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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교리

유식무경(唯識無境)

by 파장波長 2024. 2. 15.

 인식 속에서만 존재하는 대상과 우리 눈앞의 대상은 과연 실재하는 것인가. 모든 사물은 의식의 스크린에 투영된 이미지 우리 눈앞에 펼쳐져 있는 텔레비전은 과연 실재하는 것일까. 텔레비전에 나오는 사람은 과연 텔레비전 속에서나마 실재하는 것일까.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면 모두 실재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누구에게나 동일한 인식의 대상이면서 단순한 외견이나 착각, 환상, 허구와 같은 것과는 구별되는 ‘사물의 진실된 자세’란 무엇일까?  감관에 의해 지각되는 존재인 현상을 의식으로부터 독립된 객관적 실재라고 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것을 의식과는 분리된 그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가 무엇을 보고(眼) 듣고(耳) 맡고(鼻) 맛보고(舌) 부딪치는(身) 개별적인 인식 활동은 의식(意識)이 종합하고 통제한다. 만일 의식(제6식)이 여러 인식활동(전5식)을 제어하지 못하게 되면 우리의 삶은 혼돈 속에 빠지게된다. 

뇌의 갑작스런 혈액 순환 장애로 의식을 잃고 쓰러져 팔다리의 수의(遂意) 운동이 불가능해진 중풍(腦卒中) 환자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손과 발 등 몸의 반쪽이 그의 의식의 통제로부터 벗어나 말을 듣지 않는다. 이러한 마비(痲痺)현상을 한의학에서는 ‘불인(不仁)하다’고 한다. 

은행씨(杏仁)나 복숭아씨(桃仁)처럼 혈액이라는 생명의 씨앗(仁)이 제대로 소통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즉 생명 활동의 커뮤니케이션(識)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不仁) 뜻이다. 때문에 의식은 즉 의사 소통 내지 혈액 순환 등 생명활동의 기반이다. 그런데 이 의식은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등을 통섭하는 의근(意根)과 비감각적 대상(法境)을 인연으로 하여 생겨난다. 

인식 활동인 이 식은 여러 교리에서 설명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존재의 다섯 가지 요소(五蘊) 가운데 다섯 번째인 식과, 열 두 가지 인연 생기(十二緣起) 중의 세 번째인 ‘식’ 이다. 특히 이 식은 ‘유식’(唯識)이라는 말에서 보다 심화된다. 표층의식인 제6식과 심층의식인 제7식과 제8식 내지 제9식으로까지 설명된다. ‘식’은 ‘의식’ 내지 ‘인식의 작용 그 자체’를 말하고, 이 식은 ‘비즈냐아나’(vijn~a-na)와 ‘비즈납띠(vijnapti)로 변별된다. 이는 인식의 주체로 보느냐 활동으로 보느냐에 의해 분기되는 것이다. ‘비즈냐아나’(識)는 ‘식 자체’ 내지 ‘어떤 대상을 내용으로 하는 식’을 말한다. 그런데 이 ‘식’은 ‘항시 변하고 있는 흐름으로서의 식’ 이다. ‘비즈납띠’는 ‘인식되어진 것’ 또는 ‘인식의 내용’ 내지 사물의 겉모습인 ‘표상’(表象)을 일컫는다. 

우리가 흔히 인식의 대상으로 파악하고 있는 사물은 의식으로부터 독립된 객관적 실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단지 내 마음에 나타난 사물의 겉모습(表象)일 뿐이며, 모든 사물은 내 의식의 스크린에 투영된 이미지(影像)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즉 인식 속에서만 대상은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를 주관적 관념론으로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유식학을 반드시 그렇게만 볼 수는 없다. 유식 역시 연기 · 무자성 ·공의 입장에서 존재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세친은 그의 〈유식이십론〉(실은 22송)에서 대상의 비실재성을 논구하고 있다. 그는 사물의 시간적, 공간적 구별, 동일한 대상의 인식, 대상에 따라 취하는 성공적인 행위들에 대한 설명을 꿈의 현상에 대비하여 해명하고 있다. 즉 악업으로 지옥에 떨어진 이들에게 지옥의 고통을 체험하지 않는 지옥의 문지기들은 객관적 존재일 수 없다는 것이다. 문지기들은 단지 지옥의 고통을 받는 이들의 나쁜 업의 결과일 뿐이라는 것이다. 결코 객관적 실재로서 존재하는 문지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업이 남긴 힘’ 또는 ‘습기’(習氣)는 모두 우리의 식 안에 내재한다는 것이다. 

