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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경전

승만경(勝鬘經)

by 파장波長 2024. 2. 18.

승만경(鬘經)은 대승경전 중에서 여래장(如來藏)사상을 천명한 불교경전입니다. 경의 내용은 전부 승만부인 자신이 부처님 앞에서 법(法)을 설하면 부처님이 이를 허락하는 형식으로 전개됩니다. 전 15장 중에서 제3 · 7 · 9 · 10장 등은 10행 내외의 극히 짧은 것들이며, 제4 섭수장(攝受章)과 제5 일승장(一乘章)만이 비교적 긴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 중 제2 십수장(十受章)의 10대서원과 제3 삼원장(三願章)의 삼대원(三大願)은 정법(正法)을 체득하는 것에 대한 진실한 의미가 무엇인가를 말하는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각 원(願)마다 ‘오늘부터 보리(菩提)에 이르기까지’로 시작되는 십대서원(十大誓願)은 다음과 같습니다.

① 계(戒)를 범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겠나이다,
② 존장(尊長)에 대하여 교만한 마음을 일으키지 않겠나이다, 
③ 사람에 대하여 성내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겠나이다, 
④ 타인의 재산이나 지위에 대하여 질투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겠나이다, 
⑤ 내가 소유하고 있는 것에 대하여 아끼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겠나이다, 
⑥ 나 자신을 위해서 재산을 모으는 일을 하지 않겠나이다 등의 서원이다.
⑦ 사섭법(四攝法:布施 · 愛語 · 利行 · 同事)에 의하여 사람들에게 이익을 주는 일을 하되,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는 하지 않겠나이다, 
⑧ 고독한 사람, 감금되어 있는 사람, 병마에 시달리는 사람, 재난을 당한 사람, 빈곤한 사람을 보고 그냥 버려두지 않겠나이다, 
⑨ 새나 짐승을 잡아서 파는 사람, 길러서 잡는 사람, 부처의 계에 어긋난 사람을 보면 놓치지 않고 절복시키겠나이다, 
⑩ 정법을 잘 지키고 그것을 잊어버리는 일을 하지 않겠나이다 등의 구체적인 실천법이다.

다시 이것을 요약하면, 

① 정법의 지혜를 구하고, 
② 일체 중생을 위하여 법을 설하며, 
③ 정법을 획득하겠다는 삼대원을 나타내고 있다. 

또한, 이 경에는 일승사상(一乘思想)과 여래장사상이 천명되어 있습니다. 삼승(三乘)의 모든 가르침은 모두 일승에로 귀일(歸一)하며, 번뇌에 둘러싸여 있는 중생의 본성은 청정무구(淸淨無垢)하여 부처와 같은 것이므로 그것을 여래장이라고 합니다.


승만부인의 십대원(十大願)

첫째, 깨달을 때까지 계율을 범하지 않겠습니다.
둘째, 선배와 스승에게 교만하지 않고 공경하겠습니다. 
셋째, 모든 중생에게 성내지 않겠습니다.
넷째, 타인을 질투하거나 소유물을 탐하지 않겠습니다. 
다섯째, 마음과 물질에서 인색한 마음을 내지 않겠습니다. 
여섯째, 나를 위해 재물을 모으지 않고 중생 위해 쓰겠습니다. 
일곱째, 중생을 위해 사섭법을 실천하겠습니다.
여덟째, 고독, 병자, 빈곤 등 고통받는 중생을 구제하겠습니다.
아홉째, 범계자를 깨우치고 불법으로 인도하겠습니다. 
열 번째, 불법 수지하여 잊지 않고 잘 간직하겠습니다.

3가지 서원과 하나의 큰 서원

3가지 서원은
첫째, 중생이 안온하길 힘쓰고 정(正法) 지혜 얻기를 발원
둘째, 정법 지혜 얻어 중생 위해 법을 설하길 발원
셋째, 정법을 섭수(攝受)하고 수호하며 지켜나가길 발원
하나의 큰 서원은
“보살이 세운 수많은 서원은 곧 하나의 큰 대원에 속하는데, 그 것은 ‘섭수정법(攝受正法)’입니다. 즉 정법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이것이야말로 큰 서원입니다.”

승만부인의 십대원(十大願)과 일체 모든 보살의 모든 원은 결국 하나의 큰 서원으로 귀결된다. 그것은 곧 섭수정법, 바른 법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일이다. 정법을 깨닫기를 발원하고, 정법을 지키고 수호해 나가길 발원하며, 바르게 얻은 법을 일체 중생을 위해 설하기를 발원하는것, 그것은 곧 섭수정법(攝受正法)으로 귀결된다.

우리가 세워야 할 가장 큰 발원이 바로 섭수정법이다. 바른 법을 깨닫고, 지키고, 설하길 발원하며, 오로지 바른 법을 섭수하는 서원을 세우는 것, 그것이야말로 일체 모든 수행자의 단 하나의 발원이다. 오로지 이 우주에는 단 하나의, 둘도 아닌 불이법의 이 정법 하나가 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는 둘도 없다. 오로지 이 하나의 법이 있을 뿐.

