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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만경(勝鬘經) 승만경(勝鬘經)은 대승경전 중에서 여래장(如來藏)사상을 천명한 불교경전입니다. 경의 내용은 전부 승만부인 자신이 부처님 앞에서 법(法)을 설하면 부처님이 이를 허락하는 형식으로 전개됩니다. 전 15장 중에서 제3 · 7 · 9 · 10장 등은 10행 내외의 극히 짧은 것들이며, 제4 섭수장(攝受章)과 제5 일승장(一乘章)만이 비교적 긴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 중 제2 십수장(十受章)의 10대서원과 제3 삼원장(三願章)의 삼대원(三大願)은 정법(正法)을 체득하는 것에 대한 진실한 의미가 무엇인가를 말하는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각 원(願)마다 ‘오늘부터 보리(菩提)에 이르기까지’로 시작되는 십대서원(十大誓願)은 다음과 같습니다. ① 계(戒)를 범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겠나이다, ② 존장(尊長)에 .. 2024. 2. 18.
능가경(楞伽經) 장식(藏識)과 여래장(如來藏) 대혜여, 시작 없는 헛된 악습에 훈습된 것을 장식(藏識)이라고 한다. 이 장식에서 ‘나’라는 생각을 일으키는 제7식을 내고, 무명이 머무는 것이다. 비유하면 큰 바다에 파도가 이는 것과 같아서 그 체는 항상 계속되어 끊이지 않는다. 만일 여래장에 장식이 없으면 곧 생사가 없다. 여래장 장식의 본 성품은 청정하지만 객진(客塵)으로 물들어져 부정하게 된 것이다. 여래장의 장식은 부처님의 경계이므로 너희들 같은 비구와 청정한 지혜의 보살들이 행할 바요, 외도와 소승이 행할 바가 아니니라. 장식(藏識)은 업의 종자(種子)를 저장하는 식(識)으로 곧 아뢰야식(阿賴耶識) 이다. 『능가경(楞伽經)』의 특징은 여기에서 보듯이 아뢰야식이라는 업의 종자를 저장하는 장식을 곧 여래장과 같다고 .. 2024. 2. 15.
아뢰야식(阿賴耶識) 유식학파가 대승불교에서 독립된 학파로 자리매김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것은 아뢰야식(阿賴耶識)입니다. 이 식의 발견은 ‘부파불교’이래 윤회의 주체에 대한 추구의 긴 여정에 종지부를 찍은 셈입니다. 바라문교가 윤회의 주체를 아(我)라고 하는 정신적인 상징을 설정한 반면, 불교는 무아(無我)를 주창하면서 윤회를 설명해야 하는 어려운 입장에 놓이게 됩니다. 즉 전생의 업력에 의해 현재의 자신이 형성된다고 할 때, 전생의 자기와 현재의 자기를 동일체로 설정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 불교윤회설이 안고 있는 문제점이었던 것입니다. 부파불교에서는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십이지연기설(十二支緣起說)로 설명하는 것과 십이지연기설과는 별도로 윤회의 주체를 설정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었습니다. 설일체유부의 경우는.. 2024. 2. 15.
구경각(究竟覺) 구경각(究竟覺)이란? 보살의 수행이 원만해서 궁극적이고 완전한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되는 경지에 이르는 것입니다. 즉 붓다와 같은 완전한 깨달음, 곧 부처의 상태를 이룬 것이나 부처가 되는 자리를 뜻합니다. 구경각을 가리키는 다른 말로는, 보리(菩提), 각(覺), 묘각(妙覺), 묘각지(妙覺地), 묘각해지(妙覺海地), 적멸심(寂滅心), 적멸심 묘각지(寂滅心妙覺地), 반야(般若), 마하반야(摩訶般若) 등이 있습니다. 여러 불교 종파와 경전에서는 구경각을 깨우치게 되는 선정(禪定)도 거론하는데, 예컨대 ❮화엄경❯과 화엄종의 교의에 따르면, 해인삼매(海印三昧)에 들면 비로소 구경각을 깨우쳐 부처가 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금강경❯에 따르면 금강삼매(金剛三昧)에 의거해, ❮수능엄경❯에 따르면 수능엄삼매(首楞嚴三.. 2024. 2. 15.
