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붓다입문

역경을 이겨내는 불자의 자세∴

by 파장波長 2022. 4. 28.

세상을 살다 보면 자기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만나기도 합니다. 그 때 중생은 어쩔 수 없이 불·보살님의 가피력에 의지하게 됩니다. 불·보살의 가피는 일체중생을 구제하겠다는 원력을 바탕으로 수많은 생을 두고 자신을 희생해온 공덕으로 성취된 것이기 때문에 중생이 아무리 절망스러운 상황에서도 모두를 구원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지옥중생조차 모두 구원하겠다는 지장보살의 서원이 있고, 자신의 이름을 한번이라도 부르면 모두 서방정토 극락세계에 태어나게 하겠다는 아미타부처님의 서원도 있습니다. 항상 자애로운 어머니 같은 모습으로 중생을 위로하는 관세음보살과 병고에 시달리는 이들을 치유하는 약사여래도 있습니다. 이러한 제불보살님의 가피력에 의지하여 중생 하나하나는 스스로가 처한 절망적인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의 어려움을 이겨내는 것에 끝난다면 불교인이 세상사람들과 별다른 차이점이 없습니다. 그래서 바른 불교인은 불·보살님의 본원가피력에 힘입어 스스로가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듯이 스스로 중생구제의 큰 서원 을 세워 일체중생에게 그 공덕을 회향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모든 어려움과 역경을 자기 탓이 아닌 남의 탓으로 여기며 남을 원망하고 세상을 한탄합니다. 그러나 불교인은 우리 몸에 나타나는 재난이나 환경이 모두 내 마음의 상태를 반영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며, 고난을 당하면 무엇 보다도 자기 자신이 지은 허물임을 알고 깊이 참회해야 합니다. 그 허물은 금생의 것일 수도 있고 전생의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고난을 당해서도 절망에 빠질 필요가 없습니다. 역경은 과거에 지은 잘못의 과보가 현재에 나타남으로서 소멸되는 것이니 잠복 중에 있던 나쁜 원인이 소멸되면 다행스러운 일이며 새로 운 희망이 싹틀 전조가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불자들은 고난 앞에서도 오히려 감사하고 불평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용기를 잃지 않으며 고난을 극복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지은 바 원인이 있어서 고난이 나타나는 것처럼, 희망은 오늘 새롭게 씨를 뿌림으로서 커지는 것이므로 고난을 당해서도 새 희망을 일으키고 용맹정진하여 새로운 전환의 계기를 만드는 것입니다. 불자들은 고난과 역경을 당해서도 좌절하지 않고 당당하게 일어서 끊임없이 깨달음의 마음을 일으켜 운명 그 자체를 바꿔 나가야 합니다. 운명은 고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보왕삼매론》 - 불자의 마음 자세

몸에 병 없기를 바라지 말라. 몸에 병이 없으면 탐욕이 생기기 쉽나니, 그래서 성현이 말씀하시되 ‘병고로써 양약을 삼으라’ 하셨느니라.

세상살이에 곤란함이 없기를 바라지 말라. 세상살이 곤란함이 없으면 업신여기는 마음과 사치한 마음이 생기 나니, 그래서 성현이 말씀하시되 '근심과 곤란으로써 세 상을 살아가라’ 하셨느니라.

공부하는데 마음에 장애 없기를 바라지 말라. 마음에 장애가 없으면 배우는 것이 넘치게 되나니, 그래서 성현 이 말씀하시되 '장애 속에서 해탈을 얻으라’ 하셨느니라.

수행하는데 마(魔) 없기를 바라지 말라. 수행하는데 이 마가 없으면 서원이 굳건해지지 못하나니, 그래서 성현이 말씀하시되 '모든 마군을 수행의 벗으로 삼으라’ 하셨느니라.

일을 도모하되 쉽게 되기를 바라지 말라. 일이 쉽게 | 되면 뜻이 경솔해지니, 그래서 성현이 말씀하시되 ‘여러 겁을 겪어서 일을 성취하라’ 하셨느니라.

친구를 사귀되 내가 이롭기를 바라지 말라. 내가 이롭고자 하면 의리를 상하게 되나니, 그래서 성현이 말씀하시되 ‘순결로써 사귐을 길게 하라' 하셨느니라.

남이 내 뜻대로 순종해 주기를 바라지 말라. 남이 내 뜻대로 순종해 주면 마음이 스스로 교만해 지나니, 그래 성현이 말씀하시되 ‘내 뜻에 맞지 않는 사람들로써 원림(園林)을 삼으라’ 하셨느니라. 

공덕을 베풀면 과보를 바라지 말라. 과보를 바라면 ‘도덕 베푸는 것을 헌신처럼 버리라’ 하셨느니라. 

