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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생애

붓다의 생애-비람강생상(此藍降生相)

by 파장波長 2022. 4. 20.

 부처님 세상에 태어나시다.

모든 백성의 기대 속에 따스한 봄이 되고 해산할 날이 가까워지자 숫도다나왕은 데바다하로 향한 도로를 정비하고 향기로운 꽃으로 길가를 단장했습니다. 왕비는 백성들의 전송을 받으며 노래와 향기가 넘치는 길을 따라 아버지 안자나(Aijana)가 기다릴 데바다하(Devadaha)로 향했습니다. 마음으로는 한달음에 달려갈 고향이었지만 행렬을 이끄는 대신들의 걸음은 더 더기만 했고, 만삭의 왕비를 시중드는 시종들은 작은 기침 소리에도 고삐를 늦추고 길에 조막만한 돌멩이만 보여도 마차를 세웠으며, 해가 떨어지기 전에 숙소를 마련하고 아침 햇살이 대지를 적시고 나서야 길을 나섰습니다. 나지막한 언덕에 펼쳐진 샤까족들의 마을을 천천히 지나온 행렬은 히말라야의 눈 덮인 다울라기리 (Dhaulagin)산이 멀리 보이는 룸비니(Lumbini, 藍毘尼)동산에 다 다랐습니다. 

겨울이 가고 봄기운이 완연한 동산에는 온갖 풀과 나무들이 꽃을 피워 향기를 퍼뜨렸고, 샘과 연못은 거울처럼 맑았다. 또 가깝게는 설산에서 발원한 강물이 기름처럼 반들거리며 동남쪽으로 흐르고 있었습니다. 서산 위에 한 뼘밖에 남지 않은 석양을 바라보던 대신들은 그곳에 임시 숙소를 마련했습니다.

기원전 624년 사월 초파일, 샛별이 유난히 반짝이고 동쪽 하늘이 파르스름하게 밝아오고 있었습니다. 이슬이 영롱한 동산에는 잠을 깬 새들이 합창을 시작했고, 바람은 차지도 덥지도 않았습니다. 비단처럼 부드러운 풀잎을 밟으며 가볍게 동산을 거닐던 마야왕비는 한 나무 아래 걸음을 멈췄섰습니다. 싱싱한 초록빛에 비취색과 붉은색이 뒤섞인 나무는 공작의 깃처럼 화려했고, 가벼운 바람에도 천인의 옷처럼 하늘거렸습니다. 손을 내밀어 무지개처럼 드리운 가지 끝을 잡는 순간, 바람에 밀리는 배처럼 대지가 흔들리고 구름 없는 하늘에서 붉고 푸른 꽃비가 쏟아졌습니다. 왕비는 문득 산기를 느꼈습니다. 놀란 시녀들이 서둘러 나무 주위로 장막을 치자마자 왕비는 산통도 없이 선 자리 에서 아기를 낳았습니다. 사람들은 산통 없이 왕자를 출산하게 한 공덕 을 기려 그 나무를 아소까(Asoka, 無憂)나무라 불렀다.

오른쪽 옆구리로 태어난 아기는 오른손은 하늘을 가리키고, 왼손 은 땅을 가리키며, 사방으로 일곱 걸음을 걸으면서 사자처럼 당당 하게 말하였다.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 하늘 위와 하늘 아래 오직  홀로 존귀하도다. 
계개고 아당인지(三界皆苦 我當安之) 세상이 고통 속에 잠겨 있으니  마땅히 이를 편안케 하리라.

아기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수레바퀴만큼 큰 연꽃이 땅에서 솟아 올라 아기 발을 받들었으며, 천지가 진동하고 삼천대천세계가 밝게 빛났습니다. 사방에서 몰려온 천신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아홉 마리의 용이 따뜻한 물과 차가운 물을 뿌려 아기를 목욕시켰으며, 하늘에서는 꽃비가 쏟아졌습니다.

왕비의 출산 소식을 들은 숫도다나왕은 위엄을 갖추고 룸비니로 달려갔습니다. 왕자의 탄생은 샤꺄족과 꼴리야족 모두의 경사였습니다. 수많은 왕족과 대신들의 축복 속에서 숫도다나왕은 아기를 안아들었습니다. 아기의 피부는 솟아오른 태양처럼 황금빛으로 빛나고, 두 다리는 금방이라도 일어설 듯 힘이 넘쳤으며, 긴 눈매의 눈동자는 별처럼 빛났습니다.