능엄경(楞嚴經) 보는 성품 “아난아, 소경의 눈에는 어두운 것만 보이지만, 여기를 보는 것이야 무슨 결함이 있겠느냐? 소경이 눈이 멀어 어두운 것만 보이는 것과 눈 있는 사람이 깜깜한 방에 있는 것과 이 두 현상은 다르냐 다르지 않으냐?” “다르지 않습니다.” 눈은 능히 색을 나타낼지언정 보는 성품은 마음이요, 눈이 아니니라. “ 아난아! 이 가깝고 먼데 있는 모든 물질의 성질이 비록 여러 가지로 다르지만 똑같이 너의 청정하게 보는 정기로 볼 수 있는 것이니, 여러 가지 사물의 모양은 차별이 있을 지언즉 그것을 보는 성품은 다름이 없으니, 이 보는 정기의 오묘하고 밝음이 진실로 너의 보는 성품이니라.” 『능엄경(楞嚴經)』은 선(禪)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는 경전이다. 소경은 볼 수 없다고 알고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 2024. 2. 15.
원각경(圓覺經) 대승원돈(大乘圓頓)의 교리를 설한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大方廣圓覺修多羅了義經)의 약칭으로, 선교(禪敎)에서 인정하는 몇 안 되는 경전이다. 석가모니가 십이보살과의 문답을 통하여 대원각(大圓覺)의 묘리(妙理)와 관행(觀行)을 밝힌 경전이다, 허공꽃 무명(無名)은 무엇인가? 비유하면 눈병 난 사람이 허공에 꽃이 보이는 것과 같고, 달을 봄에 두 개로 보이는 것과 같다. 허공에는 실제로 꽃이 없는데 눈병 난 사람은 있다고 집착한다. 무명(無名)은 본체가 없다. 마치 꿈속에서 사람을 봤는데 깨고 나면 없는 것처럼, 허공꽃이 사라지지만 어디로 사라졌다고 말할 수 없다. 원래 생겨난 곳이 없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중생은 생이 없는 가운데서 허망하게 생멸이 있다고 여긴다. 이것을‘생사의 바다에게 헤맨다’고 한다. 이.. 2024. 2. 15.
유식무경(唯識無境) 인식 속에서만 존재하는 대상과 우리 눈앞의 대상은 과연 실재하는 것인가. 모든 사물은 의식의 스크린에 투영된 이미지 우리 눈앞에 펼쳐져 있는 텔레비전은 과연 실재하는 것일까. 텔레비전에 나오는 사람은 과연 텔레비전 속에서나마 실재하는 것일까.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면 모두 실재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누구에게나 동일한 인식의 대상이면서 단순한 외견이나 착각, 환상, 허구와 같은 것과는 구별되는 ‘사물의 진실된 자세’란 무엇일까? 감관에 의해 지각되는 존재인 현상을 의식으로부터 독립된 객관적 실재라고 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것을 의식과는 분리된 그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가 무엇을 보고(眼) 듣고(耳) 맡고(鼻) 맛보고(舌) 부딪치는(身) 개별적인 인식 활동은 의식(意識)이 종합하고 통제한.. 2024. 2. 15.
열반경(涅槃經) 석가모니 부처님의 열반(涅槃)을 설명하기 위해서 편찬한 경전(經典)이다. 소승(小乘)과 대승(大乘)의 두 경전이 있는데, 소승은 석가모니 붓다의 입멸(入滅) 전후의 역사적 사실을 주로 기록 하였으며, 대승은 붓다가 입멸 직전에 설한 교의를 담고있다. 상락아정(常樂我淨) 부처님께서는 법을 설하실 때 “‘실체적인 나’가 없으나 나에 대한 관념을 버려라. 아상(我相)을 버리면 아만심이 사라지고, 아만(我慢)이 없으면 곧 열반에 들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다시 상락아정을 말씀하시니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합니까? 매우 훌륭하다. 중요한 질문이다. 우유로 된 약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독이 되기도 하고, 약이 되기도 하는 것처럼 ‘나’가 해가 될 때와 이익이 될 때를 알아서 ‘나’를 설하는 것이다... 2024. 2. 15.
