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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입문

불교의 근본 사상 - 삼법인

by 파장波長 2022. 4. 18.

삼법인(三法印)은 참된 불교의 사상

우주 만유를 관통하는 법칙이 연기법이라면 존재의 실상을 나타내는 것이 바로 삼법인이다. 삼법인(三法印)이란 세 가지의 진실한 가르침이란 뜻으로, 도장 인(印)자 를 쓴 것은 도장이 언제 어디서나 동일하듯이 부처님의 가르침의 내용도 언제 어디서나 동일함을 의미하는 것이며 또한 다른 외도(外道)들의 가르침과 확연히 구분되는 가르침이라는 의미도 지니고 있다. 쉽게 말해서 불교임을 나타내는 인감도장이라고 할 수 있다. 삼법인은 모든 것은 변화한다는 제행 무상(諸行無常), 모든 변화하는 것은 영속적인 자아의 실체가 없다는 제법무아(諸法無我), 그리고 모든 변화하는 것은 괴로움을 발생시킨다는 일체개고 (一切皆苦)의 세 가지를 말하며, 일체개고 대신 이 모든 괴로움을 뛰어넘은 열반적정(星樂寂靜)을 넣기도 한다. 혹자는 네 가지 모두를 합하여 사법인 (四法印)이라 부르기도 한다. 

 

 

제행무상(諸行無常)

먼저 제행무상은 세상의 어느 것도 고정 불변하지 않다는, 즉 언제나 한 결같이 항상한 것은 없다는 뜻이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때 가장 먼 저 드러나는 존재의 속성은 바로 모든 것이 변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일반 으로 무상이라는 말에 따르게 되는 회의적이고 감상적인 어감 때문에 어 떤 사람들은 불교를 회의적이고 감상적인 종교로 규정하기도 한다. 물론 무 상의 한 면은 파괴와 소멸을 의미하고 있다. 세상의 어떤 존재도 이것을 면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러나 그 반대편에 생성과 발전이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만일 어느 한 면만을 강조한다면 허무주의나 낙관주지게 된다. 그러나 무상의 가르침은 이 모두를 있는 그대로 볼 것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천 년, 만 년 살 것처럼 생각하고 있다. 권세와 명예, 그리고 재산 역시 영속할 것으로 착각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주위에서 경험하거나 내노라 하는 세도가와 재력가의 몰락을 경험하면서 모든 것이 소멸할 수밖에 없다는 평범한 진리 앞에 설 때 겸허하게 종교적 심성을 찾게 되는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차분히 모든 사물을 되돌아보면 지금까지 자신을 유지해온 모든 생각이 헛된 욕망에 사로잡힌 잘못된 생각에 근거하였음을 알게 되곤 한다. 이 잘못된 생각을 일러 전도몽상(顚倒夢想)이라고 하는 것이다. 사물을 무상하다고 보지 않고 영속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이 잘못된 생각을 버릴 때 세상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고, 그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무상은 비관론도 허무주의도 아닌 존재하고 있는 것들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바르게 보게 하는 올바른 가르침인 것이다.

 

제법무아(諸法無我)

두 번째는 모든 변화하는 것에는 영속적인 자아의 실체(實體)가 없다는 무아의 가르침 바로 그것이다. 모든 것은 항상 변화할 뿐만이 아니라 존재의 생성과 소멸은 그 조건에 말미암은 것이라는 말이다. 즉, 인연에 따라 생긴 것은 인연이 다하면 흩어지기 때문에 상주불변하는 자아나 실체는 없다는 말인데 만약 그러한 자아(自我)가 있다면 생각도, 움직임도 존재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항상 불변하기 위해서는 그 존재가 영원 불변의 단단한 석고상 같은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고정 불변의 자아나 존재는 이렇게도 되었으면, 또는 이렇게 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램도 가질 수 없는 것이다. 만약 인간이 고정 불변의 자아라면 인간은 자유의지를 박탈당하고 말것이다.

결국 이 무아의 가르침도 존재의 실상에 대한 있는 그대로의 관찰을 통해 얻어진 진리이며, 동시에 자신의 불만족스러운 현상태를 벗어날 수 있는 힘 과 의지를 준다는 것에 방점이 놓이는 것이다.

무아의 가르침은 우리로 하여금 자기 중심적 사고와 아집을 버릴 것을 요구하고 있다. 자신을 포함한 어떤한 존재도 영속적인 것은 없기 때문에 사유와 사물 역시 영원토록 내 소유인 것은 없다. 따라서 그 어느 것도 내 것 이라고 집착할 것이 없어지게 되는 것이다. 아집과 소유욕이 사라지면 관계 속에서 유지되는 모든 존재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게 되는데, 서로 서로가 더불어 함께 사는 삼라만상의 모습에 눈을 뜨면 모든 적대적인 관계가 사라 지고 진정한 평화가 구현되는 것이다.

일체개고(一切皆苦)

세 번째는 모든 변화하는 것은 괴로움이라는 일체개고(一切皆苦)이다. 말하자면 무상하기 때문에 일체의 모든 것이 고(苦)라고 느껴지는 것을 말한다. “세상사에는 희노애락이 있어서 괴로움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닌데, 왜 모든 것을 고통이라고 하는 것일까?”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고통이라고 하는 것은 앞서서 설명한 바처럼 현실의 기쁨과 즐거 움은 무상하여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며 결국에는 소멸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맞이하게 되어 있는데, 소멸되고 마는 그것을 소유하려고 집착하기 때문에 고통을 불러일으키게 된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모든 것은 무상하기 때문에 고정 불변의 실체를 지닐 수 없 는데도 불구하고 중생은 언제나 고정시키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즉,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뜻대로 일정한 상태를 유지하기를 바라며 항 상 풍족하고 항상 즐겁게 지내기를 기대한다. 인간의 이처럼 불타는 욕망을 갈애(愛)라고 하는데, 바로 이 갈애로 인해 무상한 현실과 무아라는 존재 의 실상을 망각한 채 집착하는 대상이 항상하기를 바라고, 그 욕망이 이루 어지지 않기 때문에 고통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 불타는 욕망을 끊어버고 무상의 진리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수행자에게는 고통이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열반적정(梁寂靜)

마지막은 열반적정이다. 열반은 진리의 구현 바로 그 자체를 말한다. 무상과 무아의 진리를 완전히 구현하여 모든 번뇌와 고통의 불을 불어 끈 사태가 바로 열반인 것이다. 무상한 현실을 거슬러서 무상과 무아의 진리를 했다으면 열반에 도달하게 되는 것으로서 열반은 모든 번뇌와 욕망, 대립과 고통이 사라진 고요한 평화의 상태를 표현한 것이다. 

따라서 불자들은 삼법인의 가르침을 자신의 생활 속에 구현하기 위하여 항상 노력해야 할 것이며, 그러할 때만이 최상의 평화와 자유인 열반을 향해 한걸음씩 다가서는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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