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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경전

아미타경(阿彌陀經)

by 파장波長 2024. 2. 14.

서방정토(西方淨土) 극락세계(極樂世界)아미타불

부처님께서 장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이곳으로부터 서쪽으로 10만억 불국토를 지나면 극락(極樂) 이라는 세계가 있는데, 그곳에는 아미타(阿彌陀)부처님께서 지금도 법을 설하고 계시느니라. 사리불이여, 그 국토의 이름이 왜 극락인지 아느냐? 그곳의 중생은 어떤 괴로움도 없고 다만 모든 즐거움만 받기 때문이다.

사리불이여, 극락에는 칠보(七寶)로 된 연못이 있고 팔공덕수(八功德水)가 그 안에 가득 차 있다. 연못 바닥에는 금모래가 깔려 있고, 사방 계단은 금, 은, 청옥, 수정으로 되어 있으며, 그 위의 누각은 금, 은, 청옥, 수정, 붉은진주(赤珠), 마노(馬瑙), 호박으로 장엄하게 꾸며져 있다.

사리불이여, 극락국토에는 이와 같은 공덕으로 장엄되어 있느니라. 또 사리불이여, 그 국토에는 항상 하늘의 음악 소리가 나고 땅은 황금으로 되어 있고, 밤과 낮에는 하늘에서 여섯 번 만다화화(曼陀羅華) 꽃비가 내린다.

사불이여, 저 불국토에 바람이 불어 늘어선 보배 나무와 가지들이 흔들리면서 미묘한 소리를 내니, 마치 백천 가지 음악 소리가 동시에 연주되는 것과 같다. 이 소리를 들으면 모두가 부처님을 생각하고 가르침을 생각하고 스님들을 생각하리라는 마음이 저절로 우러난다.
사리불이여, 중생들은 마땅히 서원을 세워 저 극락국토에 태어나기를 발원해야 한다.

사리불이여, 어떤 선남자 선녀인들이 아미타불에 대한 이러한 설법을 듣고 그 명호를 굳게 지녀 하루나 이틀, 사흘, 나흘, 닷새, 엿새, 이레 동안 한결같이 흐트러지지 않는다면, 그 사람이 임종할 때에 아미타불이 여러 성중(聖衆)과 함께 그 앞에 나타날 것이며, 그는 목숨이 끊어지더라도 전도몽상(顚倒夢想)이 사라져 아미타불의 극락국토에 왕생(往生)하게 될 것이다.

사리불이여, 내가 지금 아미타불의 불가사의한 공덕을 찬탄하며 설한 것처럼 동방에서도 역시 아촉비불(阿閦鞞佛), 수미상불(須彌相佛), 대수미불(大須彌佛), 수미광불(須彌光佛), 묘음불(妙音佛) 등의 항하사와 같이 많은 부처님께서… 그리고 남방세계에서도 일월등불(日月燈佛), 명문광불(名聞光佛)… 서방 세계에서도 무량수불(無量壽佛), 무량상불(無量相佛)… 북방 세계에는 염견불(焰肩佛), 취승음불(最勝音佛)… 하방(下方) 세계에서는 사자불(師子佛), 명문불(聞佛)… 상방(上方) 세계에서는 범음불(梵音佛), 숙왕불(宿王佛)… 등의 항하사와 같이 많은 부처님께서 각기 그 국토에서 광장설상(廣長舌相)으로 삼천대천 세계에 두루 미치는 참되고 진실한 법문으로 ‘너희는 이 불가사의한 공덕을 칭찬하는 모든 부처님께서 호념하시는 이 경을 믿으라’ 하시느니라…

이와 같이『아미타경(阿彌陀經)』에는 아미타부처님께서 세우신 서방 정토 극락세계에 대한 장엄한 아름다움이 묘사되어 있다. 이는 서방 정토 아미타불의 세계뿐 아니라, 동방, 남방, 북방, 상방, 하방 어느 곳이든 무수히 많은 부처님께서 각각의 극락을 세우시고 법을 설하시며 이러한 장엄한 아름다움의 정토를 건립하고 계시다고 한다. 모든 불교 경전은 하나의 방편이다. 병에 빠져 있는 중생을 치유하기 위한 방편이며, 응병여약(應病與藥)의 약처방이다. 서방 정토 극락세계 아미타불의 신앙은 무엇을 설하고자 하는 방편일까? 그것은 수행을 어렵게 느끼고, 깨달아 부처가 되는 것이 너무 어렵다고 여기는 수많은 중생들에게 보다 쉽게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방편으로 펼치게 된 것이다. 오늘날에도 불교를 어렵다고 하는 이들이 많지만 옛날에는 더욱 문자도 모르고, 공부를 해본 적도 없는 이들이 많았다. 그래서 그들에게 부처가 된다는 것은 도저히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나와는 동떨어진 세계의 이야기일 뿐이다.

바로 그런 수많은 중생들에게는 아미타불의 서방정토 극락세계가 주는 장엄한 아름다움이 더 쉽게 와 닿을 것이다. 쉽게 아미타불 염불만 하면 죽고 나서 아미타부처님께서 마중을 나와 주시고 극락세계로 데려간다고 하니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 일인가? 깨달음은 그곳에 가기만 하면 쉽게 얻을 수 있으니, 일단 거기까지만이라도 가보자 하는 마음으로, 마치 『법화경』에서 화성(化城)에 비유했던 것처럼, 이 멀고 먼 깨달음의 길에 잠시 머물 수 있는 극락정토를 방편으로 보여주신 것이다.