무량수경(無量壽經) 불국토가 여기에 있다. 아난다여, 저 불국토(佛國土)는 부유하고 평안하며 풍요롭고 아름답다. 수많은 인간과 천인(天人)들로 가득하다. 저 세계에는 지옥이 없고, 동물이 없으며, 아귀(餓鬼)와 아수라(阿修羅)도 없다. 가르침을 들을 자격이나 태생의 차별도 없다. 그 불세계에는 착하지 않은 목소리, 장애와 죄악, 고통의 목소리도 없다. 본래 불국토는 이 세상에서 만들어진 것들과는 달리 무위(無爲)와 자연스러운 존재이며 깨달음의 경지 그 자체라고도 할 수 있다. 불국토에는 불행이 없다. 모든 것이 풍요롭고 평안하며 아름답고 장엄하다. 지옥도 없고 동물도 없고 아귀나 아수라도 없다. 장애도 없고 고통도 없다. 바로 그러한 불국토가 지금 여기에 우리의 눈앞에 당장에 드러나 있다. 목전에 활짝 불국토가 드러나 있지.. 2024. 2. 14.
아미타경(阿彌陀經) 서방정토(西方淨土) 극락세계(極樂世界)아미타불 부처님께서 장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이곳으로부터 서쪽으로 10만억 불국토를 지나면 극락(極樂) 이라는 세계가 있는데, 그곳에는 아미타(阿彌陀)부처님께서 지금도 법을 설하고 계시느니라. 사리불이여, 그 국토의 이름이 왜 극락인지 아느냐? 그곳의 중생은 어떤 괴로움도 없고 다만 모든 즐거움만 받기 때문이다. 사리불이여, 극락에는 칠보(七寶)로 된 연못이 있고 팔공덕수(八功德水)가 그 안에 가득 차 있다. 연못 바닥에는 금모래가 깔려 있고, 사방 계단은 금, 은, 청옥, 수정으로 되어 있으며, 그 위의 누각은 금, 은, 청옥, 수정, 붉은진주(赤珠), 마노(馬瑙), 호박으로 장엄하게 꾸며져 있다. 사리불이여, 극락국토에는 이와 같은 공덕으로 장엄되어 있느니라.. 2024. 2. 14.
법화경(法華經) 일불승 一佛乘 사리불이여, 부처님은 오로지 일불승(一佛乘)으로 중생들에게 법을 설하실 뿐, 다른 승인 이승(乘)이나 삼승(三乘)은 진실로 있는 것이 아니니라.… 사리불이여, 그대들은 마땅히 한 마음으로 부처님의 말씀을 믿으며 이해하고 받아 지니도록 하라. 모든 부처님의 말씀에는 허망함이 없느니라. 다른 승(乘)은 참된 것이 아니며 오직 일불승뿐이니라. 사리불이여, 과거의… 미래의… 현재의 백천만억 불국토의 모든 부처님께서 갖가지 방편과 인연과 비유로써 중생을 위하여 여러 가지 법을 설하셨으니, 이러한 법이 모두 일불승으로 이끌기 위한 것이었다. 중생들은 부처님으로부터 이러한 법을 듣고는 마침내 모든 지혜의 씨앗을 얻게 되었노라. 모든 중생이 수많은 욕심과 집착이 있음을 알기 때문에 그들 각자의 근기에 따.. 2024. 2. 14.
