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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생애

붓다의 생애-유성출가상(嚴城出家相)

by 파장波長 2022. 4. 20.

부처님께서 출가의 모습을 보이시다.


나는 하늘에 태어나기를 원치 않는다. 
많은 중생이 삶과 죽음의 고통 속에 있지 아니한가. 
나는 이를 구제하기 위하여 집을 나가는 것이니 
위 없는 깨달음을 얻기까지는 결코 돌아오지 않으리라.〈오분율>

싯달타는 온갖 호화로움과 극진한 보살핌 속에서 청소년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생활도 비범한 재능을 발휘한 학문이나 무예도 결코 싯다르타에게 만족을 주지는 못했습니다. 그는 부족함이 없는 왕궁의 생활에 마음을 빼앗기기보다는 인간이나 세계와 같은 보다 본질적인 문제들에 관해 깊은 사색에 잠기는 일이 많았고, 인생의 여러 가지 문제들 가운데서도 특히 그를 괴롭힌 것은 생노병사()와 같은 삶의 가장 근원적인 문제들었습니다.

아버지 정반왕(淨飯王)과 양모 마하파자파티는 이런 왕자를 조심스럽게 지켜보면서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싯달타가 훌륭하게 자라나 왕위를 잇고 석가족(釋迦族)의 나라를 강성하게 만들어 줄 것을 기대하고 있었지만, 싯타르타는 그런 세속의 일보다는 항상 근본적인 인간의 문제에 더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혹시 왕자가 출가(出家)하여 수행자가 되지나 않을까 늘 염려했었습니다.  싯달타를 서둘러 결혼시킨 것도 이러한 걱정과 염려 때문이었던것 같습니다. 

출가수행자를 만난 후 진리의 길로 나아가기로 결심한 태자는 모든 사람 이 잠든 밤에 백마를 타고 왕궁을 떠났습니다. 왕위의 자리도 버리고 사랑하는 아내 야소다라(Yasodhara)와 아들 라훌라 (Rahula)마저 뒤로 한 채 깨달음의 길로 나아간 이날이 태자의 나이 29세 되던 해 음력 2월 8일이었습니다.

성을 나온 싯달타는 보검을 빼들고 스스로 머리와 수염을 깎은 뒤, 과거의 모든 부처님 앞에 일체의 번뇌를 끊어 모든 생명을 건지겠다고 굳게 서원을 세우고, 자신의 비단옷을 거지의 누더기와 바꿔 입었습니다. 

이렇게 출가수행자가 된 수행자 고타마는 남쪽의 신흥 국가인 마가다국 으로 향했습니다. 그곳에는 훌륭한 종교가들이 운집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당시 높은 명성을 얻고 있던 알라라 칼라마의 문하에서 그가 가르치는 무소유처정(無所有處定)이라는 수행을 배웠는데 곧 스승의 경지에 도달해 버렸습니다. 다시 그는 다른 스승인 웃다카 라마풋타에게서 비상비비상처정(非想非 非想處定)이라는 선정을 배웠습니다. 그렇지만 그 경지 역시 곧 도달해 버렸습니다. 고타마는 그의 스승들로부터 배운 선정을 통해서는 생사의 고통을 영원히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지혜의 눈에 의하지 않고는 진리를 얻을 수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택하고 있는 방법인 수정주의( 定主義)15)로는 생사의 고통에서 해탈할 수 없음을 알고 그들의 곁을 떠나 고행을 시작하였습니다.

15) 수정주의(修定主義) 바로 당시 정통 바라문의 대표적인 수행 방법이었다. 고행(苦行) 당시 외도(外道) 사문(沙門)들의 대표적인 수행 방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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