侵欺何謂爲二殺生婬泆恃豪貪欲極身勞苦內無道迹無是二事是眞道人不於九十六術亦不捨遠是爲取中無有兩際何謂取中得覺慧行遠於衆智六通悉覺具八正行是名取中止宿泥洹。”


부처님이 이 법을 말씀하셔도 다섯 사람은 아직 이해하지 못하고, 세 사람은 걸식을 하고 두 사람은 공양을 하므로 그들을 위하여 색 (色)의 괴로움을 말씀하셨다.
“온갖 재앙은 모두가 색욕(色欲)으로 말미암는다. 여러 좋다는 것은 무상하나니 사람 역시 머무름이 없다. 이를테면 요술장이가 뜻을 내어 변화로 만든 것을 어리석은 사람은 사랑하고 그리워하며 탐내면서 싫어함이 없는 것과 같다. 요술장이는 변화를 살펴보면서 물듦도 없고 집착도 없나니, 왜냐 하면 그것은 거짓이요, 참이 아니기 때문이니라.” 

佛說是法五人未解三人分衛二人供養爲說色苦:“一切衆禍皆由色欲衆好無常人亦無住譬如幻師出意爲化愚者愛戀貪而無厭幻主觀化無染無著所以者何僞非眞故。”


부처님은 두 사람을 위하여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佛爲二人而作頌曰

志蕩在欲行 뜻이 방탕하여 음란한 행위에 있으면서 
嗜欲增根栽 음욕을 즐길수록 뿌리 더욱 심어진다. 
貪色怨禍長 색욕을 탐내면 원한과 재앙만이 길어지고 
離欲則無患 색욕을 여의면 근심이 없어지니라.


세 사람이 공양하고 두 사람이 걸식을 하자, 그들을 위하여 탐냄의 괴로움을 말씀하셨다.
“이끗을 좋아하고 영화를 구하는 것은 헷갈리고 어리석은 이가 오로지 힘쓰는 바로서 수행을 해치고 덕을 헐어뜨리느니라. 한결같이 탐욕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성내고 얻게 되고 잃게 되거늘 욕심꾸 러기는 싫어함이 없나니, 이 이끗이야말로 위태롭고 헤식은 것으로서 마치 구름이 뜰을 지나쳐 감과 같느니라. 늙음과 병듦과 죽음이 닥뜨리면 갈라져 흩어지지 않음이 없어서, 이를 테면 사람이 꿈을 꾸다가 깨면 볼 수 없는 것과 같나니 슬기롭게 탐욕을 버릴 수 있어야 비로소 크게 편안함을 얻으리라.”

三人供養二人分衛爲說貪苦:“好利求榮迷愚所專害行毀德壹由於貪喜怒得失欲者無厭斯利危脆若雲過庭老病死來靡不分散譬如人夢寤則無見黠能捨貪乃得大安。”


부처님은 세 사람을 위하여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佛爲三人而作頌曰

貪欲意爲田 탐욕을 냄이 뜻의 밭이 된다면
無厭心爲種 싫어함이 없음은 마음의 씨가 된다.
斷貪捨利求 탐욕 끊고 이끗과 구하는 것 버리면 
無復往來憂 다시는 가고 옴의 근심이 없느니라.


이에 세존은 거듭 널리 법을 말씀하시며 분부(分部)를 끊지 아니 하시자, 다섯 사람은 곧 깨닫고 제자되기를 원하였다.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잘 왔도다. 비구들아.” 
그러자, 모두가 사문이 되었다. 

於是世尊因廣說法不斷分部五人便解願爲弟子佛言:“善來比丘!”皆成沙門


부처님은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행위에 두 가지 일이 있으면 끝〔변제 邊際〕에 떨어지게 되나니, 첫째는 생각을 색욕에 두면 뜻을 맑힐 수가 없고, 둘째는 탐욕에 애착을 두면 뜻을 맑힐 수가 없느니라.
이 두 가지 일을 행하면 도로 끝에 떨어져 다니면서도 나서는 부처님을 만나지 못하고 참된 도를 어기고 멀리 하니, 만약 탐욕을 잘 끊으면 정진으로 수행이 밝아져서 열반을 얻을 수 있느니라.
무엇이 열반이냐 하면, 먼저 네 가지 진리〔四諦〕를 아는 것이니라. 무엇이 네 가지 진리냐 하면, 첫째 괴로움〔〕이요, 둘째는 괴로움의 집기〔〕요, 셋째는 괴로움의 멸함〔〕이요, 넷째는 괴로움의 멸함에 이르는 길〔入道〕이 그것이니라.
그러하느니라. 비구들아, 다음에는 깨달음의 지혜를 지니어 한 마음으로 선정을 생각하면 도의 응보를 받으며 법의 눈이 깨끗하여지나니, 저 네 가지 진리를 알면 점차로 도의 자취에 들어가느니라. 

