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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경전/금강경

금강경 제22품 무법가득분

by 파장波長 2022. 5. 23.

제22품 아무법도 얻을 것이 없다.

 

22 · 無法可得分 

須菩提白佛言, 世尊! 佛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爲無所得耶?
수보리백불언, 세존! 불득아뇩다라삼막삼보리, 위무소득야?
佛言, 如是! 如是!
불언, 여시! 여시!
須菩提! 我於阿耨多羅三藐三菩提, 乃至無有少法可得, 
수보리! 여아아뇩다라삼막삼보리, 내지무유소법가득.
是名阿耨多羅三藐三菩提.
시명아뇩다라삼막삼보리.


일지선

수보리가 부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부처께서 아뇩다라삼막삼보리를 얻은 것은 얻은 바가 없는 것입니까?”
부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 바로 그렇다!”

須菩提白佛言, 世尊! 佛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爲無所得耶? 
수보리백불언, 세존! 불득아뇩다라삼막삼보리, 위무소득야?
佛言,如是! 如是!
불언, 여시! 여시!

부처는 제21품에서 어떤 법도 말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했습니다. 이 품에서는 더욱 엄중하여 어떤 것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합니다. 수보리가 말합니다. “부처께 묻습니다. 옛날 대철대오하여 아뇩다라삼막삼보리를 증득했을 때, 붓처께서 그 경계는 어떤 것도 얻은 바가 없는 것이었습니까?” 부처가 대답합니다. “그렇다! 바로 그렇다!〔如是! 如是!〕” 그렇다는 것은 어떻다는 것일까요? 바로 화두입니다. 한번 들어 보십시오! 바로 선종의 일지선〔一指禪〕과도 같습니다.

당나라 때 금화산(金華山)에 구지화상(E和尙)이라는 선사가 있었는데, 그는 시종 금화산을 떠난 적이 없었습니다. 하루는 공부를 위해 그곳을 떠나려 했더니 밤중에 허공에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떠날 필요 없다. 육신보살〔肉身菩薩〕이 친히 너에게 설법해 줄 것이다.” 육신보살이란 우리처럼 보통의 육체를 가진 살아 있는 사람입니다. 보살이 다시 인간의 몸으로 온 것입니다. 이튿날 천룡화상〔天龍和尙〕이 그를 보러 오자 구지화상은 그에게 불법이 어떤 것이냐고 물었습니다. 천룡화상은 대선사였는데, 그가 손가락으로 한 번 가리키자 구지화상은 곧 대철대오했습니다.

구지화상은 어떤 어려움도 겪지 않고 도를 깨달았습니다. 그가 얻은 것은 일지선(一指禪)이었습니다. 이후 그의 설법은 이랬습니다. “무엇이 불법인가?” 하고는 손가락으로 한 번 가리키면서, “그대가 이해하는 것도 이것이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이것이라네!”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고 나서는 아무 말도 없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손가락 하나를 보고서 도를 깨쳤습니다.

하루는 그가 외출을 했습니다. 그의 제자인 소사미(小沙彌)는 그와 오랫 동안 같이 지냈는데, 사람들이 사부에게 예를 갖추고 큰절도 해가면서 불법을 물으면 사부는 언제나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이것!" 이라 말하는 것을 보아 왔습니다. 사부가 외출한 그날, 어떤 사람이 불법을 묻기 위해 사부를 찾아왔습니다. 소사미가 말했습니다. “제 사부의 불법은 저도 압니다.” 그 거사(居士)는 무릎을 꿇고 말했습니다. “소사부(小師父)! 부디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소사미 역시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이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곧 도를 깨쳤습니다. 소사미는 아주 기뺐습니다. 원래 사부의 불법이란 바로 '이것' 이었구나 생각했습니다. 구지 회상이돌아오자 소사미가 보고했습니다. “오늘 한 거사가 찾아왔는데 제가 맞이해 도를 깨치게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동안의 경과를 말했습니다. 사부가 듣고는 놀라더니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 후 다시 나와서 소사미에게 물었습니다. “손님에게 뭐라 했다고? 다시 한 번 말해 봐!” 소사미는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이것!” 하고 말했습니다. 그가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사부는 단칼에 그 손가락을 잘라 버렸습니다. 피가 계속 흘러나왔습니다. 소사미는 비명을 지르며 고통스러워하다가 곧 깨달았습니다. 손 가락 한 마디를 잘라 버린 것이 바로 '이것' 이었습니다. “그렇다! 바로 그렇다!〔如是! 如是〕!” 라는 것은 바로 선종의 '이것' 입니다. '이것'이 어떤 것인지는 스스로 겪어 보아야 합니다.

『금강경』에는 대여섯 종의 번역본이 있는데, 반복해서 연구를 해 보면 구마라습의 번역이 제일 고묘(高妙)합니다. 후에 현장법사가 다시 번역하면서 이치가 더욱 뚜렷해지긴 했지만 도리어 불법의 의미가 모호해졌습니다. 구마라습의 번역은 많은 곳이 모두 선종적 설법입니다. 쟁반 위를 구르는 구슬처럼 어느 한곳에 머물지 않습니다. 후세 선종에서 『금강경』을 받아들여 도를 깨달을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수보리여! 나는 아뇩다라삼막삼보리뿐 아니라 조그만큼의 법도 얻은 것이 없다. 이것을 일러 아뇩다라삼막삼보리라 한다.”

須菩提! 我於阿耨多羅三藐三菩提, 乃至無有少法可得,
수보리! 아어아뇩다라삼막삼보리, 내지무유소법가득, 
是名阿耨多羅三流三菩提. 
시명아뇩다라삼막삼보리

부처가 수보리에게 말합니다. “내가 그대에게 이르노니, 당시 내가 보리수 아래에서 아뇩다라삼막삼보리를 얻었을 때, 그대는 내가 보리(菩提)라 할 만한 어떤 것을 얻었으리라 생각하는가? 아무것도 얻을 만한 것이 없었다.” 바로 육조(六祖)가 깨달았다는 “본래 아무것도 없으니 어디서 먼지 인들 일어나랴! 〔本來無一物, 何處惹塵埃〕”입니다. 아무것도 얻을 만한 것이 없습니다. 만약 조금 법()이라도 얻을 수 있다면, 또는 조금의 공()이 나 광명(光明), 그 어떤 경계라도 얻을 수 있다면, 또는 휘황찬란하고 작은 원이라도 보았다면, 이는 모두 상()에 집착한 것입니다. “조금의 법도 얻 은 것이 없다〔無有少法可得〕”, 아뇩다라삼막삼보리라고 하는 것은 무상(無上)의 정등정각〔正等正覺〕입니다. 이 품은 아주 짤막한데, 여기에 “아무 법도 얻을 것이 없다(無法可得)”라 는 제목을 붙였습니다.

 

 글은 남회근 선생의 '금강경 강의'에서 참조하고, 인용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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