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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생애

붓다의 생애-쌍림열반상(雙林星槃相)

by 파장波長 2022. 4. 20.

붓다께서 육신을 버리고 열반에 드시다.

보리수 아래서 깨달음을 얻으시고 진리의 수레바퀴를 굴리신 지 45년, 그 기간 동안 붓다께서는 한시도 중생의 곁을 떠나지 않으신 채 삶의 현장에서 함께 동고동락하셨습니다. 몸에 지닌 것은 가사 한 벌과 발우 하나뿐이었지만 온 우주를 꿰뚫는 진리의 몸이시고 대자비의 몸이시기에 인간은 물론 하늘의 신들도 경배하고 받들었습니다. 그러나 80세가 되시던 해에 부처님은 아난존자에게 “나는 이미 모든 법을 설했고 내 주먹 속에 감춰진 비밀은 없으며 내 육신은 이제 가죽 끈에 매여 간신히 움직이고 있는 낡은 수레와 같다”라고 말씀하시고 “너희 제자들은 자기를 등불로 삼고, 자기를 의지처로 삼으며, 법을 등불로 삼고, 법을 의지처로 삼아 다른 것에 의지하지 말라”고 이르셨습니다. 이것이 유명한 자등명 법등명(自燈明法燈明)의 가르침입니다. 그리고 생애 마지막 전법의 길을 떠나시어 쿠시나가라의 사라쌍수 아래에서 열반에 드셨습니다. 붓다께서는 마지막 순간까지 제자들에게 의문 나는 것이 있는가를 세 번이나 물으신 후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당부하셨습니다.

“제행은 무상하니 방일하지 말고 정진하라.”

길에서 나서 길에서 살다 길에서 가시니 이 날이 음력 2월 15일 열반절입니다. 열반(Nirvana, 涅樂)이란 '불어서 끈다'는 뜻입니다. 무엇을 불어서 끄는 것 인가? 바로 욕망의 불과 번뇌를 불어서 끄는 것입니다. 지혜제일이라 불리는 사리불은, “열반이란 탐욕()을 영원히 없애고, 성냄()을 영원히 없애며, 어리석음을 길이 없애어 모든 번뇌를 다한 것이며, 열반에 이르는 방법 은 바로 팔정도(八正道)”라고 말한 바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붓다께서는 성도를 이루신 그 순간부터 이미 열반에 들어 계신 것입니다. 그렇지만 현상세계는 생멸하는 것이고 인연에 의해 생긴 것은 반드시 소멸하는 생자필멸(生者必滅)이니 붓다께서는 이 무상의 진리를 스스로 보이셨습니다. 그래서 붓다의 육신의 소멸을 또한 반열반(般涅樂)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붓다는 업의 속박에 매인 몸이 아닙니다. 붓다는 불멸의 무한생명이시니 깨달은 붓다의 몸은 영원한 것이어서 태어난다거나 죽는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붓다께서는 '나의 육신은 설사 죽더라도 제자들이 법과 계율을 잘 지키고 행하면 나의 법신은 영원히 상주하여 멸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결국 붓다의 생애는 우리에게 누구든지 부처님의 말씀대로 믿고 수행 하면 반드시 성불할 수 있음을 몸소 보이신 길이다. 이는 모두에게 잠재된 불성으로 가능하며 열반은 그 최고 경지를 나타내신 것입니다.

길에서 길로, 중생을 향해

다는 어떤 분이실까요? 그 분은 단지 한 번 이 세상에 왔다 사라진 존 재가 아닙니다. 모든 중생을 구제하고자 서원을 세우고 수억 겁을 거듭나며 어려운 고행을 감내하신 분입니다. 그러나 그분의 이야기는 먼 옛날의 이야기 만도 아니고 남의 이야기도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오늘을 살아가는 발심 수행자의 모습이며 우리가 실천해야 할 모습입니다.

붓다께서는 모든 이들의 이익과 안락을 위해, 고통 속에 허덕이는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천상의 영화를 버리시고 이 땅으로 내려오셨습니다. 그 분이 나신 곳은 호화찬란한 구중궁궐이 아니라 먼지 날리는 길가의 동산 위였습니다. 그래서 길에서 나서 길에서 살다 길에서 가신 우리 스승, 붓다의 탄생은 그 자체가 우리의 삶 속으로 내려오시는 붓다의 의지의 표현인 것입니다. 

우리들은 중생을 위해 일생동안 헌신하셨던 붓다를 기리고 그 삶을 본받아야 합니다. 불교를 믿는다는 것은 다시 말해 붓다을 닮아 가는 것입니다. 붓다의 삶을 본받아 쉬지 않고 정진하는 것, 다른 이들을 위해 헌신하는 것, 로 부처님을 닮는 것이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이다. 사회의 그늘진 곳, 고통받는 이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 대비수고(大悲受苦)하는 것이 오늘을 사는 우리가 지녀야 할 자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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