태자가 태어난지 닷새가 되자 히말라야로부터 아시타 선인이 내려와 태자를 뵙고자 했습니다. 태자의 얼굴을 본 아시타는 슬피 우는 것이었습니다. 불길하게 생각한 정반왕이 연유를 묻자 아시타 선인은 “왕자는 출가하면 부처님이 될 것이오, 왕위를 계승하면 전륜성왕이 될 것인데, 자신이 노쇠하여 부처님의 출현을 뵈올 수 없는 것이 한스러워 눈물을 흘리는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뒤늦게 아들을 얻은 기쁨도 잠시, 태자가 태어난 지 7일만에 어머니인 마야부인이 세상을 떠나니, 태자는 이모인 파자파티 (Pajāpati)를 새어머니로 하여 자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시타 선인의 예언에 따라, 아들이 출가하지 않고 전륜성왕이 되어주기를 바라는 정반왕은, 태자의 성문 밖 출입을 막고 호화스러운 궁전을 지어 향락 속에 자라게 하였습니다.

 

붓다의 탄생지는 룸비니(Lumbin )라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네팔 타라이 지방의 룸민디에서 발견한 아소까 왕의 석주(石柱)에는 ‘여기에서 불타 석가모니가 탄생하였다.’ 는 뜻의 글이 새겨져 있어서 이곳이 붓다 탄생지 였다는 역사적 사실임을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이곳은 현재 룸민데이(Rummindei)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이 룸비니 동산은 마야비()의 친정인 석가 일족의 데바다하(천비성) 근처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왕비의 친정 어머니 이름을 따서 룸비니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곳은 온갖 아름다운 꽃과 수목, 과일이 열리는 나무가 울창하고, 연못과 늪과 흐르는 시내도 있고 맑은 샘물이 솟아나는 훌륭한 동산이었던 것 같습니다. 서기 405년 이곳을 찾은 중국인 승려 법현(法顯)은 여기에 두 용왕이 태자에게 첫 목욕물을 끼얹어주었다는 유적이 그때도 우물과 연못으로 쓰이고 있었으며, 그 근처에 살고 있던 불교 승려들의 음료수로도 사용되었다고 기록했습니다. 

또 633년 이 지방을 찾아간 현장(玄奬)은 연못과 샘말고도 그 고장 사람들이 유하(油河)라고 부르는 아름다운 시냇물이 동남쪽으로 흐르고 있더라고 적었습니다. 해산한 뒤 마야비가 목욕한 강이라는 것입니다. 현장의 답사에 의하면, 그곳에 무우왕(無憂王, 아소까왕을 가리킴)이 세운 큰 돌기둥[石柱]이 있고 그 꼭대기에 마상(馬像)이 새겨져 있었는데, 뒷날 벼락으로 돌기둥이 중간에서 꺾이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룸비니 동산의 유적은 오랫동안 정글에 묻혀서 잊혀진 채 겨우 그 고장 사람이 조그만 집을 짓고 지켜왔었습니다. 그러다가 1896년, 당시 인도 정부의 노력으로 타라이 지방의 룸민디라는 마을이 룸비니의 고적임을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아소까왕이 세운 돌기둥이 발견됨으로써 결정적으로 확인된 것입니다. 

현장이 기록한 바와 같이 그 돌기둥의 위쪽은 꺾여진 채 없어지고 말았지만, 아랫부분은 그대로 있어 거기에 적힌 비문의 넉 줄 반의 글자는 온전히 남아 있습니다.  이 석주에는 93자로 된 명문(銘文)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 글에는 다음과 같이 씌어져 있습니다.

"신들의 보호를 받는 덕 높은 왕(아소까)이 왕위에 오른지 20년 되는 해에 친히 이곳에 와서 공양을 올렸다. 여기서 붓다 사캬무니가 탄생하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돌담을 만들고 돌기둥을 세우게 했다. 세존께서 여기서 탄생하신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룸비니 마을은 세금을 면제받고, 또 생산의 팔 분의 일만을 지불하게 된다."

위의 석주에는 '석가족의 성자, 붓다, 여기서 탄생하셨도다.'(hida buddhe jate Sakyamuni)21)라는 대목이 분명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기록에 의해 이곳이 룸비니 동산이었음이 분명히 밝혀진 것입니다. 이 거대한 석주는 지금도 볼 수 있습니다. 서기 7세기 중엽 중국의 구법승 현장 법사가 여기에 왔을 때는 석주는 이미 벼락으로 부러져 있었지만, '어제 깎은 듯 생생하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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