화엄경(華嚴經) 일체유심조 一切唯心造 만약 사람들이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를 알고자 하거든 마땅히 법계의 성품을 비추어 볼지니 일체 모든 것은 마음으로 지어졌음이라. 마음은 화가와 같아서 능히 온갖 세간을 그려내나니 오온이 마음 따라 생기어서 만들어내지 못하는 법이 없네. 일체 모든 것은 마음으로 지어졌다. 마음은 화가와 같아 능히 온갖 세상을 그려낸다. 이 마음이라는 바다 위에 온갖 세상만사라는 파도가 치고 있는 것일 뿐이다. 마음이라는 도화지 위에 온갖 세간이 그려지고 있다. 일체 모든 것들은 전부 마음이라는 바탕 위에서 드러나고 그려지고 일어났다 사라지는 허망한 그림일 뿐이다. 세상만사가 전부 생겨났다가 사라진다고 할지라도 그 모든 것은 결국 낱낱의 파도일 뿐, 그 모든 파도는 결국 바다가 그려낸 허망한 그림.. 2024. 2. 14.
유마경(維摩經) 심청정 국토청정 보적아, 만약 보살이 청정한 국토를 얻으려거든 먼저 그 마음을 청정히 가져야 한다. 그 마음이 청정하면 국토가 청정해지느니라. 중생이 업장으로 인해 여래의 국토가 청정하게 장엄된 것을 보지 못하는 것일 뿐, 그것이 여래의 허물은 아니다. 나의 국토는 청정하건만 다만 네가 보지 못할 뿐이다. 내 마음이 청정하면 온 국토가 청정하다. 내 마음이 오염될 때 국토도 오염된다. 내 마음이 청정하면 온 우주 일체만유가 일시에 청정하지만, 내 마음이 오염되면 온 우주법계 전체가 어둡다. 이 우주법계는 본래 청정하여 한 치도 오염됨이 없지만, 중생이 스스로 망상분별이라는 오염된 필터로 세상과 국토를 바라보기에 국토가 오염된 것처럼 보일 뿐이다. 그러니 깨달은 자의 눈에 국토는 언제나 청정하다. 다만 중.. 2024. 2. 13.
반야경(般若經) 공(空), 본래 없다 본질적으로는 허물을 범하고 범하지 않는 것이 없다.… 남들이 괴롭히더라도 거기에 움직일 마음이라는 것은 본래 없다.… 세상에서는 가설로 이름 붙인 것을 그 이름에 얽매여 망상 분별을 일으키고 말을 일으키고 집착을 일으킨다. 나라거나 남이라거나 다 실체가 없는 이름뿐인 공인데 거기에 어찌 집착하겠는가. 모든 존재는 공해서 얻을 수 없고 항상 청정하다. 청정하다는 것은 모든 존재가 나지도 없어지지도 않고, 더럽지도 깨끗하지도 않고 얻는 것도 짓는 것도 없음이다. 이것을 모르는 것이 무명(無明)이다. 중생은 이 무명과 갈애(渴愛) 때문에 망상 분별하여 유와 무의 양극단에 얽매인다. 사람들은 흔히 깨끗하고 더러움에 차별을 둔다. 그러나 사물의 본성은 깨끗한 것도 더러운 것도 없다. 우리 마.. 2024. 2. 13.
대승경전의 분류 대승불교의 경전들이 정확히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었으며, 누가 만들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 일련의 대승불교 수행자들이 자신의 삼매와 깨달음을 부처님의 경전의 형식을 빌려 결집한 것으로 예상할 뿐이다. 이렇게 쓰인 대승불교 경전의 첫 번째 효시가 바로 『반야경』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금강경』과 『반야심경』은 바로 이 『반야경』 속에 들어 있는 작은 경전이다. 이렇게 성립된 『반야경』을 비롯한 대승경전들은 역사적 인물인 석가모니 부처님의 직설이 아니라는 이유로 부파불교 교단으로부터 ‘대승비불설’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깨달음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전유물이 아니고, 경전 또한 석가모니 부처님의 말씀만 경전 일 수는 없다. 불법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2024. 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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