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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경전/금강경

금강경 제7품 무득부설분

by 파장波長 2022. 5. 11.

제7품 얻은 것도 없고 말한 것도 없다.

 

第7品· 無得無說分

須菩提! 於意云何? 如來得阿場多羅三統三菩提耶? 如來有所說法耶?
수보리! 어의운하? 여래득아뇩다라삼막삼보리야? 여래유소설법야? 
須菩提言, 如我解佛所說義, 無有定法, 名阿耨多羅三藐三菩提, 亦無有定法, 如來可說,
수보리언, 여아해불소설의, 무유정법, 명아뇩다라삼막삼보리, 역무유정법, 여래가설,
何以故? 如來所說法, 皆不可取, 不可說, 非法, 非非法, 
하이고? 여래소설의, 개불가취, 불가설, 비법, 비비법,
所以者何? 一切賢聖, 皆以無爲法, 而有差別.
소이자하? 일체현생, 개이무위법, 이유차별.


얻을 것이 무엇이며 말할 것이 무엇인가?

“수보리여! 그대 생각은 어떤가? 여래는 아뇩다라삼막삼보리를 얻었는가? 여래가 설법한 것이 있는가?” 

“須菩提! 於意云何? 如來 得阿耨多羅三統三菩提耶? 如來有所說法耶?" 
수보리 어의운하 여래득아두다라삼막삼보리야 여래유소설법야

여기까지 말하고 나서 부처는 다시 수보리에게 묻습니다. “그대 생각은 어떤가? 그대는 내가 성불한 사람, 무상정등정각(無上正等正覺)을 얻은 사람이라 생각하는가?” 그대는 성불해서 도를 얻는 것이 진정으로 어떤 것을 얻는 것이라 생각하는가? 이것이 첫 번째 문제입니다. 그대는 내가 평소 경전을 강연하고 법을 설했다고 생각하는가? 이것이 두 번째 문제입니다. 부처는 수보리에게 이 두 문제를 반문합니다.


수보리가 말했다. “제가 부처님의 말씀을 이해하기로는, 아뇩다라삼막삼보리라 이를 만한 정해진 법이 없으며, 여래께서 말씀하실 만한 정해진 법도 없습니다.”

須菩提言,“如我解佛所說, 無有定法, 名阿耨多羅三流三菩提, 
수보리언 여아해불소설의 무유정법 명아뇩다라삼막삼보리, 
亦無有定法,如來可說." 
역무유정법여래가설

수보리가 대답합니다. “부처시여! 대단히 죄송한 말씀이지만, 제가 이해한 불법의 이치에 근거한다면 어떤 정법(定法)도 불법이라 부를 만한 것이 없습니다. 주의해야 합니다! 아누다라삼막삼보리라 이를 만한 정해진 법이 없습니다[無有定法, 名阿耨多羅三流三菩提]. 염불이 불법이라 생각한다면 틀린 생각입니다. 참선이 불법이라 생각해도 틀립니다. 주문을 외는 것이 불법이라 생각하는 것은 더욱 틀립니다. 그렇다고 부처를 예배하는 것이 불법이라 생각한다면 더더욱 틀립니다.

무엇을 정해진 법(定法)이라 할까요? 부처의 설법은 대교육자의 교육 방법과도 같습니다. 판에 박힌 방법이 아니라 자질에 따라 가르침을 행합니다. 어떤 때는 나무라는 것이 교육이요, 어떤 때는 장려하는 것이 교육 입니다. 공손하게 대하는 것도 교육이요, 난감하게 만드는 것도 교육입니 다. 결국 교육 방법이란 학생을 자극하여 스스로 지혜의 문을 열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해진 법[定法]이 없습니다. 수보리가 말합니다. “제가 생각하기로는 어떤 정해진 법도 아누다라삼막삼보리라 부를 만한 것이 없습니다. 만약 성불할 수 있는 어떤 방법이 있다고 한다면, 그 불법은 사람을 속이는 겁니다. 머무는 바가 없이 마음이 생겨야 합니다[應無所住 而生其心], 어디에 정해진 법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두 번째 문제에 대해 수보리가 답합니다. “여래께서 말씀하실 만한 정해진 법 또한 없습니다[亦無有定法,如來可說].” 부처는 불경 3장(藏) 12부(部)에서 말합니다. 『금강경』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원각경(圓覺經)』에서는 저렇게 말하며, 『법화경』에서는 또 다른 설법을 행하고, 『능엄경』에서도 역시 독특한 설법을 행합니다.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너희들 불교 공부하는 자들은 주둥이는 정말 잘 놀린다!” 맞는 말입니다. 비가 올 때 외출 하면서는 자운법우(慈雲法雨)라 하여 행운이 있을 것이라 합니다. 해가 뜰 때는 혜일당공(慧日當空)이라 하여 역시 좋다고 합니다. 맑지도 않고 비도 오지 않으면 자운보부(慈雲普覆)라 하여 역시나 좋다고 합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여래가 말할 수 있는 정해진 법 또한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불법은 어디에 있을까요? 반드시 불경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세간법(世間法)이 모두 불법입니다. 이것이 바로 『금강경』 이 말하는 바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불법을 배우는 정신과 실제 생활이나 인생을 따로 떼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본래 출세(出世)라 할 것도 없고, 입세(入世)라 할 것도 없습니다. 이 세상 어디에 입(入)이 있고, 어디에 출 (出)이 있겠습니까? 이들은 모두 외형적인 것으로서 단지 상(相)일 뿐입니다.