이익을 분에 넘치게 바라지 말라. 이익이 분에 넘치면 어리석은 마음이 생기기 쉽나니, 그래서 성현이 말씀하시되 ‘적은 이익으로써 부자가 되라’ 하셨느니라.

억울함을 당해서 밝히려고 하지 말라. 억울함을 밝히면 원망하는 마음을 돕게 되나니, 그래서 성현이 말씀하시되 ‘억울함을 당하는 것으로써 수행하는 문을 삼으라’ 하셨느니라.

이와 같이 막히는 데서 도리어 통하는 것이요, 행함을 구하는 것이 도리어 막히는 것이니, 이래서 부처님께서는 저 장애 가운데서 보리도를 얻으셨느니라. 저 앙굴마 라와 제바달다의 무리가 모두 반역의 짓을 했지만 우리 부처님께서는 모두 수기를 주셔서 성불하게 하셨으니, 어찌 저의 거슬리는 것이 나를 순종함이 아니며 제가 방 해한 것이 오히려 나를 성취하게 함이 아니리요. 요즘 세상에 도를 배우는 사람들이 만일 먼저 역경에서 견디어 보지 못하면 장애에 부디칠 때 능히 이겨내지 못해서 법왕의 큰 보배를 잃어버리게 되나니, 이 어찌 슬프지 아니하랴. 

병자를 위하여 - 구병시식(救病施食) 

구병시식은 병든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사찰에서 행하는 일종의 재례의식입니다. 시식이란 업력에 의하여 고통받는 영가(영혼)들에게 법식을 베풀어 천도하는 의식을 말합니다.

불교에서는 우리 몸에 발생하는 병의 원인을 크게 두 가지로 보는데, 하나는 현세실조병 (現世失調病)이라 하여 음식이나 몸과 마음가즘을 조절하지 못해서 생기는 병이도,두번째는 서세 업병(先世行業病)이라 하여 과거에 저지른 온갖 악업의 것 현세의 질병이라는 과보로 나타나는 것을 말합니다. 특히 누구가를 몹시 괴롭히거나 미워할 경우 그 업의 힘이 잠복해 있다가 현세에 자기 몸의 병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몸이 병들었으 때 육체적인 원인을 찾아 물리적으로 다스리는 현대의학적 처방도 당장은 중요하지만, 자신의 업에 대한 참회와 더불어 주변의 모든 원한관계를 해소하고 고통받는 중생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그 공덕으로 병고의 원인을 해소하는 것이 근본적인 대책 이라 하겠습니다. 그래서 구병시식은 육체와 정신이 따로 떨어져 있는 별개의 실체가 아니라 서로 유기적인 연관관계에 있다는 연기론적 사고를 바탕으로 복덕을 지어 병고와 액운을 이겨내려는 데에 본래 의미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아난존자에 의해 비롯된 불교의 시식은 배고픈 귀신들을 법식을 통해 굶주림을 채우고 불법에 귀의하여 법문을 듣고 하루 속히 안락국에 태어나라는 천도 의식이지, 굿이나 귀신을 겁주어 쫓아내려는 미신적 행위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을 만족시켜 원한의 마음을 풀게 하는데 있습니다.

구병시식의 절차는 먼저 삼귀의를 하고, 대자대비한 관세음 보살께 귀의하여 그의 위신력으로 책주귀신영가를 천도합니다.《천수경》을 외우고 멸악취진언을 하여 악취로부터 아귀들을 불러내어 병자의 내력을 유치(由致)로 설명합니다. 설단에는 말(馬)자와 은전(金銀錢) 각 일곱 글자와 남귀여귀(男鬼女鬼) 2개를 써서 붙이고 책주귀신영가 위패를 모신 다음, 일곱 접시 밥과 , 그리고 삼색 과일 등 제반 음식을 차려놓고 간절하 게 시식을 베푼 다음 문 밖에 나가서 봉송합니다.

영혼에게 드리는 향화청가영(香花歌詠)을 살펴보면,

빚진 사람 원수가 되어 사랑하고 미워하는 마음 그치지 못해, 그 지금 시식을 베풀어 법식을 제공하니  무릇 깨달아 원한을 푸소서.' 로 되어 있어 구병시식이 전생의 빚을 갚고 원한을 풀어 현재의 병고를 이겨내는 의식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불자들이 지켜야 할 것은 시식, 특히 구병시식은 일반불자들이 행할 수 있는 의식이 아니라, 수행 공덕이 높으신 스님에 의하여 진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붓다입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불교의 역사⑤ 한국  (0) 2022.04.29
불교의 장례와 영가천도 의례 ∴  (0) 2022.04.28
불교의 명절의례∴  (0) 2022.04.28
불교란 무엇인가? ①  (0) 2022.04.28
불교란 무엇인가? ②  (0) 2022.04.28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