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붓다경전/금강경

금강경 5품 여래실견분

by 파장波長 2022. 5. 10.

제5품 여래를 보다.

 

第5品·如理實見分 

“須菩提! 於意云何? 可以身相見如來不?” 
“不也, 世尊!不可以身相得見如來, 何以故? 如來所說身相, 卽非身相.” 
佛告須菩提,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수보리여! 그대 생각은 어떤가! 신상(身相)으로서 여래를 볼 수 있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신상으로써 여래를 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래께서 신상이라 하신 것은 신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부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무릇 모든 상은 다 허망하니, 만약 모든 상이 상이 아님을 본다면 여래를 보리라.”

부처는 불법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상에 머물지 않고 보시를 행해야 한다고 하고서, 먼저 상에 머물지 않는 복덕을 설명했습니다. 이 공덕을 통해 지혜는 비할 바 없이 커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어떻게 부처를 보아야 하는가라는 문제를 제기합니다. 이것은 아주 엄중한 문제입니다. 우리가 불법을 공부하는 것도 사실 부처를 보기 위함이 아니겠습니까? 부처는 수보리에게, “수보리여! 그대 생각은 어떤가? 신상(身相)으로써 부처를 보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라고 물었습니다.


“수보리여! 그대 생각은 어떤가! 신상(身相)으로써 여래를 볼 수 있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신상으로써 여래를 볼 수 없습니다.”

“須菩提! 於意云何? 可以身相見如來不?”
수보리 어의운하 가이신상견여래부 

“不也, 世尊! 不可以身相得見如來.” 
불야 세존 불가이신상득견여래


불교경전에서는 부처가 삼십이상(三十二相)이 있어서 우리 보통 사람과 다르며, 또 팔십 종의 보기 좋은 모습을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  또 매 한 가지 상(相)에는 매 한 가지 공덕이 있는데, 이 공덕은 여러 겁에 걸친 수많은 생애를 통해 닦아 쌓아 온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인과응보(因果應報)입니다. 부처가 삼십이 종의 상과 팔십 종의 좋은 모습을 갖춘 것도 역시 과보입니다. 몇 겁에 걸친 생애를 모두 지극히 선하게 수행에 전념하면서 보냈기 때문에 이 복덕이 상(相)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여기서 부처는 묻습니다. 삼십이상(三十二相)으로 부처를 보는 것이 가능하냐고? 이것이 석가모니불이 수보리에게 제시한 문제입니다. 수보리는 불가능하다고 대답합니다. 그러나 부처는 형상으로써 볼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형상으로 부처를 보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물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럼 절에서는 왜 우상을 숭배하느냐고요. 그러나 그렇게 생각한다면 잘못된 겁니다. 진정한 불법은 다른 종교와 마찬가질 우상 숭배를 반대합니다. 그런데도 왜 그려 놓은 부처나 새겨놓은 보살의 상에 절을 할까요? 그것은 부처나 보살의 모습을 통해 자신의 공정심을 끌어내기 위함입니다. 

절을 하는 것은 그림이나 조각에 하는게 아니라 자신에게 하는 것입니다. 어떤 종교든 최고의 이치는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사람이 자신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스스로를 구합니다. 일념으로 공경심을 다했다면, 그림이 진짜 부처니 아니니 말할 필요 없습니다. 나무토막을 보고 절을 했든 흙덩어리를 보고 절을 했든 오직 일념으로 성심성의를 다했다면 성공한 겁니다. 구원을 받은 겁니다. 부처는 말합니다. 그것은 “나로 인해 그대들이 공경스럽게 되는 것[因我禮汝]”입니다. 즉 부처에게 절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절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어디일까요? 자신의 마음, 즉 자신의 성(誠)과 경(敬)입니다.

