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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생애

붓다의 생애-설산수도상(雪山修道相)

by 파장波長 2022. 4. 20.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향해 정진하시다.  

 

여러 스승에게서 배움을 얻고 곧 스승의 경지를 뛰어넘어 더 이상 그를 가르칠 자가 없었을 때, 수행자 고타마 싯달타는 다른 모든 수행자들이 그러하듯이 고행(苦行)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그의 고행은 실로 다른 어느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할 극심한 것이었다. 부처님의 일생을 찬탄한 《불소행찬》에는 이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나는 실로 고행자 중의 최상의 고행자였다.
나는 남들이 바치는 음식도 받지 않았으며 풀과 떨어진 과일만 주워 먹었다.
나는 무덤 사이에서 시체와 해골들과 함께 지냈다.
그때 목동들은 내게 와서 침을 뱉고 오줌을 누기도 했으며 귀에 나무 꼬챙이를 쑤셔넣기도 했다.
내 목에는 여러 해 동안 때가 끼어 저절로 살 가죽을 이루었으며 머리는 길어 새들이 찾아들었다.
나는 누구보다도 더한 고독한 고행자였다.
나는 숲에서 숲으로, 밀림에서 밀림으로, 낮은 땅에서 낮은 땅으로, 사람들에게서 멀리 떠나 홀로 지냈다.
그러면서도 나는 모든 생명을 가엾이 여기는 고행자였다.
나아가거나 물러서거나 조심하여 한 방울의 물에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었다.
그것은 그 가운데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벌레들일지라도 죽여서는 안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집을 떠나온 수행자들이 하는 어떤 고행보다도 더욱 혹독한 수련을 했었다.
입과 코를 닫아버리고 수행을 했을 때는 귓구멍에서 큰 바람 소리가 났으며 그 기운은 두개골로 치솟아 두개골이 빠개지는 것과 같았으며 나중에는 늑골과 배를 날카로운 칼로 자르는 듯 아팠다.
나는 하루 를 대추 한 알로도 보냈으며 멥쌀 한 알을 먹고도 지냈으며 하루에 한 끼, 사흘에 한 끼, 이윽고 이레에 한 끼를 먹고 보름에 한 끼를 먹었다. 그래서 내 몸은 무척 수척해졌다.
내 볼기는 마치 낙타의 발 같았고 내 갈비뼈는 마치 오래 묵은 집의 무너진 서까래 같았다.
내 뱃가죽은 등뼈에 들러붙 었기 때문에 일어서려고 하면 머리를 처박고 넘어졌다.
살갖은 오이가 말 라 비틀어진 것 같고, 손바닥으로 몸을 만지면 몸의 털이 뽑혀 나갔다.
이를 보고 사람들은 말했다. '아 싯달타 태자는 이미 목숨을 마쳤구나, 이제 곧 목숨을 다할 것이다’라고."

 

 

이와 같이 싯달타는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고행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과거의 어떤 수행자도 그리고 미래의 어떤 수행자도 자신과 같은 고행을 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을 할 수 있을 만큼 고행에 몰입했습니다.

당시 인도 사람들은 의식적으로 고행을 함으로써 물질적 욕망을 억제하고 정신생활의 향상을 가져올 수 있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고행을 한 사람은 신비하고도 초인간적인 힘을 갖게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수행자 고타마는 6년에 걸친 극심한 고행을 통해서도 깨달음을 얻을 수 없었고, 연히 육체를 괴롭히는 일이 스스로가 지향하는 진정한 정각의 길이 아니라고 생각해 고행을 포기하기로 마음 먹고, 그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세상에서 수행자가 받아들여서는 안되는 두 가지 극단이 있다.
그 두 가지란 무엇인가?
하나는 관능이 이끄는 대로 애욕에 탐닉하여 욕망과 쾌락에 빠지는 것이다. 이는 어리석은 범부들이 찬탄하는 것이며, 수행자 의 숭고한 목적에 무익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자신의 육체를 스스로 괴롭히는 것에 열중하여 고행에 빠지는 것이다. 이는 목적과 수단이 전도된 것으로 수행자의 숭고한 목적을 위해서는 무모한 것이다.
이 두 가지는 스스로에게도 이익이 되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도 이익을 주지 못하는 것이므로 반드시 버려야 한다.
나는 이 두 가지 극단을 버리고 중도(中 道)의 길을 찾았다."

중도는 곧 양 극단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코 양 극단을 적당히 절충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경전에 ‘중이란 곧 바름이다(中者正也)'라고 하였듯이 중도란 곧 정도(正道)의 다른 말입니다. 쾌락과 고행의 어중간한 가운데가 아니라 진실로 바른 길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행의 포기는 출가 수행자들 즉 사문들이 가지고 있던 사상이나 관습까지도 버린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며, 동시에 다른 수행자들로부터 비난을 감수해야 할 결정이었습니다. 그리서 부처님과 함께 수행하던 다섯 수행자는 부처님을 타락한 사문이라고 비난하며 떠났습니다. 타락한 수행자라는 평은 결국 수행자들의 무리에서 추방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에, 고행의 포기는 수행자로서의 위상에 종말을 고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주저 없이 고행을 포기했습니다. 이것은 깨달음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그 어떤 것이라도 매달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붓다의 일생에는 위대한 포기가 여러번 있었습니다. 부귀와 영화가 보장된 왕위를 포기했고, 행복과 안락이 보장된 가정을 떠났으며, 모두가 의심하지 않는 최고의 사상과 가치관을 포기했습니다. 최고의 고행자라는 명예도 포기했습니다. 이것은 세상 전부가 자신을 외면할 지라도 참된 것을 위한 것이라면 주저 없이 결정을 내리는 것이 참된 수행자의 자세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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