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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입문

불교란 무엇인가? ①

by 파장波長 2022. 4. 28.

종교란 무엇인가?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다양한 문화와 민족이 어울려 살고 있습니다. 그 결과 민족과 문화에 특성에 따라 다양한 종교가 발생했습니다. 여기서 많은 종교를 모두 열거할 수 없고, 종교의 일반적인 정의와 불교에서 말하는 종교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종교(宗敎)’ 란 말 그대로 최고의 가르침 즉, 궁극적인 가르침입니다.

일반적으로 종교는 ①교주, ②교리, ③교도가 있어야 합니다. 종교를 찾아 믿는 것은 중요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어렵고 힘든 일이 생기면 종교나 어떤 절대적인 힘에 의지하려고 합니다. 우리 주변에 잘못된 교주와 교리에 빠져 패가망신하는 이들을 자주 보게 됩니다. 그것은 잘못된 종교를 믿고 따랐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자신에게 닥친 문제를 어떤 절대적인 존재에 의지하여 해결하려고 합니다. 산, 해, 달, 하늘 심지 태풍에도 힘이 있다고 믿어서 예배의 대상으로 삼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로 인해 인류 역사에서 신이라는 개념이 생겨났습니다. 아무도 본 사람이 없는 신이 인류를 다스린다고 믿기도 합니다. 이 신을 절대적으로 믿는 가르침이 유신론(有神論)적 종교입니다. 유신론적 종교에서 인간은 신의 종이기에 절대적인 복종을 통해서만 인간의 가치를 구연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인류 역사와 동시에 신을 절대적으로 믿는 종교를 부정하고 ‘인간이 무엇이며 죽은 뒤 어디로 가는가’ 라는 물음에 대해 인생과 우주의 궁극적인 해답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나타났습니다. 그 결과 인류에게 크게 두 가지 흐름의 종교가 정립하였다. 하나는, 신의 종교이고, 다른 하나는 진리를 믿고 행하는 종교입니다.

신을 믿는 종교는 세계가 신의 창조물이고 인간 또한 그러하다고 합니다. 신의 종교는 대체로 서양의 종교관입니다. 서양 종교는 절대적인 신을 기본으로 합니다. 그러나 서양은 교통과 통신 즉, 과학문명 발달로 다른 세계와 접하면서 자기중심적인 틀에서 벗어나 종교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절대자에 대한 믿음은 신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진리의 세계 그 자체에도 있음을 알게 되어, 생각의 편협성을 인정하고 마침내 다양한 종교를 인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불교에 입문하는 사람은 이러한 서양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진리를 믿고 행하는 종교는 인류 역사에 불교 하나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교의 가치는 인류 역사에 더욱 빛나는 것입니다. 진리를 모르고 사는 세상은 고달프지만 진리를 알고 행하는 삶은 자유롭고 편안합니다. 불교를 처음 접한 사람들을 불교의 교리와 사상이 어렵더라도 불교의 진리야말로 나를 바꾸고 세계를 변화시키는 원동력임을 알고 열심히 정진해 나가면 마침내 참된 삶과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깨달음의 진리

불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행하는 종교입니다. 그러므로 불교의 교주는 부처님입니다. ‘불교’ 에서 불(佛) 이란 인도의 산스크리트어 ‘붓다(Buddha)’ 의 음사(音寫)로 ‘깨달은 사람’을 말합니다. 무엇에 대한 깨달음인가? 바로 진리에 대한 깨달음입니다. 

불교에서는 모든 중생이 진리를 깨치면 부처님이 될 수 있다고 합니다. 진리를 깨치면 신조차 초월할 수 있습니다. 불교에도 많은 신이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사천왕(四天王)입니다. 사천왕은 하늘에 산다고 합니다. 이들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너무 감격한 나머지 부초님께 귀의하여 영원토록 정법을 보호하겠다는 원력을 세우고 도량을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불교의 진리는 하늘의 신을 감동시킬 뿐만 아니라 그 경지를 뛰어넘는 가장 수승(隨乘)한 가르침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당당하게 사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그 삶의 결과가 자못 다름니다. 불교의 진리는 우리에게 당당하게 살 수 있게 하는 지혜를 줍니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완성하겠다고 하는 정신으로 굳게 결심하고 그 믿음으로 사는 사람에게 그 목표는 더욱 가까워질 것이고, ‘난 안돼’ 하면서 소극적으로 사는 사람에게 그만큼 멀어질 것입니다. 그래서 당당하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바른 진리를 알아야 합니다. 또 그 진리를 알고 행하며 사는 것은 얼마나 자유롭고 행복한 인생이겠습니까? 불교는 바로 이 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모르고 사는 인생