“왜냐하면 여래께서 설법하신 것은 모두 취할 수 없고, 말할 수 없으며, 법이 아니요, 법이 아닌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何以故? 如來所說法, 皆不可取, 不可說, 非法, 非非法." 
하이고 여래소설법 개불가취 불가설 비법 비비법

아무리 부처가 설법한 것일지라도 그것을 붙들고자 해서는 안 됩니다! 그 어른의 말을 듣고서 그렇게 해야만 옳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스스로 속임수에 걸려드는 것입니다. 취할 것도 없고, 말할 것도 없습니다. 말해봐야 모두 이차적인 것이요, 그림자일 뿐입니다. 진정한 그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입니다. 가령 여러분이 어디 가서 맛있는 것을 먹고 와서는 그 맛에 대해 한참 이야기했다고 합시다. 그러면 저도 그것이 맛있겠구나 느낄 수는 있겠지요. 하지만 직접 먹어 보지는 못했으니 맛있다고 아무리 실감 나게 이야기해 봐야 어디까지나 이차적인 것으로, 원래의 그 맛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불법 역시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진정한 그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입니다. 표현된 것은 이미 그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여래의 설법은 모두 취할 수 없는 것이며,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의 고정된 설법이란 없으며(非法), 고정된 설법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非非法), 


정도의 차이

“왜 그런가 하면, 일체의 성현은 모두 무위(無爲)로 법을 삼으나 차별이 있기 때문입니다.”

“所以者何? 一切賢聖, 皆以無爲法, 而有差別.” 
소이자하 일체현성 개이무위법 이유차별

“무슨 이유이가? 일체의 성현은 모두 무위로 법을 삼으나 차별이 있기 때문이다.” 불법은 이처럼 위대합니다! 이것이 불법의 정신입니다. 불법은 다른 종교처럼 자기 이외의 종교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불법은 일체의 종교, 일체의 대사(大師)를 승인 합니다. 화엄의 경계에 이르면 일체의 마왕이나 사왕(邪王)까지도 어느 면에서는 옳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좋은 일을 하도록 가르치기만 한다면 결국 옳은 겁니다. 그러므로 일체의 성현은 나한이라도 좋고, 보살이라도 좋으며, 너라도 좋고, 그라도 좋습니다. 도(道)를 이해하는 데에는 단지 정도 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예수의 도, 부처의 도, 마호메트의 도, 공자의 도, 노자의 도 중에서 어느 것이 진정한 도일까요? 어떤 도가 더 크며, 어떤 도가 더 작을까요? 진리는 단 하나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경에서 비유하듯, 뭇 장님이 코끼 리를 더듬는 것처럼 각기 한 면만을 고집합니다. 장님이 코끼리를 더듬다 보면, 귀를 만진 사람은 코끼리가 둥글다고 할 겁니다. 그러나 꼬리를 만 진 사람은 코끼리가 기다랗게 생겼다고 할 겁니다. 이렇듯 한 면에만 집착 하는 것은 모두 개인의 주관적인 인식일 뿐입니다. 이것을 도라 말하지만, 이건 도가 아닙니다.

이 불법을 배우는 사람은 이런 착오를 범해서는 안됩니다. 말할 만한 정해진 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불법은 일체를 포함할 수 있으며, 일체의 성현은 모두 무위를 법으로 삼되 약간의 차이가 있을 따름입니다. 진리는 단 하나입니다. 둘이 아닙니다. 진리의 한 측면만을 보고 그것만이 옳고 다른 것은 틀렸다고 한다면, 사실 이것은 틀린 겁니다. 진정으로 부처의 경계에 도달했다면 만상을 포용하고, 부정하기도 하며, 건립하기도 합 니다. 이것이 바로 부처의 경계입니다.

 

  글은 남회근 선생의 '금강경 강의'에서 참조하고, 인용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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