佛告比丘:“行有二事爲墮邊際一者念在色欲無淸淨志二者猗愛著貪不能淸志行是二事還墮邊行生不値佛違遠眞道若能斷貪精進修明可得泥洹何謂泥洹先知四諦何謂爲四一曰爲苦二曰爲習三曰爲盡四曰入道如是比丘次持覺慧一心思禪受道報應法眼以朗解彼四諦稍入道迹


무엇이 괴로움이냐 하면, 남의 괴로움〔生苦〕· 늙음의 괴로움〔老苦〕· 병의 괴로움〔病苦〕·죽음의 괴로움〔死苦〕· 근심하고 슬퍼하고 시달리는 괴로움〔우비별호 憂悲別苦〕· 사랑하는 이와 이별하는 괴로움〔은애별고 恩愛別苦〕 · 원수와 미운 이를 만나는 괴로움〔원증회고 怨憎會苦〕 · 구하나 얻지 못하 는 괴로움〔소구일고 所求失苦〕이니, 간략히 말하면 다섯 가지 취한 근간 자체가 괴로움〔오음성고 五盛陰苦〕이니라.
무엇이 괴로움의 집기인가 하면, 사랑하고 탐착하는 바의 집기이며 사랑하지 않아도 집기하는 것이며, 무엇이 괴로움의 멸함이냐 하면, 있는 바의 애착은 멸함〔〕이 있다고 알아서 사랑하지도 아니하고 생각하지도 아니하여 깨달아 모두 없애는 것이니라. 

何謂爲苦生苦老苦病苦死苦憂悲惱苦恩愛別苦怨憎會苦所求失苦要因五陰受盛爲苦何謂爲習所愛著習不愛亦習何謂爲盡其所有愛覺知有滅不愛不念而覺皆盡


무엇이 괴로움의 멸함에 이르는 길인가 하면, 여덟 가지 바른 것이 길이 되나니, 첫째는 바른 소견〔正見〕· 둘째는 바른 생각〔正利〕 · 셋째는 바른 말〔正言〕· 넷째는 바른 업〔正行〕· 다섯째는 바른 생활〔正命〕· 여섯째는 바른 노력〔正治〕· 일곱째는 바른 기억〔正志〕 · 여덟째 는 바른 집중〔正定〕이니, 이것이 괴로움과 집기가 사라져서 도에 들 어가는 진리가 되며, 이것이 남이 없는 것이니라.
남이 없으면 늙음이 없고 늙음이 없으면 병도 없고 병이 없으면 죽음이 없고 죽음이 없으면 고통이 없고 고통이 없으면 더할 나위 없이 상서로와서 열반으로 향하느니라.” 

何謂入道八正爲眞一曰正見二曰正利三曰正言四曰正行五曰正命六曰正治七曰正志八曰正定是爲苦習以盡入道眞諦是爲無生無生者無老無老者無病無病者無死無死者無痛無痛者無上吉祥向於泥洹。”


이때에 여래는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於時如來而作頌曰

至道無往返 지극한 도는 가고 옴이 없고 
玄微淸妙眞 깊숙한 이치는 맑고 묘하고 참되며 
不沒不復生 죽지 않고 또 나지도 아니하는 
是處爲泥洹 이 곳이야말로 열반이니라. 

此要寂無上 이 법은 고요하여 위가 없어서 
畢故不造新 마지막으로서 새 것이 되지 않으며 
雖天有善處 비록 하늘에 좋은 곳이 있더라도 
皆莫如泥洹 모두가 열반보다 나음이 없느니라.


이 법을 말씀하시자 구련(拘憐)등 다섯 사람은 법의 눈을 얻었다. 
부처님은 구련에게 말씀하셨다. 
“알겠느냐, 모르겠느냐.” 
카운디냐는 자리에서 물러나며 대답하였다. 
“깨닫지 못하였나이다.” 

說是法已拘憐等五人逮得法眼佛告拘憐:“解未?”拘憐退席對曰:“未悟。”


세존이 또 구련에게 말씀하셨다. 
“과거 오랜 옛적에 악생(惡生)이라는 국왕이 있었는데 여러 기녀(妓女) 들을 데리고 산에 들어가 재미있게 놀러가면서 왕은 관속들을 산 아래 머물러 있게 하고 기녀들만 따르도록 하여 걸어서 산꼭대기까지 갔으므로, 왕은 매우 고단하여 누웠더니 잠이 들었느니라.
여러 기녀들은 왕을 떠나서 꽃을 따다가 한 도인이 나무 아래 단정히 앉아 있음을 보고 기녀들은 마음으로 기뻐하면서 모두 나아가 예배를 드리자, 도인은 주원(呪願)을 하면서, ‘여러 누이들은 어디서 왔습니까’ 하며, 자리에 앉히고 그들을 위하여 경전의 법을 말하고 있었느니라. 

