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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교리

한국불교의 오늘과 내일

by 파장波長 2022. 5. 3.

한국불교 1600년의 역사는 결코 순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조선 500년의 억불시대와 일제강점기라는 기나긴 암흑기는 유구한 한국불교의 맥을 끊고 불교의 자주성을 앗아갔습니다. 그러나 1945년 해방 이래 불교계는 그러한 시련을 딛고 불교의 정법화, 대중화, 현대화에 힘써왔습니다. 그럼에도 우리 불교계에는 안팎으로 해결해야 할 수많은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우선 안으로는 승속을 통틀어 불자 본연의 자세를 잘 지켜가고 있는지 반성해야 할 것이며, 밖으로는 급속히 변모해 가는 현대사회의 흐름 속에서 불교의 참뜻을 얼마나 잘 구현해내고 있는지를 되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화순 운주사 2016

불교계 내부를 반성함에는 무엇보다 먼저 그 잣대로 삼아야 할 것이 부처님의 계정혜 삼학의 가르침입니다. 승속(僧俗)이 공히 지켜야 할 본분을 잘 지켜가고 있는지는 부처님이 제시한 계율에 의거해야만 합니다. 계율이라는 바른 생활 토대가 없이 바른 지혜를 펴는 삶은 있을 수 없기 때 문입니다. 대소승의 계율을 충분히 숙지하고 활용하여 향락화, 퇴폐화가 극으로 치닫는 오늘의 사회에 참다운 불자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이 사회를 정화해 가야 할 것입니다. 다음 정(定)과 혜(慧)의 문제입니다. 바른 선정 없이는 바른 지혜가 나올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선정은 깨달음을 추구 하는 불교적 삶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그러한 선을 교종과는 다른 하나의 종파로 발전시킴으로써 많은 폐단을 낳기도 했습니다. 현재 우리의 조계종이라는 명칭도 그러한 맥락에서 나온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이러한 명칭을 당위적으로 사용할 것이 아니라 그 내용을 한번쯤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역대 큰스님들은 지혜가 부족하며 캄캄한 선정에 안주하는 암증선사(證禪師)와 문자의 바다 속에서 참다운 지혜를 열지 못하면서 경전을 읽고 강의하는 문자법사(文字法師)를 함께 경책해 왔습니다. 오늘날에도 이 두 가지 편협된 모습을 동시에 지양하는 바른 수행의 자세가 간절히 요구됩니다. 요즈음 들어 조사선(祖師禪)에 대한 여래선(如來禪)을 강조하며 부처님 당시의 근본 선정수행으로 돌아가려 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도 또한 우리 불교사를 되돌아 보며 그 오류를 반성하고 참다운 불자의 모습을 되찾는 맥락에서 수용해 야 할 것이다.

다음은 현대사회에 불교가 어떻게 기여할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점철되었던 서구사회도 삭막하고 비인간적으로 흐르는 현대문명 속에서 불교의 연기적 세계관에 관심을 기울인지 오래입니다. 우리 나라에서 불교는 더 이상 외래의 종교가 아닙니다. 1600여 년 간 우리 민족과 호흡을 같이하며 이미 우리화된 것입니다. 연기적 세계관에 입각한 불교적 삶은 인류에 어떠한 변화가 오더라도 자비와 지혜의 정신으로 슬기롭게 대처할 수 있는 힘을 갖게 합니다. 불교보다 우리 나라에 들어온 역사가 짧은 다른 종교도 그 열렬한 전파력으로 이제는 불교를 능가할 교세를 지닌 현실을 볼 때 불교는 이제 사회의 교육에 힘을 기울여야 합니다. 교육이란 강원이나 대학과 같은 상위 교육기관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어린아이를 담당하는 탁아소부터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나아가 대학교와 일반신도의 교육 등 다양한 교육체계를 확보해서 사회 구석구석까지 손길이 미치는 포교를 펼쳐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 것만이 불교가 미래사회에도 변함없이 감로의 법으로써 깨끗한 사회(淨土)를 구현해 갈 수 있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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