우리의 삶은 어떤 것일까? 우리는 인생을 궁금해 하며 해답을 찾아 헤매다 일생을 마칩니다. 한평생을 살면서 목숨 걸고 그 해답을 찾는 것은 아름다운 일일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나고 늙고 병들어 죽는 생로병사(生老病死)의 일대사 인연을 해결하는 과정이라고 말합니다. 말은 쉽게 할 수 있지만 태어난다는 일만 생각해도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든 일입니까. 우리는 살아가면서 겪는 작은 상처 하나에도 사느니, 못 사느니 합니다. 그리고 큰 병에 시달리든가 하면, 평생을 함께 의지하던 이의 이별과 죽음에 부딪쳤을 때 오는 고통과 마음의 아픔은 눈물로도 감당할 수 없습니다. 돌아보면 인생의 많은 시간은 즐거움보다 괴로움과 고통으로 얼룩진 나날입니다. 그러면서도 왜 사는지, 이 길을 왜 가야 하고 그 끝에 무엇이 있는지, 끝도 모를 인생을 그저 안개 낀 다리를 거너는 사람과 같이 어림짐작으로 살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인생이 무엇인지 모르면서 인생을 다 알고 있는 듯이 웃고 즐기며 살고 있습니다. 이렇게 인생을 모르면서 그저 살아가기만 하는 인생 역정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닐 것입니다. 누가 말했던가요 인생은 모르면서 사는 것이라고...

모르고 사는 삶을 알고 살아가는 삶으로 바꾸어 주는 가르침이 바로 불교입니다. 죄를 지어도 그것이 죄인 줄 모르는 사람은 계속 그 행위를 합니다. 하지만 죄를 저지르면 벌을 받고 그것이 나와 남에게 아픔을 준다는 사실을 알면 다시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불교는 우리가 어떻게 태어났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해답을 주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조용한 광야를 걷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성난 코끼리가 달려왔습니다. 그는 코끼리를 피하기 위해 마구 달리기 시작했고. 한참 달리다 보니, 몸을 피할 작은 우물이 있어 급한 나머지 그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우물에는 칡넝쿨이 있어 그것을 타고 밑으로 한참 내려 가다가 정신을 차리고 아래를 내려다보니 밑에는 다시 무서운 독사가 입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위를 쳐다보니 코끼라가 아직도 우물 밖에서 성난 표정으로 서 있었습니다. 그는 할 수 없이 칡넝쿨에만 매달려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달그락달그락 소리가 나서 주위를 살펴보니 위에서 흰 쥐와 검은 쥐가 번갈아 가며 칡넝쿨을 갉아먹고 있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우물 중간에서는 작은 뱀들이 왔다 갔다 하면서 사람을 노리고 있었습니다.

온몸에 땀이 날 정도로 두려움에 떨며 칡넝쿨을 잡고 위만 쳐다보고 있는데 마침 어디선가 벌 다섯 마리가 나타나 칡넝쿨에 집을 지었습니다. 그러면서 꿀을 한 방울씩 떨어뜨려 주는데 그는 꿀맛에 취해 왜 많은 꿀을 떨어뜨려 주지 않나 하는 생각에 빠져 자신의 위급한 상황을 잊고 말았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코끼리는 무상하게 흘러가는 세월을 의미하고, 칡넝쿨은 생명, 검은 쥐와 흰 쥐는 밤과 낮을 의미합니다. 작은 뱀들은 가끔씩 몸이 아픈 것이고, 독사는 죽음을 의미하며, 벌 다섯 마리는 인간의 오욕락(五慾樂)을 말합니다.

오욕(五慾)이란?  ①재물을 대한 욕망인 재물욕(財物慾), ②이성에 대한 욕망인 색욕(色慾), ③먹을 것에 대한 탐욕인 식욕(食慾), ④명예에 대한 욕망인 명예욕(名譽慾), ⑤편안함을 추구하는 수면욕(睡眠慾)과 같이 자신의 처지를 모르는 채 탐욕의 꿀맛에 취해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어리석은 인생입니다.

혹자는 욕망이 없다면 인생의 의미가 없지 않으냐고 할 것입니다. 인생에서 욕망으로 인해 성취하는 것보다 욕망 때문에 잃는 것이 더 많습니다. 눈앞의 이익에 집착하는 욕심은 지혜를 흐리게 합니다. 이러한 장애를 없애고 참된 지혜를 발현토록 해야 합니다.

자신이 변하면 세계가 변한다.

우리는 때때로 만원 버스나 지하철에서 “왜 사람이 이렇게 많냐” 고 짜증내는 사람을 봅니다. 그 사람은 자신이 그곳에 있어 더 복잡해졌음을 간과한 것입니다. 그러면 불교는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이해하는가요?