世尊又告拘憐:“過去久遠時有國王名曰惡生將諸妓女入山遊王令官屬住頓山下唯從妓女步涉山頂王疲極臥諸妓女輩捨王取華見一道人端坐樹下諸女心悅皆前作禮道人呪願諸妹那來命令就坐爲說經法


왕은 깨어서 기녀들을 찾다가 저기 도인의 앞에 앉아 있음을 보고서, 왕은 시새워서 나쁜 마음을 내어 곧 도인에게 묻기를, ‘무엇 때문에 남의 기녀들을 꾀어다가 여기에 앉혀 두었소, 당신은 무엇하는 사람이오’ 라고 하였다. 도인은 왕의 뜻이 반드시 사납게 해치려 함을 미리 알고 대답하기를, 
바로 인욕(忍辱)을 닦는 사람입니다’ 라고 하였다.
왕은 차고 있던 칼을 뽑아서 그의 양쪽 팔을 베어버리면서 묻기를 ‘무엇하는 사람이오’ 라고 하자, 대답하기를, ‘진실로 인욕을 닦는 사람입니다” 라고 하므로, 또 그의 귀와 코를 끊어 버렸으나 마음이 굳건하여 요동하지 않고 오히려 ‘인욕을 닦는 사람입니다' 라고 말하였다. 

王覺求諸妓女而見坐彼道人之前王性妒害惡心內發便問道人:‘何故誘他妓女著此坐爲卿是何人?’道人豫知王意必興暴害答曰:‘是忍辱人。’王拔佩劍削其兩臂而問:‘何人?’答曰:‘實忍辱人。’又截其耳鼻心堅不動猶言忍辱人


왕은 도인의 안색이 변하지 않음을 보고 곧 나아가서 허물을 뉘우치자 도 인은 왕에게 말하였느니라.
‘그대는 이제 여색 때문에 칼로써 나의 몸을 끊었지마는, 나는 참기를 땅과 같이 하였으니 반드시 평등정각을 얻어서 장차 온갖 큰 지혜로써 그대의 생사를 끊으리라’ 고 하였는데, 왕은 죄가 깊어서 반드시 중한 재앙을 얻게 될 것을 생각하여 공손히 땅에 머리를 숙이면서 가엾이 여겨 용서할 것을 원하자, 도인은 왕에게 말하기를, ‘내가 진실하게 인욕을 하는 이라면, 피가 젖이 되며 끊어졌던 데가 본래대로 회복되리라 고 하니, 곧 말한 대로 젖이 나오면서 몸이 회복되므로, 왕은 인욕의 증거를 보고 반드시 모두를 제도할 것을 바라면서 충정에서 말하기를, ‘만약 참된 도를 이루면 먼저 저를 제도해 주시기 원하옵니다’ 라고 하므로, 도인은 대답하기를, ‘그렇게 하겠느니라 하자, 왕은 헷갈림을 깨닫고는 작별하고 궁중으로 돌아갔느니라.”

王見道人顏色不移便前悔過道人告王:‘汝今以女色故刀截我形吾忍如地必得平等正覺當以一切大智斷汝生死。’王惟罪深必獲重殃叩頭于地願見矜恕道人告王:‘吾眞忍辱者血當爲乳所截平復。’尋如所言乳出形復王見忍證冀必全濟重宣情言:‘若眞道成願先度我。’道人答:‘。’王解迷止辭退還宮。”


부처님은 구련에게 말씀하셨다. “그때 인욕 도인은 바로 지금 나의 몸이요, 악생왕은 바로 구련 너니라. 알겠느냐, 모르겠느냐. 구련” 
구련은 자리에서 물러나며 부처님께 아뢰었다. 
“잘 알았나이다. 세존이시여.”

佛告拘憐:“爾時忍辱道人者我身是也惡生王者拘憐是也解未拘憐!”拘憐退席白佛:“甚解世尊!”


이 법을 말씀하실 때 카운디냐 등 다섯 사람은 번뇌가 다하고 뜻이 풀려 모두 아라한이 되어 위의 여러 하늘들 팔만이 법의 눈을 얻었 으며, 삼천세계가 크게 진동하였다.
이것이 여래께서 처음 바라나시에서 위없는 법의 바퀴로써 아직 굴리지 못한 것을 굴리어 크게 일체를 제도하신 것이니, 즐거이 받지 아니함이 없었다.

說是法時拘憐等五人漏盡意解皆得羅漢及上諸天八萬逮得法眼三千世界爲大震動是爲如來始於波羅柰國以無上法輪轉未轉者大度一切莫不樂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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