이 방편의 본질적인 의미는 이것이다. 서방만 서방이 아니다. 동방, 남방, 북방, 위아래의 모든 방위에 무수히 많은 부처님이 계시고, 무수히 많은 정토가 있다고 한다. 불교에서 오방이나, 시방은 온 우주 전체를 의미한다. 즉 이 우주법계 모든 곳이 바로 지금 이대로 부처님의 정토세계이며, 지금 우리가 있는 이곳에 무량한 부처님께서 이미 법을 설하고 계신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대로의 이 국토가 그대로 불국토다.

중생들은 산과 풀과 나무를 보며 그저 산과 풀과 나무 나부랭이를 보겠지만, 깨달은 이의 시선으로, 아니 깨달은 이까지 갈 것도 없이 활짝 열린 마음으로 바라본다면, 저 평범한 산과 풀과 나무 한 그루가 그대로 놀라운 장엄함이다.

20대의 어느 봄날 우연히 제비꽃 한 송이를 오래도록 바라 보며 놀라운 장엄함과 경이로움을 느낀 뒤로는 그토록 평범하던 세상의 자연 하나 하나가 이토록 경이롭고 놀라운 것이라는 사실에 눈물을 흘려 본 적이 있다. 시인들도 그토록 평범한 꽃 한 송이를 장엄한 아름다움으로 묘사하고 있지 않은가.

바로 그렇다. 마음이 열려 있지 않은 이에게는, 무명과 분별심에 휩싸인 이에게는 이 세상은 속진의 때가 덕지덕지 묻은 예토(穢土)에 불과하겠지만, 어리석음과 분별을 여의게 되면 지금 이 자리에 이미 있었던 장엄한 정토의 아름다움이 곧장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정토는 저쪽 10만억 불국토를 가야지만 만날 수 있는 이상향이 아니다. 동서남북 상하 어느 곳이든 무량한 부처님과 무량한 정토가 있다고 하지 않는가? 그곳이 바로 여기에 있다는 것이다. 언제나 경전은 경전의 내용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경전이 진정 우리에게 들려주고자 하는 본뜻, 낙처, 귀결점이 중요하다고 했다. 정토신앙이야말로 그 낙처를 제대로 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후기 에 많은 조사스님들께서 정토신앙을 바르게 이해하는 정법의 관점들을 두루 제시하고 있다.

아미타불을 염불함으로써 극락세계에 왕생하기를 발원하라는 말은 무엇일까? 무량수(無量壽) 무량광(無量光), 무량한 수명과 광명인, 즉 시공을 초월하는 본성인 근원의 아미타부처님이 내 안에 이미 드러나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깨닫는가? 부처님의 명호를 외우라. 즉 부처님을, 부처님의 가르침을 몸서리치게 그리워하고, 계속해서 외울 정도로 마음속에 품으라는 것이다. 부처님의 명호, 부처님의 가르침, 부처님을 그리워함으로써 지금 여기에 극락세계가 곧장 드러나 있음을 깨달으라는 것이다. 그것이 왕생이다. 죽은 뒤에 가는 곳이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서 깨달을 때 곧장 왕생하게 된다. 부처님을 품고, 부처님 명호를 외우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가까이하게 되면서 극락세계라는 불세계에 가기를 발원하기만 하면 염불 10번이면 왕생한다고 하듯, 그렇게 어렵지 않게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불세계를, 깨달음을 너무 어렵게 여기지 말라는 것이다.

아미타불의 세계에 태어나기를 발원

사리불아, 어떤 사람이 아미타불의 세계에 나기를 발원하였거나, 발원하거나, 미래에 발원한다면 그는 바른 깨달음에서 물러나지 아니하고 그 세계에 벌써 났거나 지금 나거나 장차 날 것이다. 신심 있는 이들은 마땅히 극락세계에 나기를 발원하라.

중생들은 마땅히 발원을 세워 저 세계에 가서 나기를 발심하라. 왜냐하면 그곳에 가면 이와 같이 으뜸가는 사람들과 함께 모여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아미타불의 세계는 바로 지금 여기에 있다. 서방 정토 극락세계가 바로 여기에 있다. 중생에게는 이곳이 있고 저곳이 있지만, 중생의 세계가 있고 극락정토가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중생들의 의식 속에서 이해시키기 위한 방편일 뿐이다. 참된 진실에서는 여기가 곧 거기이고 그때가 곧 이때다. 아미타불의 세계는 곧 불법과 함께 하는 세계다. 진리가 있고, 도반이 있고, 스승이 있으며, 법이 살아 있는 곳이라면 그곳이 바로 아미타불의 세계다.

중생들은 마땅히 아미타불의 세계에 태어나기를 발원해야 한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고통스런 중생의 세계다. 그러나 그 고통의 세계는 곧 의식이 만들어 놓은 허망한 세계다. 분별망상이 만든 허망한 꿈의 세계에서 꿈을 깨고 나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특별한 방법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간절한 발심, 발원이 있어야 한다. 깨달음의 세계, 아미타불의 세계, 분별망상이 사라진 꿈 깬 세계에 가서 나기를 발원한다면 그 발원이 간절해지고 간절해질 때 결국 그 발원이 모여 지금 내 눈앞의 당처에 아미타불의 극락세계를 드러내 보여 줄 것이다.

 

- 법상 스님 - 불교 경전과 마음공부 글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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