비단 이런 우상들을 부처라 생각해서는 안 될 뿐 아니라, 부처와 동시대를 산다 하더라도 부처의 육신을 스승으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되면 상(相)에 사로잡힙니다. 『능엄경』에서 아난이 바로 이런 착오를 범합니다. 부처가 아난에게 왜 나와 함께 출가했느냐고 묻자 아난은, 부처가 생긴 모습이 하도 훌륭하고 또 빛까지 뿜어내기에 그랬다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부처는 아난이 상에 사로잡혀 훌륭한 모습만을 보고 출가했다며 나무랍니다. 아난이 마등가녀(摩登仙女)를 만나게 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이런 까닭에 부처는 신상(身相)으로써 여래를 볼 수 없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여래께서 신상이라 하신 것은 신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何以故? 如來所說身相, 卽非身相. 
하이고 여래소설신상즉비신상


무엇 때문일까요? 진정으로 불생불멸하는 몸은 이 육신이 아닙니다. 육신에는 생사가 있습니다. 수행을 통해 설사 천 년을 살 수 있다 하더라도 마지막에는 역시 죽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보장(寶掌)이라 불리는 선사는 천 년을 살았는데, 인도에서 오백 년을 살았으나 도를 깨닫지 못하자 장래 대승불법이 중국에 이를 것을 알고 그곳으로 가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달마대사가 오기를 기다리면서 중국에서 다시 오백 년을 살았는데, 대륙의 많은 곳에 그의 사원이 남아 있습니다. 구태여 가섭존자가 형체를 남겨 세상에 머물렀던 것을 들지 않더라도 장수하는 사람은 존재하나, 이들은 모두 육신의 상(相)으로서 불생불멸의 것이 아닙니다. 육신은 아무리 장수한다 하더라도 불생불멸할 수 없습니다. 오백년이든 천년이든 불생불멸하는 것은 이 육신이 아니라 법신입니다. 법신은 형상이 없습니다. 이런 까닭에 부처는 이어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을 분부합니다.


부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무릇 모든 상은 다 허망하니, 만약 모든 상이 상이 아님을 본다면 여래를 보리라.”

佛告須菩提,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불고수보리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부처는 수보리에게 특별히, “무릇 모든 상은 다 허망하니, 만약 모든 상이 상이 아님을 본다면 여래를 볼 것이다[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라고 말해 줍니다. 이 네 구절은 아주 중요한 것으로 각별히 유의해야 할 대목 입니다. 무릇 어떤 경계에 있든 모두 가짜입니다. 수행을 통해 어떤 경계에 이르렀다면, 수행하지 않으면 그 경계는 사라집니다. 경계란 바로 상(相) 으로서, 모든 상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해야 진정한 부처를 볼 수 있을까요? 법신을 볼 때 비로소 진정한 부처를 보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만약 모든 상이 상이 아니라면, 바로 공(空)을 말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흔히들 이렇게 해석합니다. 그러나 이 해석은 잘못된 것입니다. 혼란만 가중시키고 있을 뿐입니다. 그것이 공이라면 왜 공이라 번역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렇지만 단지 "만약 모든 상이 상이 아님을 본다면[若見諸相非相]”이라고 표현할 뿐입니다. ‘상이 아닌[非相]’ 것이란 무엇일까요? 한마디로 딱 잘라 말할 수 없습니다. 보통사람들은 『금강경』을 읽다가 이 부분에 이르면, 이것이 공을 말하는 것이라 단정 짓습니다. 그러나 이는 자신의 생각일 뿐, 부처는 그렇게 말 하지 않습니다. 부처는 단지, 만약 모든 상이 상이 아님을 본다면 부처를, 즉 부처의 법신을 볼 수 있다고 말할 뿐입니다. 

이 구절의 중점은 이렇습니다. 부처는 우리에게 단지 모든 상은 상이 아님을 말할 뿐 결코 공을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 이치가 어디에 있을까요? 바로 머무는 바가 없는[無所住] 것에 있습니다.


Note : 

부처님의 32상(三十二相)

