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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교리

구경각(究竟覺)

by 파장波長 2024. 2. 15.

 구경각(究竟覺)이란? 보살의 수행이 원만해서 궁극적이고 완전한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되는 경지에 이르는 것입니다. 즉 붓다와 같은 완전한 깨달음, 곧 부처의 상태를 이룬 것이나 부처가 되는 자리를 뜻합니다.

구경각을 가리키는 다른 말로는,  보리(菩提), 각(覺), 묘각(妙覺), 묘각지(妙覺地), 묘각해지(妙覺海地), 적멸심(寂滅心), 적멸심 묘각지(寂滅心妙覺地), 반야(般若), 마하반야(摩訶般若) 등이 있습니다.

여러 불교 종파와 경전에서는 구경각을 깨우치게 되는 선정(禪定)도 거론하는데, 예컨대 화엄경과 화엄종의 교의에 따르면, 해인삼매(海印三昧)에 들면 비로소 구경각을 깨우쳐 부처가 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금강경에 따르면 금강삼매(金剛三昧)에 의거해, 수능엄경에 따르면 수능엄삼매(首楞嚴三昧)에 의거해 구경각을 깨치게 된다고 했습니다.

대승불교의 주요 논서 중 하나인 ❮대승기신론❯에서는 수행을 통해 증득한 깨달음의 경지의 차이를 불각(不覺) · 상사각(相似覺) · 수분각(隨分覺) · 구경각(究竟覺)의 4각(四覺)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묘각(妙覺)은 온갖 번뇌(煩惱)를 끊어버린 부처의 지위로 불교의 구경각(究竟覺)이라고 합니다. 

묘각은 대승불교의 보살 수행계위 중 마지막의 불과(佛果)를 가리키는데, ❮화엄경❯에 나오는 41위(四十一位)나 ❮영락경❯에 나오는 52위(五十二位)의 마지막 지위에 해당합니다.

특히 ❮영락경❯에 나오는 10신(十信) · 10주(十住) · 10행(十行) · 10회향(十回向) · 10지(十地) · 등각(等覺) · 묘각(妙覺)의 52위는 ❮화엄경❯의 10주 · 10행 · 10회 · 10지 · 불지(佛地)의 41위에 기반 해 성립된 보살 수행계위로서, 대승불교에서 널리 사용하고 있는 보살 수행계위이고, 이들 수행계위에 대한 교의에 따르면, 등각보살 즉 등각의 지위에 있는 수행자가 마지막으로 남은 한 가지 무명(無明), 즉 최초[元品]의 무명, 무시무명(無始無明)인 원품무명(元品無明), 근본무명(根本無明)을 끊고 묘각의 지위에 들어간다고 했습니다.

묘각(妙覺)은 묘각지(妙覺地)라고도 하며, 또는 묘각 바다의 지위라는 뜻에서 묘각해지(妙覺海地)라고도 합니다. 또한 적멸심(寂滅心) 또는 적멸심 묘각지(寂滅心妙覺地)라고도 합니다. → 사각(四覺) 참조.

구경각(究竟覺)의 깨달음이란? 이를테면 묘각(妙覺)이라는 것은 무얼까? 번뇌 그대로 보리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이 말은 번뇌를 끊고, 열반을 증득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없애버리고 싶은 번뇌가, 사실은 번뇌가 아니였음을 깨닫는 것입니다. 이것은 반야지혜의 눈을 갖추었을 때 가능합니다. 즉 깨달음은 구하거나 취하는것이 아닙니다.

원래 있는것을 아는 것입니다  따라서 깨달음을 얻었거나 구했다 득도했다면  그건 득도가 아닙니다. 번뇌는 떠나는 것이 아니라 원래 있는 것입니다. 원래 존재하는 번뇌의 본성, 본심 본각을 알때 더이상 번뇌는 번뇌가 아닙니다. 그리할 때 비로소 더이상 번뇌를 떠나려는 모든 짓들을 하지 않게 됩니다. 무명無明(무지)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본래 아무런 일이 없었던 것을, 무명으로 말미암아 착각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구경각을 얻습니다. 구한다는 것은 얻을 무엇도 없기 때문에 잘못된 공부다 잘못된 깨달음 정보를 입수하게 되면 공부가 엉뚱한 방향으로 흐름니다.

선지식인들은 사병(四病)을 제거하여 아(我)와 상(相)과 상견과 미혹의 번뇌인 본성을 파악하어  묘법을 증명하였다. 공부초기에 잘못된 사병을 명확히 차단해야 합니다.

해탈을 위한 수행에 나타나는 사병(四病)을 번뇌에 대입해 풀어보면,

① 작병(作病)- 의식이나 신체의 조작을 통해 깨달음을 추구하는 것.   
② 임병(任病)- 번뇌가 깨달음이라는 말에 취해서 깨닫지도 않고, 번뇌에 내맏겨두는 것, 의 
③ 지병(止病)- 번뇌가 번뇌아님을 모르고, 억지로 생각을 끊는 것(없애려는 것). 
④ 멸병(滅病)-번뇌를 끊어버린 공적한 것으로서 깨달음을 추구하는 것. 

작지임멸(作止任滅)을 벗어난 자는 곧 청정을(원각)을 앎이니,이렇게 관하는 것이 정관(正觀)이며 다르게 관하는 것을  사관(邪觀)이라고 합니다.

정관(正觀)은 상이 없음, 차별 없음, 자타 없음, 생멸 없음, 유무 없음, 내외 없음, 둘다 없음, 없는 그것도 없음이 정관입니다. 일체 자성을 벗어나면 사관이며 망(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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