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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입문

불교의 역사② 대승불교

by 파장波長 2022. 4. 29.

부파불교(部派佛敎)가 이룩한 아비달마 교학은 아함(阿含)의 교설을 체계 화하는데 큰 기여를 했지만, 한편으로는 석존(釋尊)의 교설을 아함에만 한정시키고, 번쇄한 훈고학적 해석으로 인해 불교를 더욱 난해하고 무미건조하게 만들었습니다. 또한 불교의 궁극적 목적을 무위열반(無爲涅樂)에 있는 것으로 해석하고, 이상적인 인간상은 이러한 열반을 증득하는 아라한(阿羅漢)으로 상정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이상적 인간상은 전문적으로 교학을 연구하고 철저하게 수행하는 출가승(出家僧)이 아니고는 성취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출가자들은 전문적 학습을 위해 승원에 거주하며 대중들과 멀어졌고, 난해한 교학은 대중에게 큰 장벽이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부파불교는 자리(自利) 위주의 불교, 출가주의의 불교, 배우는 입장의 불교가 된 것입니다. 이제 출가승이 아니고는 불교를 제대로 행하기가 어렵게 된 것입니다.

부파불교가 이렇게 대중으로부터 멀어지고 있을 때 교단 한편에서 ‘부처님의 진정한 가르침으로 돌아가자'는 ❻사상운동(思想運動)이 일어났습니다. 이들은 아라한을 지향하여 자신만의 열반을 구하는 부파불교의 입장을 소승(Hinayāna, 小乘)이라고 비판하고, 중생을 구제하면서 깨달음을 구하는 자리이타(自利利他)의 인간상을 이상형으로 내세웠습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대승(Mahāyāna, 大乘)이라고 부르고, 이상적 인간형을 보살(Bodhisattva, 菩薩) 이라고 불렀습니다.

보살(Bodhisattva, 菩薩)은 부처님의 전생과 미래불인 미륵보살(彌勒菩薩) 에만 해당되는 용어였습니다. 그러나 불전문학(佛典文學)이 성립하면서, 불탑을 중심으로 부처님의 생애를 설명하던 사람들에게서 성불(成佛)을 목적으로 수행하고 남을 위해 헌신한다면, 나 자신이 바로 보살이라는 자각이 싹트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불교에 있어서 혁명적인 전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파불교 시대에 수행자가 지향하는 최고의 경지는 아라한(arhat, 阿羅漢)이었습니다. 성불 이란 이룰 수 없는 것이라 여겨졌고 자신만을 위한 수행이 주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대승은 불성(佛性)의 자각을 통해 성립되었습니다. 그래서 대승불교는 배우는 입장의 불교에서 가르치는 입장의 불교로, 자리(自利) 위주의 불교에서 이타행(利他行) 중심의 불교로, 출가 중심의 불교에서 출가와 재가를 일관하 는 불교로 전환하였고 이 가운데 가장 주목할 것은 이타행과 성불의 서원입니다. 대승불교는 보리심을 내어 끊임없는 이타행을 함으로써 성불에 이르름을 목표로 합니다. 즉, 이타행이 수행의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대승불교의 원류는 부파불교의 대중부로부터 발생했다는 설과 불전문학과 찬불승(讚佛僧) 계통에서 발생했다는 설, 그리고 불탑신앙에서 발생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그런데 대승보살을 처음 주창한 사람들은 불탑주변의 비승비속(非僧非俗)의 재가자들이었으며, 시간이 지나면서 출가보살과 동진보살이 등장하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불탑을 중심으로 발생한 불전문학계통과 번쇄한 교학중심의 부파불교에 반대하던 일부의 출가자들이 중심이 되어 이 운동을 일으킨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은 새로운 경전을 저작하고 자신들의 불교사상을 전파하였습니다. ⟪반야경⟫ 계통의 경전과 ⟪화엄경⟫, ⟪법화경⟫, ⟪정토경⟫ 계통의 경전이 대표적 대승경전입니다. 이들 경전은 성립이 모호하고 어디에서 누구에 의해 결집되었는지도 확실하지 않습니다. 부파불교에서는 이러한 경전들이 부처님의 말씀(佛說)이 아니라고 배격했지만 대승불교는 급속도로 퍼져 나갔고, 경전 또한 계속하여 줄기차게 성립되고 유통되었습니다. 대승보살들에게는 반야의 지혜와 방편을 갖는 것이 중요시 되었고, 원대한 서원의 갑옷을 입고 공(空)의 입장에서 끊임없이 이타행을 하도록 스스로 맹세한 것입니다.