 1. 족하안평립상(足下安平立相) : 발바닥이 땅에 착 붙고 사이가 벌어지지 않아서 바늘이 들어갈 틈도 없다. 
 2. 족하이륜상(足下二輪相) : 발바닥에 있는 수레바퀴에는 천개의 바퀴 살, 바퀴 테, 바퀴 통이 갖추어져 있다. 
 3. 장지상(長指相) : 손가락이 섬세하고 단정하며 곧고 길다. 
 4. 족근광평상(足跟廣平相) : 발뒤축이 넓고 평평하다. 
 5. 수족지만망상(手足指縵網相) : 손가락과 발가락 사이에 막이 있어서 마치 기러기가 발가락을 펴면 나타나고 안 펴면 보이지 않는 것과 같다. 
 6. 수족유연상(手足柔軟相) : 손과 발의 부드럽기가 짐승의 배에 난 솜털과 같다. 
 7. 족부고만상(足趺高滿相) : 발은 땅을 밝을 때 넓적하지도 않고 좁지도 않으며 발바닥은 연꽃같이 붉고 발가락의 막과 발 주위의 색은 산호 같고 손톱과 발톱은 맑은 구리색 같고 발등은 금색이고 털은 푸른 유리색이며 거북 등처럼 통통하게 튀어 올랐다. 
 8. 이니연슬상(伊泥延膝相) : 무릎은 이니연(aineya) 사슴의 무릎같이 둥글고 부드럽다. 
 9. 정립수마슬상(正立手摩膝相) : 몸을 바로 하여 직립하였을 때 손이 무릎에 닿을 정도로 팔이 길다. 
10. 음장상(陰藏相) : 부처의 음상(陰相)은 코끼리의 그것과 같이 감춰져 있다. 
11. 신광장등상(信廣長等相) : 몸의 키와 팔의 길이가 같다. 
12. 모상향상(毛上向相) : 몸에 나 있는 모든 털은 위로 향하여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13. 일일공일일모생상(一一孔一一毛生相) : 한 털구멍에서는 털 하나씩이 나 있으며 털은 푸른색이다. 
14. 금색상(金色相) : 전신이 미묘한 금색으로 빛나고 있다. 
15. 장광상(丈光相) : 몸의 사변에는 1장의 빛이 빛나고 부처님은 그 빛 속에 있다. 
16. 세박피상(細薄皮相) : 몸의 피부는 얇고 세밀하여 연꽃잎에 먼지나 물이 묻지 않는 것과 같이 일체의 먼지나 더러운 것이 묻지 않는다. 
17. 칠처륭만상(七處隆滿相) : 두 손, 두 발, 두 어깨, 몸의 일곱 곳의 살이 풍만 단정하고 색이 깨끗하다. 
18. 양액하륭만상(兩腋下隆滿相) : 두 겨드랑이 밑에도 살이 있어 우묵히 들어가지 않고 그렇다고 높지도 않다. 
19. 상신여사자상(上身如獅子相) : 상반신 위용의 단정함이 사자와 같다. 
20. 대직신상(大直身相) : 어느 사람보다도 몸이 크고 바르다. 
21. 견원호상(肩圓好相) : 두 어깨가 원만하고 풍만하다. 
22. 사십치상(四十齒相) : 보통 사람은 32치임에 대하여 부처님은 40치이고 보통 사람은 머리뼈가 9개인데 부처는 1개이다. 
23. 치제상(齒齊相) : 이의 크기는 모두 같고 들고 남이 없으며 이 사이는 조금도 틈이 없어 멀리서 보면 하나 같다. 
24) 아백상(牙白相) : 송곳니의 예리함과 희기가 설산이 태양에 반사되는 것 같다. 
25. 사자협상(獅子頰相) : 두 볼의 통통함이 마치 사자의 그것과 같다. 
26. 미중득상미상(味中得上味相) : 부처님은 어떠한 음식을 먹어도 모두 최상의 맛을 본다. 
27. 대설상(大舌相) : 부처님의 혀는 부드럽고 얇으면 크고 넓어서 내놓으면 얼굴 전체를 덮고 입 속에 넣어도 입 속이 차지 않는다.  28. 범성상(梵聲相) : 부처님의 음성은 깊이가 우레 같고 맑아서 멀리까지 들리고 마음에 들어 공경과 사랑을 받을 뿐 아니라 자세하여 알아듣기 쉬우며 들으면 싫증이 나지 않는다. 
29. 진청안상(眞靑眼相) : 눈동자는 푸른 연꽃같이 감청색이다. 
30. 우안첩상(牛眼睫相) : 눈썹이 길고 아름답고 정연함이 마치 소의 눈썹과 같다. 
31. 정계상(頂髻相) : 머리 위의 살이 혹처럼 융기되었다. 
32. 백호상(白毫相) : 눈썹 사이에 흰털이 하나 나서 오른쪽으로 말려 붙어 있으며 길이는 1장 5척이다.

'붓다경전 > 금강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금강경 제7품 무득부설분  (0) 2022.05.11
금강경 제6품 정신희유분  (0) 2022.05.10
금강경 4품 묘행무주분  (0) 2022.05.10
금강경 3품 대승정종분  (0) 2022.05.08
금강경 2품 선현기청분  (0) 2022.05.08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