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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생애

붓다의 생애-사문유관상(四門遊觀相)

by 파장波長 2022. 4. 20.

 

싯달타 태자는 왕궁의 풍요 속에서 성장합니다. 7세가 되자 태자는 학문과 무예를 익히기 시작하여 곧 모든 학문과 무예에 통달하여 더 이상 그를 가르칠 만한 스승이 없게 되었습니다. 아버지 정반왕은 그를 극진히 생각하여, 계절에 따라 생활할 수 있는 세 곳의 궁전(三時殿)을 지어주는 등 온갖 호사 속에 성장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도성 밖 출입만은 언제나 금지시켰는데 그것은 태자가 현실의 고통과 접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서였습니다.

7세 되던 해의 어느 봄날 태자는 부왕과 함께 농경제의 파종식에 참가했습니다. 그때 태자는 들에서 농경제에 참가한 농부들의 마르고 고단한 모습과 쟁기를 끄는 소들이 채찍에 맞아 피를 흘리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쟁기가 지나간 뒤 뒤집힌 흙 사이로 나온 벌레들을 잡아먹기 위해 날아든 새들의 모습을 보며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약육강식의 피비린내 나는 고통 속에 있는 세상의 실상을 직접 목격한 것이입니다. 이에 싯달타는 염부나무(浮樹) 그늘 밑에서 그 고통의 해결을 찾기 위한 깊은 명상에 잠겼습니다.

이때 싯달타는 초선(初禪)의 경지에 들었다고 합니다. 태자가 큰 자비심으로 세상을 고통 속에서 구원할 길을 찾아 선정에 들어 있을 때, 그 광경을 본 정반왕은 오히려 태자를 현실과 더욱 멀리 해야겠다고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정반왕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태자의 명상적 성격은 더욱 깊어만 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태자는 삶의 생생한 실상과 마주치게 됩니다. 성년이 된 어느 봄날 태자는 부왕 몰래 성문 밖을 나섰습니다. 그리고 동문(), 남문 (), 서문(西)에서 각각 늙고(), 병들고(), 죽은 사람들()을 보게 되었고, 생명을 가진 어떤 것도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번민하던 달타가 북문()에서 만난 사람은 바로 출가수행자였습니다. 그리고 싯달타는 출가수행만이 이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임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사문 유관(四門遊觀)이라고 합니다. 태자는 네 곳의 성문에 나가 세상의 현실을 보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왕궁의 영화와 권세, 향락과 사치 그리고 기존의 어떤 학문과 종교에서도 생로병사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을 찾을 수 없었던 태자는 출가수행자를 통해 찾았던 것입니다. 

싯달타의 고뇌는 주로 생·노·병·사에 관한 것으로 이것이 바로 이른바 사문출유(四門出遊)로서 정리되었던 것입니다. 초기경전인 대본경 <大本經)>에는 과거세(過去世)의 비바시불(毘婆尸佛)의 ‘사문유관(四門遊觀)' 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느 날 붓다는 유원(遊園)으로 가기 위해서 곱게 꾸민 수레를 신두산() 말에 매고 가던 중, 머리는 희고 이는 빠진 채 지팡이를 손에 쥐고 부들부들 떠는 노인을 만남으로써 살아있는 모든 것이 늙는다면 태어나는 일 자체가 화()라고 느꼈으며, 마찬가지로 질병과 죽음을 보고 인생의 덧없음을 알았고, 최후로 출가 수행자를 보고 자신도 집을 떠날 결심을 굳혔다"라고 한다. 

이것이 후세에 일정한 틀과 형식이 갇추어지면서 사문출유(四門出遊)의 신화가 된 것 입 나다. 이 사문유관에 의하면 태자는 왕성(王城)의 네 개의 문으로부터 출유(出遊)하여 각각 노인 · 병자 · 죽은 사람, 그리고 수행자를 만났다는 것이며, 이것이 출가의 동기(動機)였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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