지옥에 있는 사람은 자신만을 위해 삽니다. 먹을 것이 있으면 자기만 먹으려고 애씁니다. 하지만 지옥의 숟가락은 너무 길어 자기 것으로 제 입에 넣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지옥에 있는 사람들은 언제나 상대를 원망하면서 굶주리고 삽니다. 눈앞에 먹을 것을 두고도 말입니다. 그러나 극락에 있는 사람은 이웃을 먼저 생각하며 삽니다. 그래서 먹을 때는 서로서로 옆 사람에게 먹여주면서 산다고 합니다. 이곳 사람은 지옥에 있는 사람과 다르게 서로 먹여 주며 언제나 화합하고 배부르게 살아갑니다.

이것은 지옥과 극락에 대한 비유이지만 오늘날 우리들의 삶을 돌아볼 때 귀중한 교훈이 됩니다. 여기서 자신만을 위해 탐욕스럽게 사는 사람과 이웃과 더불어 생각하는 사람의 차이가 대조적으로 나타납니다. 이처럼 우리가 자기 중심적인 삶에서 벗어나 이웃과 함께 하는 삶으로 전환할 때 괴로움의 세계가 자유와 평안의 세계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대립과 갈등, 고통으로 얼룩진 세계를 바꿔나가는 원동력은 세계의 구성원인 인간 자신입니다. 자신의 지혜와 힘으로 세계의 변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불교는 믿음과 수행을 겸비한 종교

불교가 어떤 종교인지 단적으로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크게 믿음과 수행을 겸비한 종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수행과 믿음을 겸비한 종교는 절대자에 대한 믿음만 강조하는 것이 아닙니다. 불교는 수행체계를 통해 인간의 정신과 삶을 회기적으로 전환시키는 가르침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잘못된 행동을 스스로 깨닫고 바꾸게 하는 종교입니다. 어린 시절 사소한 물건에 집착하여 그것만이 최고라 고집하는 것을, 어른이 되어 그때를 회고하면 참으로 부끄럽고 부질없는 짓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도 그 시절처럼 ‘왜 그랬는지?’에 대해 조금도 생각하지 않으며 또 다른 어떤 것에 대해 집착하면서 살아갑니다. 이는 바로 우리의 탐욕과 어리석음 때문입니다. 현실에 대한 바른 이해를 통해 나쁜 습성을 고쳐 나가는 것이 수행입니다.

수행이란? 혹독한 시련을 통해 자신을 단련하는 고행과는 다른 것입니다. 수행은 진리를 깨치기 위해 탐욕에 찌든 자신의 잘못된 습관을 좋은 습성으로 바꾸어 마침내 깨닫는 과정입니다.  인도에서는 소승 대승, 중국에서는 다양한 정파와 선사상 등으로 전개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사람의 근기에 따라 다양한 수행체계를 형성하면서 수많은 민간신앙을 불교의 세계로 받아 들였습니다. 이는 불교가 그만큼 다양한 사상과 사람을 섭수하는 큰 사상체계를 갖추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지혜의 길

바른 생각에서 지혜가 나옵니다. 즉 자기 중심의 생각에서 자신과 전체를 통찰할 때 지혜가 나옵니다. 자기중심의 생각에서 전체를 보는 안목으로 생각을 넓힐 때 지혜가 나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지혜의 종교라고도 하는데,

첫째, 무명(無明)에서 벗어나라고 한다. 이것은 어리석은 생각을 버리라는 말과 같다. 비록 원수 사이라도 입장을 바꾸어 생각하거나 욕심을 버리면 원수와 함께 차 한잔 나눌 수 있는 여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대립과 갈등의 원인은 자신의 욕망 때문이다. 화가 났을 때, 자기 마음을 잘 관찰해 보면 온갖 다툼과 화의 원인이 다른 사람에게도 있지만, 자신에게도 있음을 알게 된다. 즉 상대가 자신이 바라는 것만큼 해주질 않았거나 자기에게 불이익을 주었을 때 화가 나기도 하는데 그것 또한 자기 욕심에서 나온 것이다. 시간이 흘러 그것이 다 부질없는 것이 되었을 때 돌아보면 당시의 화가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 알 수 있다. 이런 욕심에 집착하여 진리를 보지 못하게 막는 무명이다. 이 무명에서 벗어나 밝은 지혜를 구해야 한다.

둘째, 자신의 무지(無知)가 모든 불행과 비극의 시초임을 알았으면 남을 나처럼만 생각해주라는 것이다. 우리는 주위에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뒤에 어떤 결과가 오지 제대로 생각하지도 않고 행동하는 것을 자주 본다. 지혜로운 사람은 행동에 앞서 그 결과를 생각하고 어리석은 생각에 앞어서 행동부터 한다. 그 잘못된 행동에서 고통과 아픔이 생긴다. 따라서 눈앞의 이익에 급급한 행동과 욕망으로부터 벗어나면 지금까지 보지 못하였던 세계가 열린다. 불교는 바로 이러한 세계를 열어 주며 그 길을 함께 가는 가르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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