여래장(如來藏)

세존이시여, 성스러운 진리는 매우 어렵고, 깊고, 미세하여 생각으로는 헤아려 알 수 있는 경지가 아닙니다. 깨달은 사람만이 알 수 있으며, 세간 사람들은 알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래장을 설하기 때문입니다.
생사는 여래장을 의지해 존재합니다. 세간의 언어로는 태어 남이 있고 죽음이 있지만, 여래장에는 태어남과 죽음의 두 경계 가 없습니다. 여래장은 유위의 상을 여의었고, 상주하며, 영원히 변하지 않습니다.
여래장은 법계장(法界藏), 법신장(法身藏), 출세간상상장(出世間上上藏) 자성청정장(自性淸淨章)입니다.
이 청정한 여래장이 객진번뇌와 부수적인 번뇌들에 오염 되어 있어 감히 중생의 생각으로는 알 수 없는 것이 여래의 경지 입니다.
청정심이 번뇌에 오염된다는 것은 참으로 알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오직 부처님만이 진실하게 알고 봅니다.

여래장은 생각으로 헤아려 알 수 있는 경지가 아니다. 불가사의(不可思議) 한 법이다. 세간 사람들은 세간의 언어로 설명하고, 세간의 의식으로 헤아리는 것만 할 수 있을 뿐, 출세간(出世間)의 진실에는 가 닿을 수 없다. 깨달음을 얻기 전까지는 이 법에 대해 ‘오직 모를 뿐’이다. 아직 깨닫지도 못한 사람이 머리로 헤아려 불교 교리를 공부하고, 경전 을 공부하고서는 ‘불교를 좀 알겠다’고 한다면, 그것은 완전한 망상이다. 그것은 참된 불법이 아니며, 참된 여래장이 아니다.

인간의 생사, 이 우주의 생사가 전부 이 한 법, 여래장에 의지해 오고 갈 뿐이다. 그 모든 것들이 여래장이라는 바다 위에서 생겼다가 사라지는 파도일 뿐이다. 이 자리에는 생사가 없다. 무위(無爲)이며, 상주하며, 영원히 변치 않는다. 여래장이 곧 법계(法界)이며, 법신이고, 출세간이며, 자성청정장이다.

그러한 자성청정한 여래장이 번뇌에 왜 오염되는 것일까? 그것은 머리로 헤아려 알 수 있는 경계가 아니다. 중생의 생각으로는 알 수 없는 경계다. 오직 부처님만이 아신다. 머리로 헤아려 알려고 하지 말라. 이 법은 알고 모르고에 있지 않다.


Note : 여래장(如來藏)은 중생의 청정한 본마음으로, 모든 중생의 번뇌속에 내재돼 있는 본래 청정한 여래의 법신을 말한다. 중생에게는 부처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뜻에서 애래가 될 태아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즉 여래장은 번뇌 속에 있어서 번뇌에 더럽혀지지 않고 절대 청정하며 영원히 변함없는 깨달음의 본질을 뜻한다. 이는 성불의 근거가 중생 속에 내재되어 있으며 그 근거가 바로 여래장이라고 것이다. 

여래장은 진여(眞如)라고도 표현되는데 이때 진여는 정의를 내릴 수 없고 이름을 붙일 수도 없는 궁극적인 진실로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뜻한다. 하지만 엄밀하게 말하자면, 여래장은 법신(法身) 또는 무구(無垢) 진여와는 구분되는 유구(有垢) 진여를 가리키는 말이다. 즉 법신은 깨달음 그 자체인 진여가 실현된 상태다. 

무구 진여는 순수한 진여 그 자체를 말하고 유구 진여는 번뇌 등의 불순물에 싸여 있는 상태의 진여를 말한다. 따라서 깨달음을 얻기 이전의 상태를 여래장이라고 하고 깨달은 뒤를 법신이라고 구분해 부른다. 

여래장 사상을 최초로 논한 〈여래장경〉은 “일체중생은 여래장”이라고 선언하며, 번뇌에 둘러싸인 중생 중에 여래지(如來智)와 여래안(如來眼)을 갖춘 여래가 단좌하고 있다고 말한다. 또 여래장 사상이 집성된 〈보성론〉은 여래 법신의 편재, 진여의 무차별성, 동질성의 존재 등을 여래장의 세 가지 의미로 제시하고 있다. 여래장은 현실적으로 번뇌에 싸여 있는 중생도 그 본질에서는 부처님과 같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으며, 이 점에서 여래장 사상은 기본적으로 부처님의 자비의 측면을 계승하는 사상체계라고 볼 수 있다. 

 법상스님 불교경전과 마음공부 글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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