그러나 대승불교(Mahāyāna)는 모든 사람에게 이와 같은 끊임없는 이타행을 요구하지는 않았습니다. 소승의 수행도 어려운 것이었지만 공(空)의 입장에서 세세생생동안 이타행을 서원하고 실천하는 것 역시 범부에게는 어려운 일이 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범부들에게는 구제론적 입장의 불교가 필요했습니다. 수행과 서원에 의한 실천의 길이 어려운 실천의 길 즉 난행도(難行道)였다면, 쉬운 실천과 구원의 길 즉 이행도(易行道)가 설해졌으니 이것이 바로 아미타불을 신앙하는 정토계의 경전이다. 

불교는 모든 것을 스스로 지어 스스로 받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인과는 엄정한 것이라고 설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중생의 입장에서 자기 구원은 요원한 것으로 느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단지 죽기 전에 부처님의 이름을 열 번 부르는 것만으로 극락왕생을 약속하는 부처님에 대한 신앙이 출현하였으니 이것이 곧 아미타불 신앙이다. 이것은 중생이 아미타불의 원대한 원력에 힘입어 구제되는 것으로 자력수행(自力修行)의 종교인 불교에 타력이행(他力易行)의 구제불이 등장하게 된 예입니다. 이러한 타력적 신앙의 등장은 불교가 대중 속에 뿌리내리는 데 큰 힘이 되었습니다. 

재가보살을 중심으로 일어난 대승불교는 중기로 접어들면서 다시 출가보살 중심으로 변화되고 출가위주의 교단으로 변모합니다. 교학에 대한 연구도 심화되어 아비달마 교학에 못지 않은 교학의 연구가 이루어졌습니다. 이 때를 대표하는 두 사상이 바로 ❼용수보살(龍樹菩薩)의 ❽중관사상(中觀思想)과 ❾무착보살(無着菩薩)에 의해 성립된 ❿유식사상(唯識思想)입니다.

 


Note : 
❻ 이것을 대승불교(mahāyāna, 大乘佛敎)운동이라 부르는데, 일반대중의 적극적인 참여와 혁신적인 出家僧(大乘部 系統)의 지도층이 그 추진세력을 형성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❼ 용수보살(Nagarjuna, 龍樹菩薩), A.D150 - 250 
❽ 중관사상(madhyamika, 中觀思想)은 아비달마 불교의 실유(實有) 사상을 타파하고 중도(中道)의 진리를 알리고 있다. 공(Sunya, 空)사상도 이에 포함된다. 용수(Nagarjuna, 龍樹, A.D. 150 - 250)와 제바(Aryadeva, 提婆, A.D. 170 - 270)에 의해 성립되었다. 
❾ 무착보살(Asanga, 無着菩薩), A.D. 310 - 390 
❿ 유식사상(vijñāna-vadin, 唯識思想)은 불교의 심리사상(心理思想)을 대승적인 심리사상으로 혁신시킨 사상으로, 용수(龍樹)의 공(空)사상이 후세에 지나치게 공허한 사상으도 우쳐가는 것을 바로 잡아 주고자 나타난 사상이다. 미륵(Maitreyanatha, 彌勒, A.D 350), 무착(Asanga, 無着, A.D. 310 - 390), 세친(Vasubandhu, 世親, A.D. 320)  등에 의해서 성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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