세친은 우리의 인식은 모두 식 자체의 종자(씨앗)로부터 생겨나는 것일 뿐이며 주체와 객체는 모두 식의 나타남에 지나지 않는다고 역설했다. 중국 자은(법상)종에서 ‘안난진호(安難陳護)1·2·3·4’라는 말로 식의 사분(四分)설을 제기한 것도 바로 ‘대상’을 ‘인식’ 속에서 해명하려는 노력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식이라는 것도 실체는 아니다. 폭포수와 같은 하나의 흐름일 뿐이다.


 Q&A 

“현상존재는 識의 활동으로 현현” 인식대상(境)인 법의 존재 부정

Q 유식학파가 주장하는 근본 가르침을 한 마디로 표현하는 것이 유식무경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여기서 식은 있고 경은 없다는 의미가 무엇인가?

A 우리들은 보통 우리 주변에 존재하고 있는 사물들이 나와 분리되어 외계의 사물로서 실재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나와 내 주변의 다른 사람들, 산이나 강과 같은 자연물 등이 각각 달리 존재한다는 소박한 실재론을 상식이라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유식사상은 우리가 소박하게 인정하고 있었던 외계 사물의 존재를 철저히 부정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이러한 유식사상의 근본 명제를 유식무경이라고 한다. 이는 마음을 떠나 외계에 존재하는 사물은 존재하지 않으면 존재하는 것은 오직 마음뿐임을 의미한다. 이 경우 유식(唯識)을 범어로는 비즈냐프티 마트라(vijapti-matra)라고 한다. 이 개념을 가장 일찍이 사용하고 있는 경전은 역시 ‘해심밀경’이다. 이 경의 분별유가품에 다음과 같이 나타나고 있다. 

미륵보살이, "세존이시여, 위빠사나 삼매 중에 나타나는 영상(影像)은 마음과 같은 것입니까 다른 것입니까?” 라고 물었다. 

이에 부처님께서 “선남자여, 둘은 같은 것이다. 왜냐고 하면 그 영상은 오직 식이기 때문이고, 식의 대상은 오직 식이 현현(顯現)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유식이라는 용어는 요가의 실천 속에서 나타나는 자각적인 체험이 원동력이며 마음이 대상을 인식하는 것과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유식의 식이 보통 6식이라고 할 때의 비즈냐냐(vijna)가 아니라 비즈냐프티(vijapti)로 표현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유식이라고 할 때의 식인 비즈냐프티(vijapti)는 vi-jn(알다)라는 동사의 사역형 비즈냐파야티(vijapayati)에서 만들어 진 것으로 ‘알게 하는 것’이라는 의미다. 이를 유식에 적용시키면 인식의 주체인 식(vijna)이 자기의 인식대상인 경(境, artha)을 알게 하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비즈냐프티(vijapti)는 어떤 대상을 향해서 인식하는 식의 활동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현상존재들은 바로 이 식의 인식활동에 지나지 않고, 이 대상들은 오직 식의 현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유식학파의 기본적인 입장이다. 

예를 들면, 물에 비친 달이나 거울 속의 모습은 일시적으로 비추어진 영상이며 실재하지 않는 것과 같이 우리들의 인식대상도 영상과 같이 일시적으로 마음속에 비추어진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 경우 인식대상인 경은 무엇일까요. 

유식학파에서는 외계사물을 나타내는 수많은 용어 중 아르타(artha)라는 단어를 즐겨 사용하고 있다. 이 아르타에는 ‘의미’와 ‘사물’이라는 두 가지 뜻이 있는데 유식학파는 인식대상은 반드시 언어라는 매개로 의미를 부여함으로서 비로소 사물이 될 수 있다는 자신들의 사상을 아르타에 부여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외계사물은 6식의 대상인 형태(色), 소리(聲), 냄새(香), 맛(味), 감촉(觸), 법(法)이다. 이 외계사물에 대한 부정은 대승불교의 법무아(法無我)와 연관되어져 있다. 

법무아에서 말하는 법(法, dharma)은 좁게는 인간을 제외한 자연물을 말하지만, 넓게는 일체법 즉 정신과 물질을 말한다. 우리가 아비달마사상을 ‘삼세실유법체항유’라고 표현하듯이 이 학파는 존재를 구성하는 기본적인 요소가 실재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유식학파의 유식무경은 인식대상인 법의 존재를 부정함으로서 법무아를 실천하려는 것아다.

고영섭/동국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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