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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경전/금강경

금강경 제26품 법신비상분

by 파장波長 2022. 5. 24.

제26품 법신은 상이 아니다

 

26·法身非相分 

須菩提! 於意云何? 可以三十二相觀如來不?
수보리! 어의운하? 가이삼십이상관여래부?
須菩提言, 如是! 如是! 以三十二相觀如來.
수보리언, 여시! 여시! 이삼십이상관여래
佛言, 須菩提!  若以三十二相觀如來者, 轉輪聖王, 卽是如來.
불언, 수보리! 약이삼십이상관여래자, 전륜성왕, 즉시여래.
須菩提白佛言, 世尊! 如我解佛所說義, 不應以三十二相觀如來.
수보리백불언, 세존! 여아해불소설의, 불응이삼십이상관여래.
爾時, 世尊, 而說偈言.
이시, 세존, 이설게언.
若以色見我 以音聲求我,  是人行邪道 不能見如來
약이색견아 이음성구아, 시인행사도 불능견여래


견불과 관불

“수보리여! 그대 생각은 어떤가? 삼십이상으로써 여래를 볼 수 있는가?” 수보리가 말했다. “그렇습니다! 바로 그렇습니다! 삼십이상으로써 여래를 봅니다.”

須菩提! 於意云何? 可以三十二相觀如來不?
수보리! 어의운하? 가이삼십이상관여래부? 
須菩提言, 如是! 如是! 以三十二相觀如來.
수보리언, 여시! 여시! 이삼십이상관여래.

이제 『금강경』의 핵심에 이르렀습니다. 여기서 부처는 다시 문제를 끄집어내는데, 이 문제는 부처가 이미 수차례나 언급했던 것입니다. 수보리는 부처가 다시 이 문제를 끄집어내자 머리가 혼란스러워졌습니다. 우리는 불경을 부처의 교육 방법이라는 관점에서 연구해 볼 수도 있습니다. 이 큰 선생의 위대한 교수법을 한번 보십시오! 당시의 교육 방법은 참으로 뛰어 난 데가 있습니다. 수보리가 흔들림이 없이 분명히 대답하자 부처는 다시 여기저기를 찔러 봅니다. 그러자 수보리는 자신감을 잃고 엉뚱한 대답을합니다. 수보리의 답은 원래 틀린 것이었으나 부처가 이리저리 돌려 말하자 다시 올바른 답을 내놓게 됩니다. 이 때문에 부처의 제자를 성문중(聲聞)이라 합니다. 직접 부처의 음성을 들으며 교화를 받았다는 겁니다. 선종에서는 사람을 나무랄 때 ‘코를 꿰여 끌려간다’ 고 말합니다. 나무라는 것도 아주 교묘합니다. 선종의 조사들은 사람을 나무라는 데에도 절묘해서 바보 같다고 하는 대신 단지 코를 꿰여 끌려간다고만 했습니다. 이 말은 코를 꿰여 끌려 다니는 소와 같이 어리석다는 뜻입니다.

『금강경』에 나타난 부처의 교수법이 얼마나 재미있습니까! 앞에서 부처는, 실상으로써 여래를 볼 수 있는가?〔可以實相見如來不〕”라고 물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 수보리는 형상(形象)으로써 여래를 볼 수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수보리가 이미 이렇게 대답했는데도 한참을 얘기하다가 부처는 다시 묻습니다. "그대 생각은 어떤가? 삼십이상으로써 여래를 볼 수 있는가?〔於意云何? 可以三十二相如來不?〕” 수보리는, "그렇습니다! 바로 그렇습니다!〔如是! 如是!〕” 라고 대답 합니다. 부처는 본래 성불한 몸이었기에 삼십이 종의 좋은 상()을 갖고 있었고, 그래서 삼십이상으로써 여래를 볼 수 있다고 한 것입니다.


부처께서 말씀하셨다. “수보리여! 만약 삼십이상으로써 여래를 본다면, 전류 성왕이 곧 여래이리라.”

佛言, 須菩提! 若以三十二相觀如來者, 轉輪聖王, 卽是如來.
불언, 수보리! 약이삼십이상관여래자, 전륜성왕, 즉시여래.

수보리의 대답에 부처는 아마도 '흥!' 하고 콧방귀를 뀌었을 테지만, 불경에서 차마 그렇게 기록하지 못했을 겁니다. “어찌 그리도 말귀를 못 알아듣는가? 만약 삼십이상으로써 부처를 볼 수 있다면 전륜왕(轉輪王)이나 제왕들도 부처일 것이다.” 수보리를 한번 보십시오. 얼마나 불쌍하게 되었습니까? 부처의 말에 머리가 혼란해지면서 곧 생각을 바꿔 말합니다. “부처시여! 제가 잘못 대답했습니다.”


수보리가 부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제가 부처님 말씀을 이해하기로는, 삼십이상으로써 여래를 보아서는 안 됨니다.”

須菩提白佛言, 世尊! 如我解佛所說義, 不應以三十二相觀如來.
수보리백불언, 세존! 여아해불소설의, 불응이삼십이상관여래.

“이제 알겠습니다. 방금 제가 한 말은 틀렸습니다. 제가 부처님 말씀을 이해한 바에 의하면, 삼십이상으로써 부처를 볼 수 없나이다.” 보십시오. 수보리가 얼마나 참담하게 되었습니까? 『금강경』을 자세히 읽어 보면 아주 재미있습니다. 읽을수록 더욱 흥미진진합니다. 그리고 『금강경』의 문장 또한 갈수록 오묘해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좋은 문학 작품을 읽어 나갈 때는 자신의 혼미한 머리를 깨우듯 목어(木魚)를 두드리며 읽습니다.


 

성색(聲色)과 사도(邪道)

그때 세존께서는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만약 형체로써 나를 보거나 소리로써 나를 구한다면 이 사람은 삿된 도를 행하는 자로서 여래를 볼 수 없다.

爾時, 世尊, 而說得言. 
이시, 세존, 이설게언
若以色見我 以音聲求我, 是人行邪道 不能見如來
 약이색견아 이음성구아, 시인행사도 불능견여래

수보리의 말이 끝나자 부처는 곧 화제를 돌려 아주 중요한 말을 합니다. 부처의 이 말은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탄보다도 더 폭발적으로 꽝! 하며 터집니다. 그래서 앞에다 "이시(爾時)”라는 표현을 붙였습니다. 수보리가 막 깨달음에 이르려 하는 적절한 시기에 그를 이리저리 한번 흔들어 본 것입니다. 마치 향판(香板)을 들고 흔드는 것 같습니다. 여기서 한 번 흔들고 저기서 한 번 흔들어 수보리의 머리를 어지럽게 합니다. 잠깐! 바로 이것! 수보리가 깨달았습니다. 그렇지만 부처는 수보리가 깨쳤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습니다. 만약 말했다면 『금강경』이라 부르지도 않았을 겁니다.

 

글은 남회근 선생의 '금강경 강의'에서 참조하고, 인용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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